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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Apr 23. 2020

20세기를 뒤집어놓으신 '의자'들

안녕, 디자인·건축 글을 쓰는 전종현이야. 저번에 다이아몬드로 너무 가열차게 굿을 한 덕분인지 당분간 보석은 안 다뤄도 될 것 같아서 글 주제를 바꿔봤는데 막상 다른 거 쓰려니까 흥미가 떨어졌어. 이 얘기를 친구한테 하니까 마감하기 싫은 거래. 예리하군. 지금 유튜브로 도망치고 싶은데 며칠 전 에디터 H가 갑자기 ‘요즘 유튜브를 자주 하신다고요?’라며 카톡했어. 이거 유언의 압박 맞지? 흑흑흑


이번에는 주제 하나로 글 두 편을 써야 할 것 같아. 왜냐면 한 편에 담기에는 아이템이 방대하거든. 사실 다이아몬드 글이 너무 길어서 기빨아먹는다는 피드백이 있어서 좀 가볍게 다루려고 했는데, 소인 깨달았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왔다는 것을… 왜냐면 주인공이 바로 ‘의자’거든.


의자는 가구의 왕, 여왕, 꽃 등 암튼 좋은 건 다 붙일 수 있어. 이유는 간단해. 의자만큼 사람과 가깝게 지내는 가구가 없거든. 우리야 좌식 문화가 발달해서 의자가 필요 없을 때도 많지만 서양은 입식 문화라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해. 그 정도로 사용 빈도가 높으니 기능적인 면을 갖춰야 하고, 늘 곁에 있으니 심미적인 면도 맞춰야 하고. 이렇게 토끼 두 마리를 다 잡으려 하면 결국 정답은 없고 ‘취향’밖에 안 남지.


그래서 의자 글은 개인 취향에 맞춰 쓰려고 해. 만약 내 손에 디에디트 법인명이 찍힌 한도 무제한 법카가 들어올 때 FLEX하고 싶은 의자들을 마음의 장바구니에 담아보려고. 하악. 생각만 해도 아찔하군. 의자는 치펜데일(Chippendale)처럼 18세기 고전물도 참으로 매력 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온갖 예술 사조와 기술과 재료가 짬뽕되면서 전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물건이 됐어.


이번 의자 글에는 기본 전제가 있어. 시기는 20세기로 한정할 것. 그리고 가구 브랜드에서 현재에도 문제없이 새 제품으로 잘 팔고 있을 것. 생산이 중단되어 경매에서 고가로 구해야 하는 의자는 제외했어. 그래야 카드를 긁을 수 있잖아. 아, 이 배려심… 멀게는 100년 전, 짧게는 몇 십년 전에 발표돼 이제는 업계 전설이 되어버린 의자를 지금도 원형 그대로 살 수 있다는 거, 너무 짜릿하지 않아? 예술이 갖지 못하는 디자인의 엄청난 장점이라고 생각해. 세월을 뛰어넘는 것 말이야. 짜릿짜릿.


“긴 소리 집어치워” 아, 어디서 메아리가 들려. 얼른 내 장바구니를 개봉 박두할게. 이번 편에는 20세기 초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발표된 의자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봤어. 제품은 오래된 순으로 정렬했어. 참고해줘.


[1]
292 힐 하우스 1

[292 힐 하우스 1 ©Cassina]


디자인 찰스 레니 매킨토시, 1902년

브랜드 카시나

가격 500만 원대 후반

판매처 크리에이티브랩 02-516-1743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야. 예전에는 건축가가 가구 디자인에 참여하는 게 거의 당연시 됐기 때문에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훌륭한 가구는 건축가의 작업일 때가 많았어. 그래서 의자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건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

[찰스 레니 매킨토시의 초상 ©National Portrait Gallery]

암튼 매킨토시는 디자인의 시초라고 보는 영국의 미술공예운동이 모더니즘의 형태로 완성되는 데 굉장한 역할을 한 초기 선구자라고 보면 돼. 이 사람 작업 중 특히 유명한 건 ‘힐 하우스(Hill House)’인데, 공간 인테리어부터 가구까지 모두 그가 담당했어.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한 후 완전 맞춤형으로 디자인한 독한 사람이야.

