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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Oct 24. 2017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개발자, 정원희

그가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유

<사소한 인터뷰> 무려 200번째 주인공, 워니


사람들은 왜 일을 하는가. 몇 달 전, 어떤 멋진 분이 툭 던지고 간 질문이다. '나는' 왜 일을 하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은' 왜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에 대한 답을 여전히 구하는 중이다.

범위를 좁혀 생각해보기 위해 질문을 조금 수정했다. 사람들은 왜 일을 '열심히' 하는가. 그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얻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 오늘의 인터뷰이를 만나보기로 했다.




Q.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정원희고요. 지금은 독서모임 기반 커뮤니티 스타트업, ‘트레바리’에서 개발 및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Q. 200번째 주인공이에요! 혹시 <사소한 인터뷰> 읽어보셨나요? 어땠어요?

네, 저 주은님 편 읽어봤어요! 원래 멋있는 분인 건 알고 있었는데요. 어떻게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어떤 방향과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Q.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사소한 인터뷰>가 드리는 공식 질문이 있어요. 본인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저는 ‘항상 행복한 사람’요. 물론 슬프거나 화나는 순간들도 있는데, 그건 순간의 감정이고요. 행복한 상태가 기본인 것 같아요.
 
Q. 어떻게 하면 항상 행복할 수 있나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행복한 것 같아요. 행복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도 많이 하고요.

사실 이렇게 행복에 집착(?)하게 된 사건이 있었어요. 중학생 때 어떤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에게 “행복한 사람 손 들어봐”라고 하셨는데 제가 맨 앞자리에서 손을 들었거든요. 근데 분위기가 이상해서 둘러보니까 저만 손을 들고 있는 거예요. 그 수업이 끝나자마자 친구들이 저에게 우르르 몰려오더니 “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너 진짜 행복해?”라는 질문을 엄청 했었어요.

그때부터 ‘왜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고, 본인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하지?’라는 의문과 함께 행복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Q. 원희님에게 ‘행복’은 어떤 상태예요?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상태요. 순간의 감정도 좋지만, 과정이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순간만 중요하다면 마약 하는 것도 행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 그게 행복한 상태인 것 같지 않거든요. 저에겐 현재와 미래가 둘 다 좋을 수 있는 지점이 행복인 것 같아요.
 


PART 1. 무엇을 더할 것인가


Q.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해왔어요?

주로 작은 회사, 스타트업에서 프로젝트 매니징을 하면서 디자인과 개발을 해왔어요. 하나의 일만 하기보다, 여러 가지 일을 같이 하거나 그 사이에서 조율하는 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Q. 일을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됐어요?

지금 3년을 꽉 채운 상태예요. 스물한 살 겨울부터 일을 시작했거든요.
 
Q. 일을 일찍 시작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원래 경험주의자여서 이것저것 빨리 부딪혀보는 편이에요. 항상 또래보다는 윗사람들과 어울려서 그 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요. 어떤 분께선 저보고 ‘인생 얼리어답터’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스물한 살 때쯤 '학교만 다녀서는 실력을 키울 수 없다'라고 생각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마침 그 시점에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해볼 기회가 생겨서 바로 시작했죠.

Q. SNS 프로필을 보니 본인을 '스타트업 개발자(및 디자이너)'로 소개하던데, 왜 앞에 ‘스타트업’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거예요?

스타트업 개발자라는 타이틀이 주는 느낌이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서요.
 
- 그게 어떤 느낌이에요?

최근에 ‘스트리트 개발자’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뭔가 야생형, 실전형 개발자 같은 느낌이 든대요. 저에겐 그 수식어가 딱 맞는 것 같아요. 한 가지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서비스, 비즈니스 흐름에서 지금 필요한 것이 뭔지 생각해보고 그에 맞는 방법을 찾아서 하는 걸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워낙 여러 회사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맡다 보니까 그때마다 회사를 쓸 수 없기도 했어요.(웃음)


무릇 스트리트 개발자란 어디서든 노트북을 펼쳐야 하는 법


Q. 일을 선택하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나요?

가장 중요했던 건 미팅하는 순간, 상대방이었던 것 같아요. 무의식 중에 상대방이 사람에 대한 가치를 봐주는 사람인가를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돈을 적게 주는 이유가 ‘사람에 투자하는 것은 가치가 없어서’일 때도 있고, ‘사람의 가치는 알지만 회사 사정이 안 좋아서’일 때도 있거든요. 전자의 경우 거의 같이 안 했고, 후자의 경우 돈을 안 줘도 했어요.

그 외 기준은 사실 명확하지 않아서 그때그때의 촉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다행히 여태까지는 촉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딱 그 시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지금 하고 있는 일(트레바리 개발,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는 뭐예요?

