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프레소
새로운 커피를 맛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그걸 리뷰하는 건 더 신나는 일이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시는 커피지만, 조금 다른 기분으로 커피의 맛과 향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으니까.
전 세계를 유랑하며 커피에 숨겨져 있는 이야깃거리를 찾아 헤매는 네스프레소가 올해 첫 번째 한정판 캡슐을 선보였다. 리뷰의 주인공은 카페 이스탄불과 카페 베네치아. 최초의 커피하우스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커피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오늘 소개할 커피가 터키나 이탈리아에서 마시는 커피 스타일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카페 이스탄불과 베네치아는 각각 1500년대 콘스탄티노플과 1700년대 베니스의 커피 문화에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그 당시의 분위기를 모락모락 김이 나는 커피의 맛과 향으로 그려냈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잠깐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해보자. 다이얼을 맞춘다. 시간은 1500년대. 최초의 커피 하우스였다고 알려진 이스탄불.
창가로 내리쬐는 햇살을 따라 마치 빛의 입자처럼 보이는 먼지들이 카펫 위를 떠다닌다. 내부는 소란스럽다. 알아 들을 수 없는 언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인다. 달그락대며 찻잔이 부딪치는 소리도 들린다. 당시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관문 같은 곳이었다. 좁았던 그들의 세계가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커피 하우스는 다양한 인종과 철학이 뒤섞여 있던 곳이었다.
캡슐에 푸른색을 칠하고 패턴을 입혔다. 네스프레소는 이런 걸 참 잘한다. 당신이 이미 네스프레소 캡슐을 잔뜩 갖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귀여워서야 또 갖고 싶을 수밖에.
이스탄불은 아라비아 모카와 인도,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원두를 블렌딩했다. 굉장히 진한 맛이다. 우리가 커피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그려지는 맛을 진하게 응축한 느낌이다.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뜨겁고 진한 맛. 커피에서 자연스러운 흙내음이 난다.
네스프레소 캡슐을 넣고 25mm의 용량의 에스프레소로 내린다. 진하고 꽉 조이는 맛이 오후의 나른함을 날려버린다. 자몽 타르트와 함께 먹으니 아주 궁합이 좋다.
이스탄불의 매력은 버츄오에서 한층 더 매력적으로 피어난다. 40mm의 적은 양이 추출되는데 카푸치노 같은 풍성한 크레마를 뚫고 강한 커피의 향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스파이시한 향과 강하게 로스팅한 맛이 훌륭하다. 캐릭터가 굉장히 세다. 산미는 거의 느낄 수 없고, 묵직한 바디감과 입안을 가득 채우는 쓴맛이 입안에서 맴돈다.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길 때까지 뚜껑처럼 남아있는 크레마가 커피의 맛을 끝까지 일정하게 유지시켜준다. 목을 따라 넘기고 나서도 입안에 남는 단맛과 향이 끈질기다고 생각될 정도다.
또 다시 다이얼을 맞춰보자. 시간은 1700년대 장소는 베니스.
그 당시 베니스의 커피 하우스는 요즘 말로 치면, ‘힙스터의 성지’였다. 상인부터, 정치인, 로비스트, 지식인, 과학자들까지 각지의 ‘깔롱쟁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이야기를 나눴다. 하우스는 에티오피아와 인도산 아라비카 커피가 서유럽으로 들어오는 관문이기도 했다. 한쪽에선 누군가 음악을 연주하고, 다른 한쪽에선 활발한 설전이 오고 갔다. 어떤 것을 하든 테이블의 한 가운데엔 커피가 있었다. 사람들은 동양에서 온 커피를 마시며 인생을 탐구했다.
카페 베네치아. 붉고 노란 융단을 깔아둔 듯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디자인이다.
카페 베네치아는 아까 마신 카페 이스탄불과 비교하면 확실히 가볍고 산뜻하다. 에디오피아의 하라 지역에서 재배된 커피와 인도산 아라비카를 블렌딩했다. 레시피는 룽고로. 산뜻한 과일과 향긋한 꽃향기가 화사하게 퍼진다. 입안에 커피를 머금고 조금씩 목으로 흘려 보낸다. 갇혀있던 맛을 야금야금 음미하듯이.
버츄오는 230ml로 풍성한 크레마과 함께 향긋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우아하고 섬세한 맛이 한층 더 살아난다. 입안에 붉은 융단을 깔아둔 것처럼 부드럽게 맛이 퍼져나간다. 상큼한 과일과 작고 소담한 꽃향기가 풍긴다. 온 신경을 집중하면 꽃과 약한 산미도 느껴진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던 우리는 잠시 카메라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 네스프레소가 그랬던 것처럼 과거 커피 하우스에 영감을 받아 커피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올 겨울 유난히도 해가 좋고 따듯한 날이었다. 시덥잖은 이야기였지만 바쁜 촬영 중 맛본 찰나의 행복이었다. 통창으로 햇살이 진격한다. “저 지금 행복지수가 엄청 높아요” 에디터 기은이 포크를 쥐고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이번 한정판의 매력은 단순히 향기로운 맛의 커피 뿐만이 아니다. 맛 좋은 커피와 함께 과거의 분위기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코와 혀로 시작해, 내가 지금 있는 공간까지 바꿔버릴 수 있는 힘. 한 잔의 커피가 당신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순간은 이토록 사치스럽고 아름다운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