[힐 하우스 외관 ©National Trust Scotland]
[©National Trust Scotland]
[힐 하우스 내부 ©National Trust Scotland]
[힐 하우스 주인의 침실. 왼쪽 벽에 ‘사다리 등받이 의자’가 있는 거 보여? ©National Trust Scotland]

‘292 힐하우스 1’은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카시나(Cassina)에서 옛 명작을 다시 생산하는 제품 명이야. 원래는 이름이 없어서 생긴 모습 그대로 ‘사다리 등받이 의자(Ladder Back Chair)’라고 불렀어. 힐 하우스 주인의 하얀 침실에 유일하게 존재하던 이 검은 의자의 특징은 당연 등받이야.

[기묘할 정도로 긴 등받이와 격자 무늬는 지금 보아도 굉장히 특별해. ©Cassina]

기하학적 패턴의 기다란 등받이는 다른 의자의 요소와 이질적인 비례를 이루면서 시각적으로 굉장한 임팩트를 선사해. 이게 1902년, 지금으로부터 118년 전에 만든 의자라는 걸 생각하면 기절할 정도로 현대적이지.


나는 이게 당연히 재생산이 안되는 줄 알았는데 카시나에서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 카시나가 참 똑똑한 게 저작권을 잘 확보한다는 거야. 이탈리아 가구회사인데도 뒤에 소개되는 프랑스의 LC 시리즈가 카시나에서 나오거든. 근데 그 배경에는 기술력이 있어. 다른 곳에서 재생산을 못하는 상황에서 1960년 대에 카시나가 완벽하게 부활시켰어. 그런 기술력으로 이제는 모더니즘의 세계를 연 초기 공헌자의 역사적인 작업 저작권까지 확보해 재생산하더라고.

[1917년 헤릿 토마스 릿벨트(Gerrit Thomas Rietveld)가 디자인한 ‘적청 의자(Red Blue Chair)’. 가격은 800만 원대. ©Cassina]

소비자 입장에서는 경매로 오리지널 피스를 구하고 관상용으로 놔두거나, 사설 공방에서 레플리카(=복제품)를 찜찜하게 구현하지 않으면서 믿을 만한 가구 회사에서 새 제품으로 만드니까 좋지. 막 사고 싶지? 그래서 아래에 매킨토시 의자 하나 더 장바구니에 넣었지.


[2]
312 윌로우 1

[312 윌로우 1 ©Cassina]


디자인 찰스 레니 매킨토시, 1904년

브랜드 카시나

가격 800만 원대

판매처 크리에이티브랩 02-516-1743


312 윌로우 1(312 Willow1)은 카시나에서 재생산하는 매킨토시의 의자 모델명이야. 실제 이름은 ‘커브드 래티스 백 체어(Curved Lattice Back Chair)’인데 겁먹을 필요 없어. ‘약간 굽은 채로 격자 처리된 등받이 의자’라는 아주 직관적인 이름이야. 대신 카시나 모델명에는 힌트가 있는데 바로 윌로우지. 매킨토시가 디자인한 공간 중에 ‘윌로우 티 룸(The Willow Tea Rooms)’이라고 당시 인기 있던 찻집이 있었거든. 그 찻집 1층에 배치되어 흰색 공간을 시각적으로 분리하는 데 쓰였다고 해.

[윌로우 티 룸 간판의 서체만 봐도 매킨토시 느낌이 물씬 풍겨와. ©Annan Photographs]
[윌로우 티 룸 전경 ©Annan Photographs]
[윌로우 티 룸 내부 모습 ©Annan Photographs]

이 의자를 사야 하는 이유는 너무 뻔하지. 아름답잖아. 정말 아름답지. 정직하게 호를 그리며 굽은 등받이에는 세로로 짜인 선이 반복되고 격자로 짜인 부분과 자연스럽게 합쳐지면서 기하학적 아름다움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우아하면서 동시에 현대적인 감수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이런 건 정말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에서 나타나는 특징이야. 시대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며 영원한 생명을 갖는 거지.