트레바리는 원래 알던 좋은 사람들이 동료로 있는 회사이자, 제가 누군지 배울 수 있게 해준 커뮤니티예요. 그래서 ‘여기서 일하면 내가 엄청 많이 배우고 달라질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인간 정원희를 성장시킬 수 있는 곳이라고 판단했던 거죠. 지금 회사는 개발자 정원희보다 인간 정원희가 선택했던 것 같아요.

Q. 개발자 정원희였으면 지금 회사를 선택했을까요?

아뇨.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저에게도 회사에게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트레바리 업무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자신이 없었거든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은 막중하고, 일의 범위는 넓고, 오롯이 저 혼자 일하고요. 프리랜서와 다를 바가 없는 업무 환경이라 걱정됐던 것 같아요.
 
Q. 그럼 현재 본인 삶에서 개발자 커리어보다는 인간적 성숙이 더 중요했어요?

네. 그동안 개발자 정원희와 인간 정원희의 비중이 70:30이었다면, 올해는 30:70 정도였어요. 처음으로 역전되는 해였죠.

근데 어떻게 보면 커리어 때문에 인간 정원희를 신경 쓴 것 같기도 해요. 개발을 더 잘하려면 인간적으로 더 성숙해져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당장 개발 코드 하나 더 짜는 것보다 제가 단단해지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았어요.
 
-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그냥 꾸준히 필요성을 느껴왔는데, 올해 그게 행동에 변화를 가져올 만큼 쌓였던 것 같아요.
  
Q. 그동안 했던 일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뭐예요?

진짜 힘들게 일했던 첫 번째 회사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10명이 넘는 회사였는데 입사해보니 전부 다 같은 학교 사람들이더라고요. 그 사이에서 그들이 잘 모르는 대학교에 다니는 어린 여자가 개발에 대해 모른다고 하니까 아무도 말을 안 거는 거예요. 그래서 거의 두 달 동안은 하루에 열 마디 하기도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땐 ‘어떻게든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된다’라는 오기로 이 악물고 버텼어요.
 
Q. 혹시 독하게 버틴 이유가 있나요?

그땐 그게 제 인생에 떨어진 과제라고 생각했어요. ‘이 퀘스트를 안 깨도 되긴 하는데, 못 깨면 네 인생에 레벨업도 없어’ 같은 느낌이었어요. 도전으로 받아들인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스타트업 개발자가 되기 위한 다른 길들이 많은데, 처음이라 잘 몰랐던 것도 있고요.
 
- 스타트업 개발자로 꼭 살아남고 싶었나 봐요.

그렇다기 보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개발이 재밌다고 판단한 컴퓨터 공학과 학생에게는 그 ‘능력’이 개발이었던 거죠.
 
Q. 능력 있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 때(혹은 못했을 때) 본인에게 돌아오는 부정적인 것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저의 엄청 큰 부분을 잃는 느낌이 들어요. 성장, 자아실현이 제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가치이거든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나,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라고 생각하면 삶의 의욕이 별로 안 생겨요.

최근에 "신체적인 죽음 말고, 네가 생각하는 너의 죽음은 어떤 순간이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요. 저는 더 이상의 성장 의욕이 없을 때나, 성장이 완전히 멈췄을 때 죽었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Q. 혹시 이렇게 열심히 커리어를 쌓는 또 다른 이유가 있나요?

저는 스스로를 하나의 작은 회사라고 생각하며 사는 편이라서요. 어떻게 보면 ‘나’를 운영하는 것이 제 커리어인 셈이에요. 인성이 좋아지는 것도, 건강이 좋아지는 것도, 업무 스킬이 느는 것도 전부 다 제 인생, 정원희라는 회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법인 거죠.

만약에 세상이 업무 능력이 아니라 건강, 지성을 중시했다면 거기에 올인 했을 것 같아요. 근데 세상이 업무적인 것을 더 중요시하니까. '이 세상에서 나라는 회사가 좀 더 잘 운영되려면 업무적인 능력이 있어야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Q. 세상과 다른 기준을 가져갈 순 없을까요?

‘산속에서 혼자 행복하게 살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게 전혀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아요.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나 제가 속한 사회, 공동체에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해요.
 
Q. 원희님은 어떨 때 가장 동기부여가 돼요?

저 때문에 누군가가 더 좋은 삶을 사는 계기를 찾을 수 있을 때요. 정말 작은 변화라도 상대방이 저 때문에 좋은 방향으로 변한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발표나 강연에 관심이 많아요. 제 이야기를 누군가가 경청해준 후에 "깨달았다, 배웠다, 자극된다"라는 반응을 보일 때 가장 살아있다고 느끼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네 덕분에 자극받아서 무언가를 시작했어”, "네가 내 롤모델이야”라고 말해줄 때 엄청 벅차오는 게 있어요.

