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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Aug 20. 2018

스몸비(Smombie),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다.

애플이 스몸비를 위해 새로 만든 기능

나는 숫자에 약한 편이다. 흔히 말하는 문과형 뇌를 가졌달까. 나처럼 셈에 약한 사람들의 계산법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계산 과정이 복잡해지면 어느 정도 눙쳐버리는 버릇. 한 마디로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덧셈을 한다는 얘기다. 술집에서 대충 10만 원쯤 나왔겠다고 계산하면, 16만 원짜리 계산서가 날 기다린다. 내가 또 어디선가 이상한 반내림을 해버린 것이다!



예전에 어떤 설문에서 “하루에 스마트폰을 얼마나 사용하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언제나처럼 숫자를 눙치고 감성 덧셈을 했다. 저녁에만 많이 보니까… 넉넉하게 하루 두 시간? 이 계산은 한참을 엇나갔다. 나는 하루에 꼬박 5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중독자였다.



내가 스마트폰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 정확히 알게 된 건 저번주부터다. 사용중인 아이폰X에 iOS12 베타 버전을 설치했다. ‘스크린 타임’ 기능을 테스트해보고 싶어서였다. iOS12에 추가된 이 기능은 사용자가 어떤 앱이나 웹사이트에서 시간을 쓰는지 상세한 정보를 집계해준다. 일간 및 주간 리포트를 통해 각 앱에서 소요된 총 시간, 앱 카테고리 별 사용량, 수신 알림 건수 등을 그래프로 보여준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첫 주 리포트를 받아봤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하루 평균 4시간 51분. 내 예상보다 두 배를 웃도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심지어 난 그 흔한 모바일 게임도 하지 않는데 말이다.



찬찬히 앱별 주간 사용시간을 살펴봤다. 페이스북 5시간, 인스타그램 3시간 55분, 유튜브를 3시간 15분 동안 사용했다. 오히려 넷플릭스 앱을 사용한 시간은 2시간 14분 밖에 되지 않았다.



카테고리 별로 정렬해보니 내가 어디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지 더 분명해졌다. 일주일에 13시간 11분을 SNS를 들여다보는데 쓰고 있었다. 전혀 의식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실 난 포스팅을 하거나 댓글에 인색한 소극적 사용자다. 그저 엄지 손으로 피드의 스크롤을 내리며 누군가의 삶과 의견을 훔쳐보는 데에만 이 정도 시간을 쓰다니.


SNS 피드에 꿀을 발라놓은 것도 아닌데 왜 눈을 떼지 못하는 걸까? 심지어 방금 전에도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자연스럽게 페이스북 앱을 켰다. 흠칫 놀라 아이폰을 내려놓고 다시 키보드 위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반박 불가한 중독 증상이다. 사실 스크린 타임 앱이 리포트해준 결과는 순수하게 ‘아이폰만’ 사용하는 시간이다. 내가 넷플릭스나 왓챠 플레이로 영상을 볼 땐 주로 맥북을 사용하고, 평일에 일과 시간 내내 맥북으로 작업한다는 걸 고려한다면 사태는 더 심각해진다. 나란 사람은 디스플레이속 세상에 고개를 쳐박고 일상을 새로고침하며 사는구나. 누군가 따귀를 갈긴 것처럼 정신이 든다. 우울해진다.


애플은 왜 이런 기능을 만들었을까? 내 따귀를 때리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분히 여론을 의식한 선택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스마트 기기의 중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다, 세계보건기구에서 게임중독을 질병 분류에 포함하겠다고 선언하며 보는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현대인의 중독을 논할 때 스마트폰만큼 뭇매를 맞기 만만한 아이템은 없다. 게임도 SNS도 데이팅도 모두 이 안에서 이루어지니까.


나는 기술 자체에는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 기기는 순결하다. 문제는 언제나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외롭고 심심한 시간을 짧은 텍스트와 비디오로 메꾸려던 습관이 중독으로 이어진 것이다. 어려운 식사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어두면 괜히 초조해진다. 애플워치로 알림 진동이 울릴 때마다 확인하고 싶어서 가슴이 간질거린다. 그러다 조금만 경계를 풀면 습관적으로 화면 잠금을 해제하고 알림바를 터치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iOS가 무시무시한 스크린 타임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기능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운타임, 또 하나는 앱 시간 제한이다. 다운타임은 일정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얼려버리는 기능이다.



설정한 시간 동안 대부분의 앱 아이콘이 어둡게 표시된다. 터치하면 사용이 제한된 시간이란 메시지가 뜬다. 의도적으로 본인의 사용시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만약 자정부터 아침 6시까지 다운타임을 설정해놓았다면, 그 시간 동안은 전화나 따로 사용을 허용해둔 앱만 사용할 수 있다. 다운타임은 스마트폰 중독에 대항한 기능이라기 보다는, 일정 시간 동안 스마트폰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기능에 가깝다.



나같은 사람은 앱 시간제한이 더 유용하다. 소셜 네트워킹이나 게임, 엔터테인먼트로 등으로 분류된 앱 중에서 특정 카테고리를 선택해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을 정해두는 것이다. 제한 시간을 설정해두면 해당 카테고리의 앱을 쓰는 시간을 합산해 적용된다. 소셜 네트워킹 앱의 사용 시간을 1시간 반으로 제한해두었다. 이 시간을 넘어가게 되면 페이스북은 물론이고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모든 SNS 앱 아이콘이 어둡게 표시된다. 완전히 못쓰게 되는 건 아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시간 제한을 해지하거나 연장할 수 있다. 너무 쉽게 해지할 수 있어서 맥빠진다고? 서른이 훌쩍 넘은 성인의 자유를 완벽하게 제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나에게 얼마나 엄격해질 수 있을까? 이 중독은 꼭 떨쳐내야 할 만큼 유해한 것일까?



신조어 중에 스몸비(Smombie)라는 말이 있더라.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다. 스마트폰 화면에 고개를 박고 천천히 걸어가는 무리를 떠올려보자. 왜 좀비라고 부르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더 끔찍한 건 나 역시 그 좀비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사실. 밤늦게까지 피곤함에 몸서리치면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아이러니함의 연속이다. 열대야보다 더 지독하게 밤을 쫓는 화면 속으로 자꾸만 시선이 빨려들어간다.


궁금하다. 여러분의 스크린 타임엔 어떤 숫자가 표시될지.


iOS12의 다른 기능들은 영상으로 정리해두었다. 중독자 에디터H의 언변을 구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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