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자아 대폭발, 왓 썹(SSUP)
나는 원래 노출을 좋아한다. 옷 벗는 거 말고. 사람들에게 내 일상을 보여주고, 내 글을 읽게 하는 게 즐거웠단 얘기다. 맛있는 거 먹으면 찰칵, 날씨 좋으면 찰칵, 셀카도 부지런히 찍어서 업로드했다. 하지만 다 옛날 얘기다. 모두까기 인형들의 공격에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시들해졌다. 북조선도 아닌데 간섭과 감시가 도처에 난무했다. 바쁘다더니 왜 페이스북 접속중이냐, 밥 먹듯이 해외 나가고 팔자 좋아 보인다, 요즘 살이 오른 것 같다… 뭐 이런 유쾌한 인물들이 많다.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직장 상사는 왜 우리를 팔로우하는 걸까? 덕분에 우린 자유롭게 님들을 흉볼 수도 없고, 해시태그에 #월급도둑 이라고 쓸 수도 없게 됐다. 작금의 소셜 미디어에는 자유가 없도다!!
이런 여러분을 위해 따끈따끈한 SNS 뉴비 ‘썹(ssup)’을 소개한다. 무려 카카오에서 만들었다. <고삐 풀린 자아 대폭발>이라는 부제목에서 알 수 있듯 수상한 앱이다. 별 내용이 없기 때문에 열심히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설명하려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그런 앱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리뷰 요정 에디터H니까, 힘껏 설명해보겠다. 일단 시작부터 냄새가 난다. 가입 과정에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해 선택 사항은 동의하지 않았다. 난 서울깍쟁이니까. 곧바로 팝업창에 “우리 사이에 이러기에요?”라는 메시지로 사용자를 갈군다. 피식, 한번 웃을 정도의 위트는 갖췄다.
좋아하는 이모지를 두 개 골라서 월페이퍼를 꾸미라는 지령이다. 일단 나는 쓸데없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타입이므로 10여 분에 걸쳐 신중하게 이모지를 골랐다.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는 건 내 특기니까. 스파게티와 우동. 완벽하다. 탄수화물 중독인 내게 걸맞은 배경화면이 탄생했다.
그 다음엔 뭘 해야하는지 막연해진다. 피드도 따로 없고, 별다른 기능도 없다. 추천 팔로우에 뜨는 건 대부분 썹 개발자나 기획자였다(덧붙이자면 가입 당일엔 이랬지만 지금은 일반 유저가 많다).
몇몇 관계자들의 계정을 눌러보았다. 나도 모르게 터지고 만다. 이 사람들 전부다 제정신이 아니다. 하긴, 제정신이면 이런 앱을 기획했을 리가 없지. 일반 사용자들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밑밥을 깔아뒀다. 병맛으로다가.
포스트를 쓸 때 사용할 수 있는 기능들 역시 하나같이 병신미 터진다. 랜덤으로 운세를 볼 수 있는데, 하는 말마다 사용자를 불쾌하게 만든다. 나한테는 앞날이 깜깜해서 하나도 안 보인다고 했다. 사업자등록증에 잉크도 안 말랐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짤’기능을 활용하면 썹에 준비된 짤을 첨부해 개드립을 날릴 수 있다. 최고로 한심한 드립을 치고 싶어서 오래 고민했지만, 내가 원래 이런 드립에 약하다. 너무 평범한 사고를 가져서 그런 걸까. 아무리 살펴봐도 특별한 기능은 없다. 기능도 별로 없는데 직관성도 떨어진다. 어디서 포스트를 작성해야 하는지도 찾기 힘들 정도다. 스티커 붙이는 기능도 사용자가 못 찾게 잘 숨겨놨다. 아무래도 이 앱은 망할 것 같다.
근데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나는 썹에 혼자 포스팅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상관없다. 라면사리처럼 중독성 있는 앱이다. 자꾸 생각나. 총체적 마이웨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고, 짜증날 때마다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짤방을 고를 땐 나도 모르게 진지해졌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희열이다. “이 앱은 망했어 ㅋㅋㅋㅋ”라고 말하면서 자꾸 썹 아이콘을 터치한다. 이런 게 사랑인가?
리뷰할 생각도 없었는데 일주일을 꼬박 사용하다가, 썹이 망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홍보대사로 나섰다. 뻑하면 서비스 접기로 유명한 카카오가 썹을 버리지 않아야 할 텐데.
여러분이 이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귀가 솔깃한 기능을 소개하고 싶은데 없다. 음, 짤방을 쉽게 검색할 수 있고, 내가 팔로우한 상대의 포스트에 똥모양 스티커를 붙여 조롱할 수 있다. 무료 운세를 볼 수 있고, 좋아요를 연속으로 빠르게 여러번 누르면 연타도 가능하다. 터치에 삑사리가 나면 좋아요가 취소되니 명심하자. 이모지로 다양한 월페이퍼를 만들 수 있다. 대부분 어설프지만, 이상한 곳에서 고퀄리티다. 썹은 진지하게 설명할수록 우스워진다.
아마 내가 썹을 하며 즐거웠던 이유는 이 공간이 아직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린 모두 또라인데 헛소리를 할 공간이 너무 부족했다. 썹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착한 모지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되먹지 않은 소리를 싸지르는 그런 SNS다. 악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천진난만하다. 일종의 판타지다. 우습고도 참신한 시도다. 운영자들이 나서서 ‘병맛 코드’라는 컨셉을 지정하고 나섰다는 건 촌스러운 전략이지만 동시에 친근하다. 버그를 발견해도 괜히 신이 나는 그런 매력이 있다.
여러분 모두 모여 썹에서 같이 놉시다. 이거 망하면 나 썹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