Q. 여태까지 해온 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결과물은 뭐예요?

작은 단위의 결과들 중에선 마음에 드는 걸 뽑기가 아직 힘든 것 같고요. 거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크게 보면 ‘지금의 저라는 사람’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결과인 것 같아요.

근데 왠지 내년에 보면 트레바리가 가장 뿌듯한 결과가 되어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트레바리 압구정 아지트에서 크루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PART 2.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


Q. 디자인, 개발, 기획 중 개발을 메인 커리어로 정했다고 들었어요. ‘메인 커리어’를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확실히 몇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직무를 커리어로 가져가는 건 힘든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이야기 나눌 때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하고 있다'라고 말하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처럼 보일 위험도 있거든요.
 
Q. 그럼 왜 많은 것들 중 ‘개발’을 선택했어요?

제가 집중력이 낮은 편인데 개발할 때 가장 집중력이 높고 재밌어해요. 스스로 더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분야이기도 하고요.
 
Q. 디자인, 개발, 프로젝트 매니징을 다 할 줄 알아서, 스타트업에서 원희님을 선호한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하나를 선택하면 그 선호도가 줄진 않을까요?

저도 제가 개발자만 하면 지금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저보다 잘하는 개발자분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디자인, 개발, 프로젝트 매니징을 다 같이 할 줄 알 때 가장 가치 있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다른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고, 비율을 조정해서 다 조금씩 하고 있어요.
 
- 비율이 어떻게 달라졌어요?

예전엔 디자인:개발이 50:50이었는데요. 요즘은 개발을 60~70 정도 가져가고 나머지 시간에 디자인과 프로젝트 매니징을 하고 있어요.
  
Q. 혹시 지금 하는 일 중에 덜어내고 싶은 것이 있나요?

요새는 많이 덜어낸 상태라서 없어요. 지금 회사에 들어오기 전, 프리랜서 생활을 할 때 한 번 덜어냈거든요.

제가 보통 의욕이 떨어질 때 하고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쭉 리스트 업 한 후 거기서 우선순위를 정해 2-3개월 계획을 짜는데요. 매번 항목이 20개가 넘는 거예요. 그것도 다 엄청 큰 것들로요. 예를 들어 외주 일 2-3개, 학교생활, 운동, 트레바리, 독서, 글쓰기, 그림 등 말도 안 되게 많았어요. 그때 그걸 5-6개 정도로 줄였어요.

Q. 어떤 것들을 덜어냈어요?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 덜어냈어요. 예를 들어 ‘춤 잘 추는 사람 멋있으니까 나도 춤 연습해야지.’ 혹은 ‘그림 잘 그리는 사람 멋있으니까 그림도 그려야지.’ 이런 게 진짜 많았어요.(웃음)

Q. 예전에 "일하는 데 있어 본인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요. 감정에 휘둘리는 특성을 본인의 성향에서 덜어내고 싶진 않나요?

덜어내고 싶어요. 그래서 한동안은 계속 감정을 죽이는 법을 찾아다녔었어요. 감정 기복이 없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어떻게 그렇게 감정이 없을 수 있어요?”라고 묻고 다녔죠.

결과적으로 저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감정을 죽이는 게 아니라 항상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바꿨고요.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덮어쓰는 거죠. 이제는 ‘어떻게 하면 좋은 감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에요.

Q. 예전에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도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혹시 요즘은 어때요? 여전히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요?

아뇨. 트레바리 와서 사람이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어요. 그동안은 사람들이 마이너스 요인이라고 생각해서 회사 다닐 동안 사람도 안 만나고 친구도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Q. 예전에는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나요?

거의 없었어요. “너는 이래서 이런 점을 바꿨으면 좋겠어”, “이런 건 네가 잘못된 거야”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훨씬 많았어요. 그래서 여태껏 제가 가진 기질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고, 고치려고 노력도 많이 했어요.
 
Q. 예를 들어 어떤 기질들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거요! 예전에는 “디자인도 애매하고 개발도 애매하니, 차라리 하나를 선택해. 둘 다 잘할 수는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면, 이제는 “네가 디자인도 하고 개발도 하기 때문에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덕분에 제가 가진 기질이 잘못된 게 아니라 독톡한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요즘 인터뷰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좋은 사람들


Q. 개인적으로 더하는 게 쉬우세요, 덜어내는 게 쉬우세요?

더하자고 결정하는 게 훨씬 쉬워요. ‘아직 이만큼 더 나를 갈아 넣을 수 있으니 더 넣자’라고 생각하는 거죠.(웃음) 덜어내는 결정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 덜어내는 결정은 왜 어려워요?