[곡선과 격자가 아름답게 결합된 디자인은 시대를 초월하는 존재감을 내뿜어. ©Cassina]

116년 전 디자인인데 지금 출시해도 인스타그램에 미친 듯이 올라갈 것 같지 않아? 마치 조각품처럼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하지만 결코 공간을 잡아먹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알고 있는 이 의자는 진짜 사고 싶어.


[3]
파보그 의자

[파보그 의자 ©Carl Hansen & Søn]


디자인 카레 클린트, 1914년

브랜드 칼한센앤선

판매처 칼한센앤선 덴마크 본사에서 구매 가능


덴마크는 우리에게 스칸디나비아=노르딕=북유럽 디자인으로 유명한 국가야. 특히 덴마크의 모더니즘 디자인은 ‘대니시 모던(Danish Modern)’이라고 따로 분류해. 세심한 장인 정신과 기능에 충실한 모더니즘, 그리고 목재 재료가 결합한 대니시 모던이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했기 때문이지. 그중 3대장을 꼽으라면 바로 아르네 야콥센, 한스 베그너, 핀 율이야. 근데 이들 이전에 대니시 모던의 선구자로 불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카레 클린트(Kaare Klint)야.


[대니시 모던의 선구자, 카레 클린트의 초상 ©Carl Hansen & Søn]

특히 지금 장바구니에 담은 ‘파보그 의자(Faaborg Chair)’는 “덴마크의 첫 모던 디자인이자, 대니시 모던의 시작점이다”라는 극찬을 받은 역사적인 의자야. 지금 우리가 보기엔 너무 사바사바 하는 거 아냐, 하겠지만 그때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갈걸. 당시 목재로 만든 의자에는 무조건 장식이 들어갔어. 화려하든 수수하든. 그리고 그런 장식은 직선이랑 거리가 멀었어.


근데 파보그 의자를 보면 형태 면에선 그리스 로마 시대의 우아한 전통을 따르면서도 그 표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어. 대신 기본 구조를 지탱하는 원목 사이의 공간을 라탄으로 직조하면서 장식성을 살렸지. 그것도 직선이 서로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패턴의 연속으로. 즉 이 파보그 의자는 전통을 변형한 형태에 기존의 뻔한 장식을 날려버리며 가구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고 라탄 공예를 통해 모더니즘이 놓칠 수 있는 장인 정신 또한 또렷하게 구현한 걸작이야.

[매끄러운 외형과 라탄으로 직조한 기하학적 패턴의 섬세함은 완벽한 조합이라 말할 수 있지]
[공간과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파보그 의자의 매력 ©Carl Hansen & Søn]

당시 딱 18개만 만들었던 이 의자가 덴마크를 대표하는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인 칼한센앤선(Carl Hansen & Søn)에서 재생산되고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어. 알았으면 뭐다? 장바구니에 넣어야죠. 당연한 말씀을.


[4]
LC7 의자

[LC7 의자 ©Cassina]


디자인 샤를로트 페리앙, 1927년

브랜드 카시나

가격 700만 원대 후반

판매처 크리에이티브랩 02-516-1743


프랑스의 건축가, 인테리어 및 가구 디자이너인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은 요즘 그 평가가 계속 높아지는 대표적인 여성 창작자야. 일례로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파리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는 <샤를로트 페리앙: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며>란 전시가 대규모로 열렸지. 왜냐고? 남성 중심으로 쓰인 예술, 디자인 사(史)에 대한 반작용으로 숨어있던 여성 창작자들을 조명할 때 가장 먼저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고 그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거든.


[샤를로트 페리앙의 초상 ©Archives Charlotte Perriand]

사실, 인정받았다고 말하기엔 쑥스러운 게 이미 생존 당시에도 그녀는 위대한 디자이너로 존경받았어. 요즘 샤를로트 페리앙에 대한 재조명은 ‘크레딧 돌려주기’와 ‘작업의 가치 재산정’이라고 요약해도 좋을 것 같아. 무슨 말이냐 하면 과거에 건축은 온전히 남성의 영역이었어. 페리앙이 모더니즘 건축의 3대장 중 하나인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를 찾아가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여기는 쿠션에 수놓는 데가 아니야.”였을 정도였지. 하지만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듯 다음날 코르뷔지에는 페리앙의 아파트를 찾아와 작업을 몰래 보고 갔고, 페리앙은 곧 코르뷔지에와 함께 일한 최초의 여성 창작자가 됐어.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찍은 사진. 맨 왼쪽이 바로 르 코르뷔지에야. ©Archives Charlotte Perriand]

