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아아메의 계절. 서늘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차가운 음료를 마시는 걸 좋아해요.
컵에 얼음이 부딪히며 나는 잘그락 소리. 커피를 한 입 크게 입에 머금고 입 곳곳에서 한 번 굴린 다음 꿀꺽 삼키면 선명한 궤적을 그리며 식도를 지나 위로 떨어지는 아릿함. 그럼 여름이 방금 넘긴 커피만큼 물러났다가 다시 오기를 반복하는 거죠.
이럴 때 제가 정말로 참기 힘든 게 뭔지 아세요? 시간이 지나면서 컵 주변에 물방울이 땀처럼 맺히고, 얼음이 점점 쪼그라들면서 시원해야 할 내 음료가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되는 거예요. 으 정말 상상만으로도 질척거리네요.
저는요. 음식에서 간 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온도라고 믿는 냄비 같은 사람이에요. 차가운 것은 살얼음이 가득 있어서 먹자마자 골이 쨍할 정도로 차갑게 먹어야 한다고 믿고요. 뜨거운 것은 펄펄 끓는 뚝배기에 담겨 있어서 후후 불어 먹지 않으면 입천장이 홀랑 까질 정도인 게 좋아요. 그리고 제가 마지막 한 숟가락을 뜰 때까지 그 온도가 유지되었으면 하고 바라죠. 제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요?
그래서 좋은 음식점의 기준 중에 하나가 바로 ‘좋은 그릇’이기도 해요. 무릇 모양이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음식을 가장 맛있게 느끼게 해줄 최적의 온도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그릇을 써야 한다고요. 냉면은 크고 누렇고 두꺼운 놋그릇에, 설렁탕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뚝배기에 먹어야 제맛이죠. 자꾸 배가 고파지는 것 같으니 음식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뜨아에서 아아메로 넘어가기 시작하는 계절이 오면 손에서 놓지 않는 게 있어요. 바로 스테인리스 텀블러입니다. 몇 년 전부터였을까요. 제가 이 텀블러의 은혜를 입게 된 게요. 사실은 ‘나도 환경을 생각해볼까?’라는 얄팍한 생각에서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텀블러의 힘은 훨씬 더 강력했어요.
원래 제가 사용하던 것은 무려 990ml 짐승 용량의 텀블러에요. 워낙 마시는 걸 좋아하고, 스타벅스에서도 아이스 음료는 최소 그란데 정도는 주문하는 저에겐 이 정도 사이즈는 필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이걸 쓰는 걸 본 에디터H는 너무 크고 무겁고 못생긴 거 아니냐며 볼 때마다 눈썹을 찌푸리고 혀를 내두르더라구요. 참내, 한여름에도 뜨아를 찾는 에디터H가 뭘 알겠어요.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긴 좀 뭐 하지만 이번 여름엔 작년에 쓰던 거 말고 다른 걸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조금 더 예쁘고, 조금 더 기능이 좋은 나를 위한 완벽한 게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 눈에 든 것은 써모스의 트로피칼 콜드컵이에요. 아마 이번 여름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이 컵과 함께 할 거란 어떤 강력한 예감이 옵니다.
스테인리스 콜드컵의 경우는 내용물이 보이지 않아서 좀 답답할 수 있잖아요. 대신 이건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그라데이션으로 보는 맛을 살렸어요.
얼음을 가득 넣은 텀블러는 내 아아메를 지켜줄 견고한 성이 됩니다. 게다가 써모스잖아요? 다들 학교 다닐 때 써모스 보온 도시락 한 번쯤은 써보셨잖아요. 진공단열 스테인리스 구조가 차가운 기운을 거울처럼 반사시키고, 찬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지켜주거든요. 얼음을 가득 채우면 최소 6시간은 시원함이 똑같이 유지되니까요. 아니 세상에 누가 한 잔의 음료를 6시간이나 마시겠어요? 사실 이 정도면 한 번의 얼음양으로 2번의 아아메를 마실 수 있죠.
컵을 쓸 때 입에 바로 닿는 입구 부분이 아주 날렵하게 빠져서 음료를 마실 때 조금 더 시원하게 즐길 수 있어요.
600ml의 넉넉한 용량도 마음에 들구요. 저는 실리콘 빨대와 뚜껑도 함께 쓰고 있어요.
이런 텀블러를 고를 때 놓치기 쉬운 게 바로 세척이에요. 하루가 멀다하고 써야 하는데 세척이 번거로우면 결국은 손이 가지 않고, 일회용이 아닌 듯 일회용인 듯 몇 번 쓰고 버려지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이건 입구가 워낙 넓으니까 손이 끝까지 들어가서 세척하기도 참 좋더라구요.
아아메를 즐겨도 좋지만, 하이볼 칵테일을 만들어 마셔도 참 좋아요. 여러분 초정 탄산수에서 나온 유자맛 먹어보셨어요? 이거 좀 괜찮아요. 유자의 껍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향을 정말이지 꽤 잘 살려냈더라구요.
얼음을 가득 채운 컵에 탄산수만 부어도 충분히 맛있지만, 여기에 위스키를 조금 부으면 근사한 유자 하이볼을 즐길 수 있답니다. 초정 탄산수가 탄산이 워낙 센 편이라 하이볼에서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이런 보냉컵은 사실 아아메가 아니라 하이볼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싶더라구요. 시원함이 오래도록 유지되고 얼음도 녹지 않으니까 몇 시간 동안 마셔도 위스키의 맛이 흐려지지도 탄산이 날아가지도 않고 즐길 수 있어요. 저처럼 아주 조금씩 술을 즐기는 사람에겐 마르지 않는 샘처럼 하루 종일 술을 마실 수 있는 좋은 장비가 되는 셈이죠. 무엇보다 이렇게 텀블러에 넣어서 마시면 누가 술을 마신다고 생각하겠어요? 저의 벌게진 얼굴만 보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깔깔.
여름은 이제 막 시작했어요. 혹시 아직도 집이나 사무실에서 유리컵이나 얄팍한 플라스틱 컵에 차가운 걸 마시고 있는 분이 있다면, 정말이지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면서 이 컵을 권하고 싶어요.머리가 띵할 정도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여름과 싸우다 보면 절대 일반 컵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정말이에요. 저를 믿으셔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