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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Oct 18. 2016

손끝으로 전해지는 네 목소리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오늘은 정말 신기한 제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최근 본 제품 중 가장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진정한 의미의 ‘손전화기’라고 할 수 있겠다. 손가락 끝을 귀에 대면 마법처럼 소리가 흘러나오니까.


INNOMDLE LAB이라는 개발사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소리내어 읽어보자. 이놈들 랩. 한국말로 옮기자면 이놈들 연구소다. 이분들이 만든 제품의 이름은 시그널(Sgnl). 손목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다. 특이한 점은 스마트워치나 스마트 밴드라고 보기엔 부족하다는 것. 시그널은 참으로 허전하게 생겼다. 디스플레이 하나 없는 밴드형 기기다.


시계로 치자면 시곗줄만 멀뚱히 판매하는 셈이다. 알고보니 일반 시계와 결합해 사용하는 형태라고. 집에 있는 아날로그 시계의 시곗줄을 시그널로 교체하면 된다. 삼성 기어S 시리즈나 애플워치와도 블루투스로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고.


밴드 자체에는 특별한 기능은 없다. 전화나 메시지가 오면 진동 센서가 반응하고, 운동량을 측정해준다. 별도의 디스플레이가 없어 해당 정보들은 시그널 전용 앱을 다운로드해야 확인할 수 있다. 이 정도는 일반적인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수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에 불과하다.


시그널의 매력은 앞서 말했듯 손에서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손가락 끝에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손가락이 이어폰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면 이해가 쉽겠다.


시그널 밴드를 착용한 상태에서 연결된 스마트폰에 전화가 오면 손목에 진동이 느껴진다. 이때 밴드에 있는 동그란 버튼을 누르면, 시그널을 착용한 손목을 통해 소리가 전달된다. 원리를 알아보자. 일단 블루투스를 통해 통화 정보가 시그널에 전달된다. 동시에 밴드 안쪽에 있는 BCU(Body Conduction Unit) 체전도 유닛이 진동을 발생시킨다. 이 진동이 중요하다. 이 진동이 손목을 타고 손가락 끝까지 전달돼 귀에 통화 소리를 들려주는 역할을 하니까. 진동이 어떻게 소리가 되냐고? 이 진동을 이용해 고막 주변에 있는 공기를 흔들어 소리를 만드는 원리다. 고막으로 바로 소리를 보내는 방식인 만큼 통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음악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는 클럽에서도 통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나는 상대방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지만, 상대방이 내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다. 내 말소리는 밴드에 있는 마이크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처음엔 고막에 소리를 곧장 전달해준다는 말에 보청기 같은 제품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골전도 기술을 사용하는 보청기와는 원리가 다르더라. 진동이 소리를 전하는 매개체인 점은 같지만, 진동을 처리하고 이용하는 방법은 완전 다르다.


골전도 기술은 두개골에 진동을 전해 달팽이관에 소리를 전달한다. 시그널의 경우엔 고막에 진동을 줘서 소리를 전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미 고막이 손상돼 청력이 떨어진 경우엔 소리를 정상적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것. 대신 골전도 기술보다는 청음 거리가 훨씬 멀다. 음질 개선 알고리즘도 다르고 말이다. 통화 품질의 경우 휴대폰 통화 음감과 비슷하다고.


나는 애플워치를 1년 넘게 사용해왔다. 애플워치가 없으면 전화나 메시지를 제대로 받지 못할 정도다. 스마트워치는 상당히 편리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애플워치에서 바로 전화를 받으면 스피커폰을 통해 목소리가 퍼지기 때문에 밖에서는 제대로된 대화가 어려웠다. 공공장소에서 에디터M의 전화를 받았는데, 상스러운 단어를 쓰면 어쩐담. 민망한 일이다. 결국 손목에 진동이 느껴질 때마다 혼란스러운 가방을 뒤져 아이폰을 찾아야 했다. 시그널 같은 제품이 제대로 상용화된다면 스마트워치에 다른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다. 전화가 오면 우아하게 손가락으로 귀를 파는 느낌으로 “여보세요”하고 말이지.


이놈들 랩스의 시그널은 킥스타터에서 우리돈으로 15억 이상의 펀딩을 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다. 밴드가 조금만 더 예뻐진다면 시그널로 인해 우리 일상이 크게 달라지리라. 근데 설마 손목 두께에 따라 소리 전달 강도가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살을… 살을 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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