르 코르뷔지에는 지금도 가장 위대한 모더니즘 건축가 중 한 명으로 칭송받고 있는데 당시에는 그 위세가 어땠겠어. 건축가가 가구를 내놓는 게 자연스러웠던 시절, 르 코르뷔지에는 LC 라인을 선보였어. LC는 그의 이니셜이야. 그래서 자연스럽게 LC 라인은 코르뷔지에가 가구에도 천재성을 발휘한 대표적인 예라고 여겨졌지. 근데 후대에 진실을 파보니까 지금 소개하는 LC7 의자, 다음에 소개할 LC2 의자, LC4 의자를 비롯해 LC 라인의 상당수가 코르뷔지에만의 개인 작업이 아니었던 거야. 협업의 중심에는 샤를로트 페리앙이 있었어.


특히 이 LC7은 페리앙이 코르뷔지에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디자인을 끝낸 작업이야. 다만 제품화는 나중에 르 코르뷔지에, 그의 사촌이자 동업자인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와 협업해 LC 라인의 일부로 내놓았고. 이런 무거운 얘기를 내려놓고 의자를 마냥 쳐다보면 너무나도 귀엽고 앙증맞으면서도 동시에 절제와 세련미를 지닌 녀석이야. 마치 왕자 같다고나 할까.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LC7 ©Cassina]

4개의 다리는 부드럽지만 단단히 무게를 지탱하고 그 위의 동그란 시트는 다소 묵직한 두께감으로 다리를 비롯한 철제 프레임의 날렵함과 대조를 이루지. LC7 의자에서 하이라이트는 등받이야. 평면이 아니라 반원 형태로 호를 그리며 형태를 잡은 등받이는 그 자체로 튜브 형태를 띠고 있어. 시트와 등받이가 지닌 기하학적 원의 형태가 서로 조응하며, 기능적이고 간결하면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게 어떤 건지 잘 보여주고 있지.

[LC7은 어떤 공간이든 이질감 없이 녹아들어. ©Cassina]

[5]
LC2 의자

[LC2 의자 ©Cassina]


디자인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 1928년

브랜드 카시나

가격 1,000만 원대 중반부터 후반까지(내장재에 따라 다름)


LC2 의자는 생김새부터 무척 특이해. 화려하거나 유려하거나 전위적으로 생겼다는 게 아냐. 오히려 그 반대지. 의자인데 정육면체 큐브 모양이야. 앞에서, 옆에서, 위에서 봐도 정육면체 큐브. 강철관으로 단단하게 프레임을 만든 다음 그 사이에 정사각형 쿠션들을 집어넣어서 기존 의자의 문법을 따르지도 않았지. 어떻게 보면 소파 같은데 또 소파라고 하기엔 딱 한 사람만 앉을 수 있고, 1인용 소파라고 하기엔 차라리 의자라고 부르는 게 낫겠지? 게다가 전체가 다 각이 잡혀 있어서 이거 앉는 의자가 아니라 모더니즘 이념을 집어넣은 콘셉트 제품 아닌가 의문의 눈초리를 보낼 수도 있어.

[여기서 봐도 저기서 봐도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정육면체 큐브 덩어리야. ©Cassina]

근데 LC2 의자는 아주 유명한 별칭을 가지고 있어. 프랑스어로 ‘그랑 콩포르(Grand Confort)’. 우리나라 말로는 ‘위대한 편안함’이란 뜻인데 생긴 거랑 너무 다른 별명이지? 하지만 앉아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정말 몸에 맞춘 듯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몸을 감싸는 최고의 의자”라고 말해. 얼마나 편했으면 그 깐깐한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LC2 의자의 가로 너비를 좀 더 키운 LC3 라운지 의자에 앉았을까! 그 비밀은 다름 아닌 재료에 있어.

