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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n 14. 2018

결국 내 아이폰과는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어느 5월 목요일 06:29PM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외출이라고는 걸어서 10분 거리의 마트에 가는 게 전부. 사무실에 짱박혀 내내 일만하던 디에디트의 세 여자가 쇼핑을 하겠다고 주머니에 두둑하게 현금을 챙겨 길을 나선 참이었다.



“난 카페에 앉아 있을께. 다들 쇼핑하고 와”


그날은 어쩐지 뭘 사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억지로 끌려나온 아빠같은 멘트를 날리고, 막내 에디터와 에디터H와 헤어진다. 바람이 솔솔 부는 카페 테라스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킨다. 이게 얼마만에 갖는 자유시간인가. 에스프레소는 금방 바닥을 보였다. 지나가는 관광객과 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것도 지겨워졌다. 거리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양손엔 가득 쇼핑백을 들고 있다. 그래, 쇼핑이나 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눈 앞에 보이는 아무 가게나 들어갔다.



07:00PM


3초의 법칙을 아시는지.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질 것인지 아닌지는 단 3초 안에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쇼핑도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게 내 것인지 아닌지는 3초 안에 결판이 난다. 길게 고민해봤자 에너지만 낭비할 뿐이다. 속전속결. 내 자랑은 빛 보다 빠르게 돈을 쓸 줄 안다는 것.


“어라 이것 봐라?”


별 기대 없이 간 가게에는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옷이 많이 찾았다. 대충 계산해서 1유로에 1300원이란 미묘한 환율은 내 얄팍한 머릿속 계산기를 속여 1유로에 1천원 정도로 후려치기를 한다. 그러고 보니 무엇이든 살만해 보인다. 특히 이곳 포르투갈에서는 자라(ZARA)가 저렴하다. 하나둘 씩 고르다보니 벌써 두 개의 쇼핑백이 가득 찼다. 


[돈을 쓰면 기분이 좋아진다. 룰루~]

08:08PM


“어디야?”


헤어졌던 에디터H에게 메시지가 왔다. 방탕했던 쇼핑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다. 오늘 쇼핑은 여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나 싶어 빠르게 결제를 완료한다. 내 전리품으로 가득찬 쇼핑백을 양손에 가득쥐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잠시 떨어져있던 기은과 에디터H와 조우한다. “언제 또이렇게 많이 샀냐, 우리는 니가 기다릴까봐 쇼핑도 제대로 못했다. 꼭 혼자 이렇게 많이 사더라…” 쫑알쫑알쫑알. 잔소리는 귓등으로 흘린다. 그들은 내가 이렇게나 많이 산 게 상당히 억울했는지 서둘러 다른 가게로 발걸음을 돌린다. 난 오늘 나에게 허락된 쇼핑 게이지를 모두 채웠다. 나는 구석에서 (또)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08:14PM


“#$%^&*(*^%..??”


가방 안에 라이터가 없다. 양손에 짐은 한 가득이고, 가방은 너무 크다. 낑낑거리며 가방을 뒤지고 있는데 한 남자가 나타났다. 손에는 라이터를 쥐고 있었다. ‘불을 붙여주려는 건가?’ 호의는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다. 난 동방예의지국에서 왔으니까. 담배를 가져다 대는데 불을 붙여준다. 역시 흡연자끼리는 통하는게 있어라고 생각한 순간.


“%^&*()(*&^*()…??”


남자가 내 담배를 가리킨다. 검지와 중지를 세우고 입에 가져다대며 담배를 피우는 시늉을 한다. 아, 담배 한 가치 빌려달라는 거구나. 여기도 담배가 비싼가? 좀 그렇긴 하지만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으니까. 옛다 기분이다. 흔쾌히 담배 한 개피를 건넸다. 그는 고맙다는 제스쳐를 취하고 빠르게 골목으로 사라졌다.


[이곳이 바로 내가 소매치기를 당한 그 자리다]

08:17PM


사건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폰을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애플워치를 확인한다.


“?”


애플워치와 블루투스 연결이 끊겼다? 빨간 표식을 확인한 내 심장이 포르투의 돌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미친 사람처럼 아까 쇼핑한 매장을 다시 찾았지만 있을리가. 그제야 깨달았다. 나의 아이폰X은 아까 담배를 빌려간 그 자식 주머니에 있는게 분명했다.


“없다. 없어. 내 256GB 아이폰X가 없다!”


놀라운 사실은 그 XX가 훔친 내 아이폰으로 메시지를 보냈다는 거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대화하던 왓츠앱 단체 대화창에 “Thanks usual” 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더라. 에디터H의 폰으로 내가 보낸 적 없는 내 이름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머리가 띵해진다. 그래, 140만원 정도 하는 아이폰X(256GB)를 노란 머리의 동양 여자 가방에서 너무나 쉽게 슬쩍했으니 얼마나 고마울까. 


[너무 화가나고 어이가 없어서 에디터H 폰에 온 메시지를 찍어뒀다]

나중에 듣고보니 이런 범행은 주로 2인 1조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한 명이 피해자에게 다가가 주의를 분산시킨 사이 다른 한 명이 슬쩍하는 거라고. 막내가 썩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어떻게 그런것도 모를 수 있냐고. 혀도 쯧쯧 찬 것 같은데 정신이 없어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후 몇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포르투갈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아이폰을 잃어버리다니. 난 뭘까. 왜 살까. 어떻게 해야하나. 누가 뇌의 일부분을 떼어버린 것처럼 사고 회로가 멈추고, 인생이 허무하고 정신이 혼미하다.



이와중에 앙큼한 에디터H는 이 상황을 영상으로 남겨두기까지 했다. <추적60>에 버금가는 생생한 현장이 궁금하다면, 영상을 확인하자(연기라곤 1도 없는 리얼한 나의 표정이 키포인트다).



에디터H가 가지고 있던 여분의 아이폰8 플러스에 백업을 하고, 아이폰 분실 기능을 켰다. 혹시 영어를 알아듣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포르투갈 번역기까지 돌려 협박(?) 메시지까지 보냈다. 


[“넌 내폰을 훔쳐갔어. 난 널 찾을 거고. 그리고 넌 벌을 받게 될거야.”]

지금 보니 메시지가 너무 약했다. 욕이라도 한 바탕 보내둘걸. 그날 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나쁜 놈들의 손에 들어가 강제로 모든 기억을 지우고 제 3세계로 팔려 갔을 내 아이폰을 생각하니 분하고 원통하다. 


[내 손에 들려있는 건 에디터H의 아이폰8플러스다]

결국 내 아이폰과는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천성이 무디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부족한 내게 아주 값비싼 교훈이었다. 나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모든 사람을 경계하고 열심히 장비를 챙겼고, 그 이후엔 큰 사건없이 포르투 일정을 끝낼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그 쇼핑 골목을 ‘소매치기 거리’라고 부르며 깔깔 대기도 한다. 여러분도 모두 소매치기를 조심하세요. 특히 낯선 사람이 뭐 빌려 달라고 하면, 절대 빌려주지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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