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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y 22. 2018

이 곳에서의 생활을 ‘판타지’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안녕, 에디터H다. 디에디트는 현재 전 직원이 포르투갈의 포르투라는 도시에 사무실을 옮겨 생활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서울에서와 다른듯 같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만든다. 여전히 바쁘고 쫓기듯 하루를 보낸다. 다만 고개를 돌리면 눈에 닿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울 뿐.


이 곳에서의 생활을 ‘판타지’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보다 정확한 표현은 여전히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모든 게 내가 생각하던대로는 아니었다.



포르투에 도착했을 땐 세 명의 에디터 모두 실신 직전이었다. 셋이서 몸집 만한 캐리어를 다섯 개나 끌고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메트로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에 가만히 창밖을 바라봤다. 이상하다. 여기가 어딜까. 혹시 다시 인천에 온걸까. 서울 근교와 다를 바 없는 살풍경함이 이어졌다. 시내에 도착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작은 시골 동네에 온 것 같았다. 34시간의 비행을 끝내고 도착한 꿈의 도시에서 느낀 첫 감정은 실망이었다. 애가 탔다. 몇 년 전 내가 포르투에서 느꼈던 감동은 상상 속에서 부풀려진 것일까?


[야속한 코블스톤]


유럽이 처음이라는 막내 에디터 역시 심드렁해보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셋 다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는 건 분명했다. 우리 모두 오랫동안 힘들게 준비하고 많은 걸 포기하고 온 여정이었다. 한 달을 살아야 하는 도시에서 느낀 강렬한 실망감을 입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돌멩이가 촘촘히 박힌 유럽의 코블스톤 위로 캐리어 바퀴가 요란하게 부딪히며 굴러갔다. 드르르륵, 드르륵. 그 소리가 얼마나 처량맞게 신경을 긁던지.



다행히 우리의 이층집은 멋졌다. 집에 짐을 풀기 무섭게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 포르투 최고의 관광지 ‘히베이라 광장’을 향했다. 골목은 좁고 길은 험했다. 어두운 골목에선 어김없이 지린내가 풍겼다.



도루강 앞에 서서야 마음이 놓였다. 아름다운 동 루이스 다리와 알록달록한 건물, 강물 비친 화려한 불빛. 엽서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포르투의 상징적인 풍경이다. 몇 번을 다시 찾아도 매번 감탄하게 될 만큼. 그제야 포르투와 도루 강의 아름다움을 입 아프게 칭송하며, 유럽에 도착했다는 낭만에 취할 수 있었다.



히베이라 광장의 아름다움이 모든 걸 완벽하게 만들 순 없었다. 명동과 강남이 서울의 전부가 아니듯 히베이라는 포르투가 가진 가장 화려한 표정일 뿐이었다.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입에서 살살 녹는 문어 구이를 씹었다. 서울에선 와인 한 잔 마실 돈으로 한 병을 마실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죽이는 걸로. 아침엔 도루 강가의 다리 위를 함께 뛰었다. 왼쪽으로 포르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모든 사치스러운 경험을 생활에 다 우겨 넣어도 다들 100%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일과 촬영에 치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도시의 분위기가 썩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스트레스 받았다고 하면서 잘 나온 내 사진을 첨부한다]


솔직히 도착하고 몇 일 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포르투에 오자고 했던 사람은 나였다. 유럽의 숱한 도시를 가봤지만 이 만큼 정감가고 아름다우며, 곳곳에 이야기가 숨은 곳이 없었다면서 입 아프게 포르투행을 종용해왔다. 모두가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나 조바심이 밀려왔다. 매일 구글맵을 들여다보며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했다. 실패한 여행 가이드의 기분이었다. 왜 여길 오자고 했을까. 내가 또 헛짓을 했나.


[우리집 건너편의 멋진 건물, 조용한 동네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층집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주거 지역이다. 도루강이나 시내까지 도보 10분이면 갈 수 있지만, 묘하게 벗어나 있어서 관광객들은 잘 찾지 않는다. 동네 자체도 조용하다. 지내는 내내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 한 번 마주친 적이 없을 정도다.