[LC2의 가로 확장 버전인 LC3에 앉은 스티브 잡스. ‘그랑 콩포르’도 느꼈겠지? ©Justin Sullivan]

LC2 의자의 콘셉트는 푹신한 쿠션을 모아두는 바스켓이야. 오른쪽 왼쪽 옆면, 등받이, 시트, 그 위의 쿠션까지 총 5개의 직사각형 쿠션을 마치 코르셋으로 조이듯 강철관 프레임으로 구조를 만들어서 보이는 건 무척 딱딱하지. 하지만 일단 앉으면 쿠션마다 가득 들어있는 거위털의 푹신함이 사용자의 무게를 흡수하면서 옆면, 등받이 부분이 온몸을 감싸 극도의 편안함을 안기지.

[강철 프레임으로 단단하게 모양을 잡았지만 실제로는 폭신한 큐브 덩어리인 LC2. ©Cassina]

이 의자는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이 함께 작업한 첫 번째 작업이야. 강철관을 구현할 땐 기술력이 모자라서 동네 자물쇠업자의 도움을 받았고 출시했을 땐 코르뷔지에의 광팬인 소수 지식인들만 구매하느라 당시에는 매출 폭망으로 생산을 못했어. 그러다 1965년 카시나가 재생산을 의뢰받고 결국 성공하면서 이 ‘위대한 편안함’의 진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어. 어쩌면 진정한 승자는 카시나 아닐까. 자기네랑 상관없는 가구를 독점 생산해 스테디셀러로 유지하는 건 굉장한 일이니까.

[왼쪽부터 샤를로트 페리앙,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FLC/ADAGP, Paris]
[프레임은 총 8가지로 바꿀 수 있어. ©Cassina]

[6]
LC4 셰이즈 롱

[LC4 셰이즈 롱 ©Cassina]


디자인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 1928년

브랜드  카시나

가격 1,000만 원대 초반

판매처 크리에이티브랩 02-516-1743


셰이즈 롱(Chaise Longue)은 의자의 종류 중 하나인데, 발을 뻗을 수 있는 기다란 침대형 의자를 말해. 여기에 누워서 보통 낮잠을 자곤 하지.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Patricia Urquiola)가 2008년 디자인한 모로소(Moroso)의 보헤미안 셰이즈 롱(Bohemian Chaise Longue).©Moroso 

‘위대한 편안함’을 만든 코르뷔지에, 잔네르, 페리앙 트리오가 원래 쉬는 게 목적인 셰이즈 롱을 디자인했는데 이 의자를 가리키며 ‘휴식을 주는 기계’라고 표현을 했다 하니 그 편안함은 상상을 초월하지 않을까?


사실 모더니즘 건축가들이 만든 가구 중에 엄청나게 편한 가구는 많지 않아. 모더니즘이 기능에 충실해 형태가 단순해진 건데, 형태에 눈을 돌리게 되면 그걸 위해 기능을 희생시키는 경우도 생기거든. 그런 면에서 LC4 셰이즈 롱은 인체공학적인 경험과 사용자 중심의 커스터마이징을 함께 지닌 명품이야. 전체적으로 보면 가장 밑에는 받침대가 있고, 그 위에 마치 활처럼 휜 강철봉과 누운 사람에게 어울리는 모습으로 꺾인 시트가 존재하지.

[활처럼 휜 강철봉은 LC4의 큰 특징이지. ©Cassina]

재미있는 점은 받침대와 셰이즈 롱 본체가 서로 분리 가능하다는 거야. 그래서 위아래 위치 조정을 하면 자기가 원하는 각도로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어. 아예 본체를 땅에 내려놓으면 흔들의자처럼 사용도 가능하지. 목 받침대도 조절할 수 있어서 정형외과에서 사용하면 좋다고 추천받는 의자라지 아마.


코르뷔지에의 감상을 들으면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꿈의 의자라는 생각도 들어.


“나는 미국의 거친 서부 광야에서 파이프를 문 카우보이가 발을 머리보다 높은 위치에 얹혀 파이프 굴뚝을 향하게 한 장면을 생각해본다. 이 의자야말로 진짜 휴식을 위한 장치다.”