욕심이 많아서요. 스스로를 잘 아니까 제가 5분, 10분 쉬었던 순간들이 계속 생각나요. 그럼 '그 시간들을 모으면 이걸 다 할 수 있겠다’라고 판단하게 되고요.



PART 3. 또 다른 모양의 그


Q. 일과 삶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아닌 것 같아요. 안돼요 안돼.(절레절레)
 
Q. 삶에서 일보다 중요한 것이 있나요?

‘건강’은 일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요! 제가 일을 잘하고 싶은 이유가 사람 때문이니까요.

- 사람 때문에 일을 잘하고 싶으세요?

일을 못하면 사람들과 잘 지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요. 만약 제가 일을 못해도 사람들이 절 좋아해 주고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면 일 안 할 것 같아요.
 
Q. 그럼 이런 가정은 어때요,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이 많은 거예요. 그래도 일을 할 거예요?

그럼 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을 사람들이 진짜로 좋아할까요? 제가 느끼는 요즘 사회는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열심히 일한다는 것’에 꽂혀있는 것 같아요.

사회 분위기가 달라진다면 일을 이렇게까지 하진 않을 거예요. 만약 책 읽는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전 그런 사람이 되려 노력했을 것 같아요.
 
Q. 일하지 않을 땐 주로 뭘 해요?

오..! 스무 살 이후로 한 번도 일 안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요.(웃음) 주로 저를 가꾸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몸을 키우거나 책을 읽거나 강연을 다니며 나를 다지거나.
 


Q. SNS 프로필에 ‘읽기와 쓰기를 좋아하는’이라고 적혀 있던데, 그건 원희님이 순수하게 좋아해서 하는 거예요? 아니면 사람들과의 관계에 도움이 돼서 하는 거예요?

후자인 것 같아요. 저는 ‘되고 싶은 모양’이 구체적으로 정해지면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녀요. 말을 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되고, 그럼 전 진짜 그렇게 해야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결과적으로 전 그런 사람이 되어 있어요.
 
Q. 사람들 신경 안 쓰고 순수하게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하나 꼽자면 뭐예요?

요새는 운동이요. 요즘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모습이긴 한데, 좋아해 주지 않게 되어도 운동은 계속할 것 같아요. 운동하니까 좋아진 게 너무 많아서요. 확실히 호르몬 관리가 잘 돼서 감정 기복도 줄고, 자아 효능감도 높아져요.
 

아침 운동을 즐겨 하는 인터뷰이


Q. 오늘 많은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연인에 대한 이야기는 못했네요..! 혹시 어떤 사랑을 하고 싶어요?

심리 상담을 받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요. 저에게는 “사랑해”보다 “이해해”가 더 필요하고 듣는 순간 벅차오르는 말이더라고요. “네가 어떤 행동을 한다면 그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해.”라는 말이 훨씬 감동적이에요. 사랑은 뭔가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단어처럼 느껴져서 와닿지가 않아요.

그리고 사랑하는 것보다 이해하는 게 더 어려워서 믿음이 가요. 상대를 이해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니까요.




Q. 바로 전 인터뷰이가 남긴 질문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는 당신만의 비법은 무엇인가요?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것, 궁금한 부분을 찾아내는 것, 질문을 많이 하는 거요. 이건 세희님(인터뷰어)한테 배운 것 같아요.
 
Q. 오... 감사해요♥ 다음 인터뷰이에게도 릴레이 질문을 하나 남겨주세요.

세상에서 꼭 바뀌어야 하는 게 있다면, 그게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 그에 대한 본인의 대답은요?

제가 궁금했던 건데...!(웃음) 조금 더 합리적인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Q. 묘비명을 남긴다면 뭐라고 남기고 싶으세요? 혹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묘비명은 왠지 이 세상 최고의 문장을 뽑아야 할 것 같아서 너무 어렵고요...(웃음)
알차게 잘 살았던 사람, 나를 많이 바꾼 사람,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 이런 느낌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을 사람들이 진짜로 좋아할까요? 제가 느끼는 요즘 사회는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이가 한, 이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항상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그 꿈만큼 치열하게 사는 그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원하든 거기에 본인을 거침없이 맞출 것 같기 때문에.

그럼에도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그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일을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꿈꾸기 때문'임을, 사람들이 그의 옆에 머무는 이유는 그 내일에 함께 있고 싶기 때문임을 그도 알았으면 좋겠다.
머물다 가는 사람이 바뀌는 날이 오겠지만 분명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좋은 사람들일 것이라는 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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