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고잉을 타보았다
안녕,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초등학교 때 그린 그림을 꺼내 보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덕후, 신동윤이다. 어릴 때 모두 한 번쯤 그려보는 미래 그림이 기억나시려나? 나도 열심히 그렸다. 그때 나는 2020년쯤 되면 자동차는 다 날아다니고, 사람들은 전부 방독면 쓰고 다닐 줄 알았다. 딱히 내가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니고 그때가 한창 ‘에코’가 이슈라서 그랬다.
근데 내 친구는 자동차가 막 사람 없이 계속 돌아다니고 있어서 되는 대로 잡아타면 되는 미래를 그렸다. 나는 “세상에 주인 없는 자동차가 어디 있어. 그럼 다 훔쳐 가지 바보야!”하고 놀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한국의 엘론 머스크…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나는 킥고잉을 볼 때마다 생각보다 우리는 미래에 가까이 와있다는 걸 요즘 정말 훅훅 느낀다.
아차, 킥고잉이 뭔지 말을 안 했다. 당연히 주인 없는 자동차가 거리를 막 돌아다니는데 잡아타면 안 되지만 이건 좀 비슷하긴 한 물건이긴 하다. 주인 없는 전동 킥보드가 거리에 세워져 있으면 잡아타면 된다. 이른바 ‘공유 모빌리티’라고 하는 새로운 산업인데, 자매품으로 (킥고잉에서 서비스하진 않지만) 전동 자전거 같은 것도 있다. 킥고잉은 서울시의 따릉이와 비슷하지만, 전동이고 킥보드라는 게 다르다. 자, 설명 끝.
그럼 이걸 뭐 어찌 쓰는 걸까. 킥보드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으아아아아! 하면 되는 걸까?
당연히 그건 아니다. 세상에는 택시를 잡거나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기에는 무리지만 걷기엔 또 빡센 그런 거리가 있다. 걸어서 10~30분 정도 걸리는 애매한 거리말이다. 나는 자전거도 잘 탈 줄 모르고, 차도 없고, 택시 탈 돈도 없는, 세상에 존재하는 뚜벅이 중에서도 진정한 뚜벅이라서 그런 거리는 대개 걷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하루 기본 만 보에서 만 오천 보는 걸어 다닌다는 말이다. 근데 솔직히 좀 힘들다.
이게 광고라면 “그럴 때는 킥고잉 앱을 켜고 가장 가까운 킥고잉을 찾아보세요!”라고 말하겠지만 광고가 아닌 관계로 그러진 않겠다. 아니, 사실 애초에 그러기가 쉽지 않다. 리뷰하면서 초반부터 아쉬운 점을 말해야 한다는 게 참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처음 만나는 장벽인걸.
여러분이 킥고잉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크게 다섯 곳이다. 신촌과 홍대 인근 지역, 여의도, 강남구, 잠실역 인근, 그리고 모든 공유 모빌리티의 격전지 판교. 여러분의 주 활동 지역이 이곳 중 하나가 아니라면 킥고잉은 애초에 선택지가 아니다. 다만 나의 경우에는 참 기가 막히게도 신촌에서 대학을 다니고 강남권에서 자주 놀고 판교역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에 산다. 그러다 보니 거의 킥고잉으로 해결이 되는 편이라 나름대로 잘 이용하는 중이다.
다섯 곳 이외의 장소가 ‘나의 나와바리!’ 라고 여기시는 분들은 좀 아쉬울 수도 있지만, 이 리뷰는 대개 다른 공유(혹은 일반적인) 전동 킥보드에도 적용되니까 한번 찬찬히 읽어보시라.
여러분이 알아야 할 점이 있다. 내가 잘은 못(타는 수준이라기보다는 거의 못) 타지만 자전거도, 타봤고 전동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타봤는데, 킥고잉은 솔직히 오토바이에 가깝다. 1200CC짜리 할리데이비슨 그런 건 아니고, 힘이 달리는 스쿠터라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하려나? 어쨌건 그러니까 우리가 어릴 때 타고 놀던 씽씽이 생각하면 크게 다친다. 여기서 크게 다친다는 건 여러분의 코가 납작해진다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크게 다친다는 거다. 뭐든 안전이 최고다. 주의하자.
사설이 길었다. 제대로 이야기해보자. 여러분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킥고잉을 찾는 일이다. 따로 주차장이 있는 서비스가 아니라 그냥 내리는 곳에 세워두고 가면 되는 비고정형 공유 모빌리티다 보니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앱에서 GPS를 제공하긴 하지만, 여러분도 나도 알다시피 GPS는 정확하지 않다. 우리 모두 월리를 찾는 기분으로 시야각을 조금 넓히고 찾아보자.
찾았다고? 오오, 축하한다. 가장 어려운 일을 마쳤다. 이용법은 너무나도 쉽다. 앱을 통해 카메라로 핸들 중앙에 있는 QR코드를 인식하면 끝이다. 공들여서 찍을 필요도 없다. 나는 지금까지 QR코드를 이렇게 잘 읽는 앱을 본 적이 없다. 거의 카메라의 구석에 닿기만 해도 바로 인식한다. 자, 이제 사뿐히 보드에 발을 얹고 다른 발로 세 번 동동 굴러서 가속을 준 다음, 액셀러레이터 버튼을 누르면 슈-웅하고 나간다. 빠르고 조용하게, 말 그대로 슈-웅하고.