[휴식을 위한 꿈의 의자, LC4 ©Cassina]

근데 얄궂게도 LC4 셰이즈 롱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이미지는 어떤 여자가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장면이야. 그 사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샤를로트 페리앙. 이렇게 그녀는 자기가 디자인한 의자의 첫 모델로 디자인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네.

[의자와 관련된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이미지의 주인공은 샤를로트 페리앙이야. ©FLC/ADAGP, Paris]

[7]
바르셀로나 의자

[바르셀로나 의자 ©Knoll]


디자인 미스 반 데어 로에, 1929년

브랜드 놀

가격 1,170만 원

판매처 두오모앤코 02-516-3022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의자는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은 모두가 다를 테니 넘어가고, 그럼 세계에서 가장 부티 나는 의자는 무엇일까, 란 질문에는 공통의 답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면서 럭셔리한 이미지를 강철처럼 간직한 의자가 그 답이 되어야 한다면 단번에 떠오르는 물건이 있긴 해. 바로 바르셀로나 의자(Barcelona Chair)야.

[뉴욕 시그램 빌딩 모형 앞에서 건축가 필립 존슨(왼쪽)과 함께 초상을 찍는 미스 반 데어 로에(오른쪽)의 모습 ©Conde Nast]

모더니즘 건축의 3대장 중 하나이자 ‘적을수록 풍요롭다(Less is More)’란 어록의 주인공인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1929년 디자인한 바르셀로나 의자는 그 태생부터 정말 귀족이야. 1929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 참여한 독일은 국가관(파빌리온) 디자인을 미스에게 맡겼어. 그의 커리어 상에서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전설적인 디자인이었지. 실제 바르셀로나에 가면 미스의 독일관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진 속 이미지를 기대하고 갔다가 독일관만 홀로 있는 풍경에 쇼크를 먹고 돌아오는 경우가 수두룩하기도 해.

[현대에 재현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모습 ©Maciek Jeżyk]
[1929년 세계 박람회 당시 찍은 파빌리온 내부 풍경. 바르셀로나 체어 보이지? ©Wikipedia]

바르셀로나 의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바르셀로나 세계 박람회 독일관을 위해 만든 의자야. 상업적 용도나 대량 생산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니란 거지. 게다가 그 쓰임새는 오직 하나, 스페인 국왕 내외가 독일관에 찾아왔을 때 앉을 수 있도록 놓은 거였어. 한 마디로 재수가 좀 없는데, 문제는 생김새야. 모더니즘 디자인이 낳은 가장 아름다운 가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바르셀로나 의자는 현실을 초월한 멋짐이 폭발해.


의자 시트는 크게 X자로 교차하는 강철 프레임이 지탱하는데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수리적 곡선이 아니라 우아하고 긴장감 있게 살짝 굽어있어. 원류를 거슬러 오르면 이집트와 로마 시대에 쓰던 의자 다리 형태야. 각기 다른 풍요로운 문화권에서 통용되던 다리 양식이 세월을 거슬러 구현됐으니 무의식중에 그 헤리티지를 느끼는 걸지도.

[바르셀로나 의자의 프레임은 마치 유기적인 조각의 일부처럼 느껴져. ©Knoll]

검은색 가죽으로 덮은 시트 본체는 무심한 듯 X자 프레임 위에 올려져 다리 아픈 사람을 유혹하지. 애초부터 국왕을 위해 작정하고 만든 거니 평범한 사람들이 그 포스에서 헤어 나오는 게 쉽지 않아. 그래도 비밀 하나를 알려주면 생각보다 불편하다는 의견이 매우 많아. 근데 아름답잖아. 그렇게 집안의 장식품이 하나 더 늘어도 웃을 수 있는 게 바르셀로나 의자의 진정한 힘이라고 봐.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바르셀로나 의자]
[투명한 통창으로 구현한 파빌리온 맞춤형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탁 트인 곳과 궁합이 최고인듯. ©Knoll]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바우하우스의 교장을 역임한 걸로도 유명한데 교수진 중에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가 있었어. 마르셀 브로이어는 바우하우스 시절 만들어진 의자 중 가장 유명하면서 바우하우스 정신을 대변한다고 평가받는 바실리 의자를 만든 사람이야. 나치 세력의 탄압으로 바우하우스가 폐교되고 그곳에 있던 교수진들 일부는 미국으로 망명을 했어. 미스와 브로이어도 그런 경우야. 그래서 미스의 여러 가구와 브로이어의 바실리 의자는 현재 미국의 가구회사 놀(Knoll)이 생산하고 있어. 나치가 불러온 웃픈 나비 효과야.

