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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Aug 10. 2020

음악 페스티벌이 아직 살아있다고?

음악 들으러 평창대관령음악제에 다녀온 후기

금단증상에 시달리고 있는 객원필자 김은아다. 뭐에 대한 금단증상이냐 하면,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음악이다. 춤·노래 금지령이 내린 마을에 사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옛날 영화가 있는데, 내가 거기에 사는 건 당연히 아니고. 출퇴근길을 스트리밍과 음악과 함께하는 것도 여전한데, 들을수록 목이.. 아니 귀가 타는 건 ‘생음악’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영향을 안 받은 업계가 어디 있겠느냐만 공연계는 특히 처참하다. 매년 봄의 시작을 알리던 각종 페스티벌은 물론이고, 콘서트나 연주회도 장르를 가릴 것 없이 줄줄이 취소 행진만이 이어졌다. 간간이 온라인 음악회, 무관중 생중계 같은 이름으로 뉴노멀 스타일 공연이 열리긴 하지만… 아니야!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라고! 아티스트와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면서 생으로 연주되는 음악을 최소한의 음향을 통해 듣고 싶은 그 마음. 라이브 음악의 매력을 아는 이들이라면 이 목마름을 이해하리라고 믿는다.


그런 와중에 올해 (아마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니 당장 티켓팅을 할 수밖에. 그 반가운 주인공은 평창대관령음악제. 매년 7~8월 강원도 평창 일대에서 열리는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이다. 올해도 ‘정상 개최된다’는 공지에 길게 생각하지 않고 KTX에 올랐다.


여름 한가운데의 금요일, 바다로 향하는 기차라서 그럴까. 강릉행 KTX는 단체로 MT를 떠나는 버스처럼 들뜬 분위기로 가득했다. 요즘은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면 두 시간 만에 동해 바다를 볼 수 있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사실 강원도에 고속철도가 다니기 시작한 건 얼마 전 일이다. 그전에는 강릉에 가려면 고속버스를 타거나 무궁화호를 타고 5시간을 달려야 겨우 강릉에 도착했다는 사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경강선이 개통된 덕분에 나 같은 뚜벅이도 오대산 자락에서 열리는 축제에 편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 반 정도면 어느덧 진부역.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인지 발을 내딛자마자 청량한 공기가 느껴진다.

올림픽 경기장과 가장 가까운 역이어서인지 반다비와 수호랑이 맞아준다. 역시 귀여움은 영원하다. 미리 예약해둔 쏘카를 타고 20분 정도를 달려 알펜시아에 도착했다. 음악제가 열리는 두 개의 공연장과 리조트, 호텔, 올림픽 경기장까지 오손도손 모여있는 곳이다.

산과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느끼면서 산책하는 길, 근사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보인다. 미니 드레스와 보타이를 상큼한 민트 컬러로 통일한 커플, 캐주얼한 셔츠에 실크 스카프로 옷차림을 우아하게 완성한 여성, 하늘빛 재킷과 로퍼로 댄디한 느낌을 주는 중년의 신사. 어디서 이브닝 파티라도 열리나 했더니 공연장으로 향하는 이들이다.

오직 음악을 듣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온 사람들의, 음악을 기다리는 설렘이 옷차림에서 충분히 전해졌다. 감염 예방을 위해 객석을 한 칸씩 띄워놓느라 객석은 반절만 찼고, 뛰어난 연주에도 환호는 자제해야 했지만 축제는 축제니까.


평창대관령음악제의 프로그램은 ‘산속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라는 콘셉트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무겁고 난해한 작품 대신, 극장을 둘러싼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처럼 청량하고 명랑한 곡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기획이다.

<놀면 뭐하니>에 살짝 등장해 대중들에게도 얼굴을 알린 그는 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아 페스티벌을 ‘한여름 밤의 꿈’다운 경쾌함으로 완성해냈다. 덕분에 평소 고전 음악을 멀게만 느꼈던 ‘클알못’이라도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그 상큼함을 살짝 느껴보고 싶다면 아래 영상을 클릭할 것. 올해 음악제에서 연주된 모차르트의 작품이다.

어떤가. 박하사탕을 먹고 솔의 눈을 마시는 것 같은 상쾌함이 느껴지지 않는지. 음악제의 또 다른 즐거움은 리미티드 에디션에 있다. 보통 연주자 20~30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웅장한 교향곡을 1~4명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편곡 무대를 만날 수 있기 때문. 콘서트에서 아티스트가 화려한 댄스곡을 기타 한 대만 들고나와 어쿠스틱하게 연주하는 특별 무대를 감상하는 느낌이랄까. 예를 들어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에는 바이올린이 새가 지저귀듯 오케스트라와 주고받는 부분이 있는데, 이번 음악제에서는 두 대의 피아노로 곡을 연주해 원곡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하는 즐거움은 음악 페스티벌만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내게 올해 음악제에서의 발견이 있다면 만 16세 피아니스트 임윤찬이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호흡을 맞춰서 멘델스존과 프로코피예프의 곡을 연주했는데, 손끝에 또렷한 힘이 실린 연주와 열정적인 에너지가 인상적이었다.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인 듯 한참 동안 박수가 끊이지 않았는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꾸벅 인사를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십대라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아마 머지않아 그의 이름을 더 큰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산뜻한 음악으로 라이브 음악의 목마름을 달래고 나오는 길, 극장에 쓰인 올해 음악제의 주제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 다소 비장해 보이는 이 문구는 베토벤이 최후의 작품을 쓰다가 악보에 적어놓은 글이다. 작곡가로서 인간으로서 수많은 고통에 시달린 베토벤이 어떤 생각으로 그 글을 적어두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아직 답을 모르는 재해를 만나 헤매고 있는 2020년의 우리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어떤 위기 속에서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자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자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거기에서 위기를 이겨낼 힘을 얻자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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