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독과 떡볶이
난 떡볶이를 좋아한다. 크게 특별할 것도 없는 선언이다. 한국인 중 떡볶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먹고 나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엽기적인 떡볶이도, 국물이 흥건해서 숟가락으로 푹푹 떠먹어야 하는 떡볶이도, 어린 시절 먹었던 달달한 맛의 떡볶이까지. 세상의 모든 떡볶이는 옳다.
꿈꾸듯 지나갔던 포르투 한 달 살이를 마치고 서울의 401호로 출근했던 6월의 어느 날. 일에 대한 의욕이라곤 1도 없던 디에디트 사무실에 에디터H의 청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우리 떡볶이 먹을래?”
대답은 언제나 예스. 떡볶이 주문을 마치고 사무실의 세 여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때만큼 합이 잘 맞는 순간이 없다. 배달음식도 우아하게 먹기 위해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던 떡볶이를 멋진 그릇에 옮겨 담고 젓가락과 컵을 세팅한다. 자 그리고 이제 가장 중요한 맥주를 고를 차례다.
오늘 주인공은 브루독. 양조하는 개. 사실 부르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 워낙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브랜드다 보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쉽게 엄두가 나질 않더라. 2007년 제임스 와트와 마틴 디키는 검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스코틀랜드 북동부의 작은 마을, 누추한 창고에서 맥주 사업을 시작한다.
영국과 스코틀랜드는 에일 맥주 종주국이지만 전통을 무겁게 여긴 탓에 크래프트 맥주 문화는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이때 화려하게 반기를 든 맥주가 있었으니 바로 브루독이다. 2007년에 시작해 이미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굳건히 버티며 자리를 잡았지만 브루독의 정신은 펑크. 아직도 늙지 않은 맥주시장의 이단아다.
펑크 정신의 핵심은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저항이다. 세상에 반항하기 위해 브루독은 참말로 이상한 맥주를 많이 만들었다. 동성애를 반대한 푸틴을 조롱하기 위해 그에게 헌정(?)하는 맥주를 만들기도 하고(심지어 맥주 한 박스를 직접 푸틴에게 보낸 그들의 담대함이란!). 작년엔 미국이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한 것을 풍자하기 위해 MEGA 맥주를 만들기도 했다. 위 사진 속 트럼프와 푸틴 패러디는 모두 브루독 창업주 본인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선 것이다.
그뿐이랴, 맥주에 비아그라를 넣지를 않나, 알코올 도수 55%가 되는 맥주를 양조하기도 했다. 이 무시무시한 맥주의 이름은 ‘역사의 끝(The End of History)’. 한 병에 백만 원 정도 하는 가격도 충격적이지만, 병을 다람쥐와 담비 박제로 감싸다니. 이들이 정말 돌+I가 아니고서야 나같은 머글은 감히 엄두도 못 낼 똘끼다
이단아 브루독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하기로 하고 이제 다시 차분하게 리뷰로 돌아가 보자.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브루독을 따기로 한다. 떡볶이와 맥주의 조합은 언제나 옳다. 오늘 맛볼 맥주는 브루독의 엘비스 주스.
자몽맛이 나는 IPA로 브루독 맥주 중 가장 대중적인 맛을 자랑한다.
잔에 따르니 적당한 붉은색을 띤다. 거품은 성긴편이다. 사진을 찍는 동안 거품이 모두 사라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지속력은 나쁘지 않았다.
잘 발라낸 자몽의 과육을 씹는 듯 시큼한 자몽의 맛이 가장 먼저 반긴다. 자몽 특유의 씁쓸한 맛도 함께 따라온다. 물론 홉이 많이 들어가는 IPA의 특유의 씁쓸한 솔향과 흙 내음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향긋하면서도 씁쓸한 맛을 내는 자몽과 IPA의 궁합은 결이 비슷하다. 상큼하고 약간 새콤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지나가고 나면, 카라멜 몰트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단맛이 무게를 잡아준다. 풍부한 맛이다.
덕분에 매콤 달콤한 떡볶이와 궁합이 아주 좋다. 요즘 개인적으로 떡볶이와 맥주를 함께 마시는 ‘떡맥’을 밀고 있다. 아직 안 드셔봤다면 강력 추천한다. 이때 맥주는 라거 계열 보다는 떡볶이의 강한 맛에도 지지 않을 에일계열이 잘 어울린다. 여러분, 떡볶이엔 맥주입니다. 에디터M의 이름으로 강력추천!
브루독 엘비스 주스
Point – 똘기넘치는 브루독이 머글인 척하고 만든 맥주
With – 내 사랑 떡볶이
Nation – 스코틀랜드
Style – IPA
ABV –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