[마르셀 브로이어의 초상 ©Hulton Archive Collection]
[바우하우스를 대표하는 가구 작업으로 꼽히는 바실리 의자. 가격은 470만 원. ©Knoll]

[8]
브루노 체어 플랫 바

[브루노 체어 플랫 바 ©Knoll]


디자인 미스 반 데어 로에, 릴리 라이히, 1930년

브랜드 놀

가격 470-570만 원

판매처 두오모앤코 02-516-1743

바르셀로나 의자라는 모더니즘 의자의 대명사를 만든 미스는 캔틸레버 구조를 차용한 의자로도 명성을 얻었어. 캔틸레버는 건축에서 쓰는 용어인데 기둥 두 개로 지탱해야 하는 걸 구조 계산을 통해 한 개로 지탱하게 만드는 거야.

[2021년 완공을 목표로 두바이에 짓고 있는 세계에서 제일 기다란 캔틸레버 빌딩이야. 이제 캔틸레버가 뭔지 알겠지? ©Ithra Dubai]

이걸 의자에 적용하면 수직형 다리 중 뒷부분이 없어지고 다른 형태로 변환되지. 보통 ‘ㄷ’자 형태로 구부린 강철관이 다리와 손잡이를 한 번에 대체하는 장관을 연출해. 미스가 캔틸레버 의자를 처음 만든 건 아니지만 그중 걸작이라 칭할 만한 브루노 의자(Brno Chair)를 만들었지.


브루노 의자는 체코 브루노 지역에 지은 투겐트하트 주택의 침실을 위해 만든 의자야. 여기서 또 디자인 비사가 나오지. 마치 르 코르뷔지에처럼 미스 혼자 가구를 다 만들었다고 오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 경우 그의 절친한 동료였던 릴리 라이히(Lilly Reich)와 함께 고안했다는 게 정설이야. 라이히는 미스와 10여 년 간 긴밀하게 함께 일하면서 바르셀로나 의자를 포함해 다양한 가구 디자인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디자이너야.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와 거장의 존재감 아래 그녀의 업적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어.

[최근 투겐트하트 주택의 원형을 복원하면서 가구까지 완비했어. 브루노 의자를 찾아봐. ©Alex Shoots Buildings]
[1930년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직접 찍어 선물한 릴리 라이히의 초상 ©MoMA]

암튼 브루노 의자는 조금씩 요소가 다른데 그중 가장 압권인 게 바로 플랫 바(Flat Bar)야. 말 그대로 프레임을 튜브가 아니라 평평한 바 형태로 바꿨어. 직선 특유의 깔끔하고 경쾌한 속도감, 그리고 긴장감이 조화롭게 어울린 모습이 ‘완벽’이라는 단어를 내뱉게 만들어. 게다가 강철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스틸을 써서 훨씬 깨끗하고 선명한 느낌이 강조됐지. 납작하게 처리한 스테인리스 스틸은 의자 등받이 중앙 부분에서 시트 중반 지점까지 수평으로 대칭 이동을 하다가 가장 자리를 향해 매끈한 C자 곡선을 그리며 방향을 아래로 틀어.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시트 아래쪽에서 캔틸레버 구조를 구현하고 뒷부분으로 가는 종국에는 하나의 직선으로 이어지며 여정을 마무리 짓지.

[브루노 의자 플랫 바가 출현하면 공간의 분위기가 무척 세련되고 이성적으로 변해. ©Knoll]

시각적인 완결성이 대단히 뛰어나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브루노 의자-플랫 바는 캔틸레버 구조의 건축물처럼 건축적 완결성까지 엿보인다는 점에서 바르셀로나 의자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미스와 라이히의 명작이야. 그러니 이것도 장바구니에 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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