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코나 카페 KBOE2030.W
요즘 나는 갖고 싶은 게 별로 없다. 여전히 물건을 사지만 택배 박스를 뜯기가 귀찮고, 새로 나온 제품에도 예전 만큼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소비의 요정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이 내 안에 있는 물욕을 모두 휘발시켜 버린 걸까? 돌아와라 집나간 물욕이여. 식욕말고!!!
그래서 오늘은 모처럼 “오, 괜찮은데?”싶었던 신제품을 간단하게 소개할까 한다. 막 찌릿찌릿할 정돈 아닌데 백화점 가전 코너에서 우연히 마주쳤다면 마음이 흔들렸을 법한 물건이다. 어쩌면 샀을지도 모르겠다. 갖고 싶은 게 별로 없다고 말하고 나서 이런 말 하긴 좀 머쓱하지만, 원래 내 물욕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거대하고 촘촘하니까.
왜 마음에 들었냐면 첫째로 예쁘고, 둘째로 예뻤기 때문. 이탈리아의 가전 브랜드 드롱기가 출시한 전기주전자 ‘아이코나 카페 KBOE2030.W’다. 곱고 뽀얀 제품 디자인에 비해 암호명처럼 늘어지는 네이밍은 수긍이 가지 않는다. 드롱기 제품을 몇몇 써보았는데 복불복이었다. 드롱기의 미니 온풍기는 소비전력이 너무 거대해서 겨울에 몸을 녹이려고 틀었다가 사무실 전기가 나가버리는 고통을 선사했고, 지금 쓰고 있는 드롱기 프리마돈나 엘리트는 내 인생 최고의 커피 머신이다. 그렇다면 얘는 어떨까.
신제품은 일반 전기 주전자와 조금 다르게 생겼다. 마치 핸드 드립용 주전자처럼 좁고 긴 주입구 때문이다. 실제로 핸드드립 용으로 사용할 수 있고 말이다. 형태를 보니 단번에 떠오르는 유사 제품이 있다. 발뮤다의 더 팟. 그런데 쓰임새를 살펴 보면 드롱기의 신제품이 몇 곱절 나은 것 같다.
받침대에 나란히 자리한 버튼을 보자. 귀엽다. 마치 빈티지 전화기에 달린 넘버링 버튼 같아 보인다. 전화는 걸 수 없지만 널 얼마나 뜨겁게 만들지는 정할 수 있다. 왼쪽부터 50도, 60도, 80도, 95도, 100도까지 5단계 온도 조절 버튼을 제공한다. 각 음료에 맞게 온도를 바꿀 수 있으니 유용하겠다. 생각보다 모든 음료를 펄펄 끓는 100도에 마셔야 하는 게 아니거든. 작동 버튼으로 설정한 온도를 20분 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장점.
물 용량은 1L. 제품 무게는 1kg. 뚜껑을 열지 않아도 물 높이를 확인할 수 있게 수위표시창이 달려 있다. 드롱기고 발뮤다고 배신은 항상 가격에서 일어난다. 이 콤팩트하고 수려한 주전자로 물을 끓이기 위한 기회비용은 21만 9,000원. 비싸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 고급스러운 주전자를 배경으로 차를 끓이고 사진을 찍어 #홈카페 해시태그를 걸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오케이. 50도로 20분간 유지해줘. 지금 이 훈훈한 온도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