[지금은 집앞에서 만나면 사장님과 인사한다, 올라!]


대형 마트는 10분 남짓 걸어가야 나오지만 집 바로 앞에 작은 청과물점이 있다. 들어가면 짜고 비릿한 냄새가 진동한다. 바깔라우(대구)가 소금기를 잔뜩 머금고 여기저기 진열돼 있다. 이 가게에 우리가 처음 들어간 순간을 잊지 못한다. 장보던 할머니도 눈이 휘둥그레졌고, 주인장으로 보이는 중년 신사는 우리를 흘끗댔다. 까만머리의 등장이 충격적일 만큼 조용한 동네인 것이다. 물론 우리 중 하나는 핑크색 물이 빠진 노랑머리지만. 



도착하고 일주일쯤 됐을 땐 다들 관광지나 시내 나들이에 감흥을 잃은 상태가 됐다. 집에서 일하다 집 근처로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꽤 괜찮은 레스토랑이었는데 환한 조명 밑에서 허기를 채우는 우리 셋의 몰골은 대단했다. 누가 봐도 집 앞 슈퍼에 가는 꼴이었으니 여행자로 보이지 않는데는 성공했을지도. 에디터M은 잘 때 입는 후드티를 입고 있었고, 나도 트레이닝 팬츠 차림, 막내는 청초한 민낯이었다. 스테이크와 생선 구이를 거나하게 먹어치우고 어둑해진 거리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진, 모든 게 마법같다]


국보급 길치인 에디터M은 그날 밤에도 천연덕스럽게 우리를 잘못된 길로 안내했는데, 조금 돌아가면서 산책해도 좋을 것 같아서 군말 없이 따라갔다. 평소보다 딱 한 골목 더 가서 뒷 길을 걸었다. 그런데 다른 세상이 있었다. 으슥한 뒷골목에 어울리지 않게 작고 근사한 가게 서 너 군데가 줄지어 있었다. 벽엔 유머러스한 그래피티가 가득했다. 막내가 익살스럽게 웃는 가필드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며 깡충 뛰어들었다. 사랑스러운 사진이 담겼다.


꼭 가보고 싶은 가게 투성이였다. 처음으로 이 거리가 궁금해졌다. 여기 머무르는 동안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 에디터가 찍길래 나도 찍었다]


우리는 간판 하나 하나, 벽화 하나 하나를 살피며 걸었다. 갈라진 벽화 틈새엔 또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서울에서 우리가 입 아프게 말하던 ‘힙’이 여기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근사하다, 재밌다. 셋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뒤로 이곳을 ‘포르투 성수동’이라 부른다. 이 동네의 멋진 가게를 하나씩 정복 중이니 조만간 기사로 소개해 드리겠다.



나니아 연대기를 읽으면 옷장 안으로 깊이 들어가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내용이 나온다. 마치 그런 기분. 나니아로 통하는 골목길이었다.


[건물 외벽의 파이프마저 멋진 깔맞춤]


뻔한 결론이지만 지금의 나는 이 도시에 깊게 빠져있다. 포르투의 다양한 얼굴이 하루 하루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들이 뒤섞여 상상하지 못한 컬러를 만든다. 뒤늦게 에디터M에게 말했다. “난 처음에 여기가 너무 별로라서 끙끙 앓았어, 근데 지금은 여기가 너무 좋다?” 혜민이가 씨익 웃으며 자기도 그랬다고 답한다. 지금은 그냥 청과점에 자두 사러 가는 길도 좋고, 빨래방으로 가는 길도 좋고, 햇살 쨍한 테라스에서 혼자 끽연하는 순간도 너무 좋다면서.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너무 좋다고.


[커피가 감동적인 1유로]


잠깐의 여행으로 한 도시를 다 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생각한다. 평생을 살았지만 서울을 다 모르는 것처럼, 이 낯선 도시를 다 알고 돌아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시간이 지나는 게 너무 아깝다. 자꾸만 남은 날을 세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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