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에디트 Jun 21. 2019

도레이씨 안경닦이

여러분 안녕! 여러분에게 지치지도 않고 조금 쓸모없지만 사치스러운 물건을 들이미는 에디터M이다.



고작 안경닦이라도 그 분야의 명품이 있다. 살짝 비싸지만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 물건. 손에 닿고 자주 써서 쓸 때마다 ‘역시 명품이야’라고 중얼대며 내 소비를 합리화할 수 있게 만들어줄 그런 것 말이다.



도레이씨의 제품은 안경닦이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린다. 에르메스란 말을 너무 쉽게 붙이는 거 아니냐며 손사래를 칠 수도 있지만, 정말 좋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내 말을 들어보자. 지금까지 사용해본 바로는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하니까.



도레이는 화학회사다. 1926년에 일본에서 시작해 각종 합성 섬유와 물건의 기본이 되는 재료를 만든다. 이렇게 말하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우리가 알 만한 것 중에 예를 들어 보자면 유니클로의 히트텍 소재를 도레이씨가 만들었다. 사실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냥 환갑이 넘은 일본 회사고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중견회사로 기업과 소비자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뭐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



우리나라에는 정식 수입되는 게 없어 직구를 했다. 패턴도 크기도 다양하지만 내가 고른 건 무지에 가로세로 19cm인 기본형 제품이다. 하지만 가격이 그리 만만치 않다. 한 장에 5천원 정도. 정확히 말하면 4,700원 정도다. 가장 기본 제품을 사서 이 정도지, 패턴이라도 들어가면 2만 원이 훌쩍 넘는 비싼 몸값에 놀라게 된다. 고작 안경닦이가!



그런데 포장을 뜯어보고 솔직히 놀랐다. 안경점에서 안경 사면 공짜로 주는 걸 비싼 돈 주고 직구까지 했는데 나한테 이럴꺼야? 공짜보다 더 얄팍하고 딱히 만듦새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폰 화면을 한 번 닦는 순간, 알게 됐다. 아 이래서 에르메스라고 하는구나!



안경닦이라는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안경도 닦아보기로 한다. 눈도 좋으면서 안경을 쓰는 에디터B의 것을 훔쳐 왔다. 눈이 좋은 데 왜 이런 걸 쓰냐고 물으니, 블루라이트 차단 때문이란다. 아무리 봐도 멋 부리려고 끼는 것 같은데. 이상한 녀석이다.



아무튼 남의 안경을 빌려다가 지문을 잔뜩 묻혔다. 괜찮다. 이 명품 안경닦이로 깨끗하게 지워줄 예정이니까.



안경을 닦는다. 종잇장처럼 얄팍한 천을 손에 쥐고 살살 안경을 닦는다. 안경 좀 써보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이런 지문이나 기름때는 안경닦이로 완전히 깨끗하게 지우기 힘들다.



그런데 깨끗하게 닦인다. 전후를 비교하니 세상이 한 톤 밝고 선명해진 느낌. 이건 그냥 천으로 닦은 수준이 아니다. 안경점의 초음파 세척기를 사용한 것처럼 선명해진다.



내친 김에 사무실에 있는 이런저런 물건을 닦아보기로 한다.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해 아이폰 화면을 딱 반만 닦아봤다. 정말 잘 닦인다. 어설픈 것으로 닦으면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오히려 기름이 밀린 자국이 생기기 마련인데 도레이씨 안경닦이는 그런 게 없다.



망원 렌즈도 닦아본다. 우리 사무실에서 촬영 장비 관리를 도맡고 있는 권PD는 결벽증이 있어 모든 물건을 깨끗하게 관리한다. 권피디가 예비군을 간 틈을 타서 300만 원짜리 렌즈 표면에 검지로 도장을 꾸욱 찍는다. 지문을 떠도 될 만큼 선며엉하게 찍혔다. 아마 이 기사를 권PD가 본다면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어댈 게 분명하다.


별로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천이 왜 이렇게 잘 닦이는 걸까? 자세히 보면 빗살무늬의 결이 보인다. 얄팍하긴 해도 뭐랄까 손에 닿는 느낌이 쫀쫀하다. 하지만 정말 얇다. 손으로 꽉 쥐면 바로 주름이 지는 그런 소재다. 잘 접으면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줄어들기도 한다.



마지막은 지문의 끝판왕 맥북 화면이다. 물티슈부터 안경닦이까지 어떤 걸로 닦아도 제대로 닦이지 않던 지독한 녀석이다. 이상하게도 내 맥북은 언제나 만신창이다. 키보드부터 시작해 핸드페인팅이라도 한 것처럼 손자국투성이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맥북화면을 닦아본다. 역시 난이도 끝판왕답게 쉽지 않다. 안경이나 스마트폰처럼 가볍게 천을 몇 번 왔다 갔다 한다고 닦이지 않는다. 손가락에 조금 더 힘을 주고 닦아본다. 조금 더 여러 번 움직이니 기적처럼 닦인다. 무엇으로도 깨끗해지지 않아서 비눗물로 빨아버리고 싶었던 내 맥북 화면이! 방금 공장에서 나온 것처럼 깨끗해졌다.



나는 안경을 쓰지 않지만 아이폰, 렌즈, 맥북까지 세상에 닦아주어야 할 물건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니까 도레이씨의 안경닦이는 꼭 사세요!


기사제보 및 제휴 문의 / hello@the-edit.co.k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