여러분이 가장 먼저 느끼게 될 건, 생각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시속 25km 이하로 주행하도록 조정되어 있으니 실제로 그렇게 빠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동차나 바이크와는 다르게 윈드쉴드도 없고, 서 있어야 하는 불안정한 자세다 보니 속도감이 더 크다. 게다가 주행 속도가 계기판에 나오는 것도 아니라 대충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나는 무척이나 느리게 살살 운전하는데도 처음에는 진짜 무서웠다. 단, 나는 가족피셜 겁쟁이니 개인차는 존재할 수 있다.
그래도 스스로를 변호해보자면, 전동 킥보드 자체가 생각보다 무섭다. 우선 완충작용을 할 쿠션부가 전혀 없으니 충격은 탑승자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작은 턱을 지날 때도 온몸에 힘을 바짝 주고 퉁 하고 넘겨야 한다. 한마디로 킥보드의 갑작스런 익스트림 스포츠화. 그뿐만이 아니다. 가속도 생각보다 빠르고 방향 전환을 위해 급격하게 꺾는 것도 불가능하다. 익숙해질 때까지 조금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동 킥보드는 현행법상 원동기로 취급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전동 킥보드를 ‘차와 함께’ 차도에서 타야만 한다. 가장 무서운 점이지만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 도로를 달려보니 차들의 견제에 겁을 잔뜩 먹어버려서 다른 무서움은 금방 사라져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킥고잉 측에서도 사용자가 면허(원동기 면허, 1종, 2종 뭐든 상관은 없다)를 등록해야만 이용할 수 있도록 했고, 헬멧 착용을 권장하고 있다. 다른 앱은 면허를 등록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도로에서 타야 하는 한 면허를 등록하는 편이 옳다. 헬멧을 안 쓰고, 면허 없이 도로를 주행하면 단속에 걸릴 수도 있다.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다 여러분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킥고잉 전동 킥보드에는 ‘21세기 축지법’이라는 말이 적혀 있는데, 꽤나 맞는 말이다. 세상에는 공유 오토바이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 비교 대상은 공유 전동 자전거가 될 수밖에 없는데, 전동 자전거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자전거다. 왼손이 거들 듯, 모터는 거들 뿐이다. 결국 페달을 밟아줘야 앞으로 나간다는 말이다. 반면 킥고잉은 힘이 안 든다. 그냥 올라타서 처음에만 몇 번 발을 굴러주면 쭉 나아가니 진짜 축지법을 쓰는 기분이다. 앞에서 계속 무섭다 무섭다 했지만, 적응되면 신나서 “히히,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하면서 타게 된다.
처음에는 무서웠던 속도감도 금방 즐길 수 있다. 말한대로 윈드쉴드가 없으니 미세먼지에 쩔어있는 바람도 꽤나 산뜻하게 다가온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시야에 무리가 갈 만큼 빠르지는 않으니 윈드쉴드가 필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오락가락하지 말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둘 다 사실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 자전거 페달을 밟으라고? 킥고잉에 손이 갈 수밖에. 짐을 실어야 할 상황이라면 자전거를 고려해볼 만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재미와 편리함을 동시에 잡고 있는 킥고잉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최고의 장점은 역시나 아무 데나 세워도 된다는 점. 적당한 곳에 세워놓고 가버리면 그만이라는 게 너무나도 좋다. 킥고잉을 몇 차례 타보면 따릉이처럼 주차장이 정해져 있는 고정형 공유 모빌리티는 이용하기 힘들어진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한 비슷한 감각을 예로 들자면 에어팟을 쓰다 보면 이어폰을 쓸 수 없는 것, LTE를 경험하면 3G를 버틸 수 없는 것과 같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지하철에서 내린 다음 20분 거리를 걷는 게 싫어서 전동 킥보드를 샀다. 매번 킥보드를 들고 지하철로 출근했는데, 킥고잉이 나오자 바로 팔아버렸다. 그 편리함은 정말… 형언할 수 없다.
여러분이 보는 도시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글쎄, 대개 사각 유리창 안의 모습일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유리창을 통해서 밖을 본다. 학생이면 강의실에서 볼 테고, 직장인이면 사무실에서 보겠지. 그리고 출퇴근이나 등하교 시간에는 자동차 혹은 버스, 지하철의 유리창을 통해서 밖을 볼 테고.
전동 킥보드 같은 이동 수단이야말로 도시를 경험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킥고잉은 말한다. 맞는 말이다. 걷기에 부담스러운 거리뿐만 아니라 꽤 먼 거리도 해당하는 말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를 타지 않고 킥고잉을 이용하면서 여러분은 자신이 일하고 사는 도시를 볼 수 있다. 유리창이라는 프레임을 통해서가 아니 여러분의 눈으로 직접. 또, 주차된 킥고잉을 찾는 것만으로도 몰랐던 도시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도시의 모습을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나는 도시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애정이 발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애정은 여러분이 삶을 이어가는 데, 혹은 지루한 일상을 버티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설사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답답한 유리창으로 세상을 보는 것보다는 그저 뻥 뚫린 세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개운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