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엘 Apr 03. 2024

시간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하릴없이 ‘그냥’ 사는 것이 곧 쉼이라는 걸

얼마 전 MBC TV프로그램인 <나혼자 산다>에서 개그우먼 박나래가 엄마 집에서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방송되었습니다. 산낙지부터 랍스터까지 엄마의 마음과 정성으로 차린 다양하고 푸짐한 음식을 보며 나도 함께 웃었습니다. 그러다 박나래의 한마디에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박나래는 “생산적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강박이 있어요. 도태되지 않고 잉여롭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은 엄마 집 밖에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생산적 시간과 잉여적 시간. 퇴사 후 가장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석 달을 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잉여의 시간 안에 잉여 인간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번아웃이야. 나는 이런 시간이 필요해라고 이야기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지금 쉬는 게 맞을까? 도태되는 건 아닌가? 소소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등등 불안의 싹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생산적 시간과 잉여적 시간의 경계와 의미를 고민하며 퇴사 후 시간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하루를 가득 채워, 무엇이라도 하면서 열심히 보내는 날은 생산적인 시간으로 만족스럽기보다는 이게 쉬는 걸까? 오히려 고민되고, 막상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낸 날은 그렇게 흘러가버린 하루가 아쉽고 잉여 시간으로, 남은 시간을 의미 없게 보내는 것만 같아 마음이 불안합니다. 아직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생각을 합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의 최선은 무엇일까. 잉여와 생산의  그 의미를 따지거나 고민하지 말고, 지금의 시간을 그대로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하나, 시간의 주인이 되어봅니다. 

나는 스스로 내 시간을 설계해 보았을까? 나는 스스로 내 시간의 주체가 되어 보냈을까? 나는 회사 다니는 시간 동안 하루를 꽉 차게 바쁘게 보냈지만, 그 시간의 주인은 나였을까? 회사의 업무와 미팅에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나면, 퇴근 후에는 집에서 SNS의 영상을 보며 지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 다음 날도, 대부분 회사의 시간이고 짧은 쉼이 반복되는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오늘은 힘드니까, 오늘은 모처럼 나의 시간이 나니까, 퇴근 후의 시간들을 TV나 SNS의 쇼츠영상들과 함께 그렇게 흘려버렸습니다.


쉬고 있는 지금은 분명,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되는 기회입니다. 사이토 다카시는 그의 책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 “성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고난 두뇌나 공부의 양이 아닌 ‘혼자 있는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라고 합니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자. 자신을 치유하자 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혹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키우는 시간을 좀 더 갖자고 말하고 싶다. 뇌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지적인 생활이야말로 누구나 경험해야만 하는 ‘혼자 있는 시간’의 본질이다. (p.8)


둘, 그냥 믿어 봅니다. 

지금 이 시간들이 생산적이냐 잉여적이냐를 떠나, 필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마음을 다독이며 믿어 봅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All the Beauty in the World>에서,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암으로 투병하던 친형이 세상을 떠난 후 무기력감에 빠집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놓아두기로 마음먹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경비원으로 매일 조용히 서서 예술 작품들과 고대 유물을 보며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는 그곳에서, 시간의 의미, 예술의 의미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쓰며 그 10년의 시간이 필요한 시간이 되었음을 확인해 줍니다.


“그런데 이제 내가 할 유일한 일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 (p.33-34)
“무엇이 됐든 그것을 정말로 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하는지, 수월해 보이는 외양을 지니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우리는 잘 안다. “(p.272)


셋, 지금이어야 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생각합니다.

하나, 지금이라 할 수 있는 쉼. 하루를 운동으로 시작하고 일기로 마무리하는 여유 있는 시간들. 둘, 지금 이어야 할 수 있는 아이들과의 대화.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의 재잘재잘 이야기 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이렇게 까지 오래 함께 마주쳤던 적이 있었던가. 셋, 지금이면 더 좋은 우리 가족의 건강. 매일 식사를 준비하며, 내가 가족을 위해 제철음식을 사며, 조금 더 건강한 식단을 고민하는 시간들. 지금이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해봅니다. 집덕후들을 위한 커뮤니티, '라이프집'에서 만드는 매거진에 가수 ‘스탠딩 에그’가 쓴 에세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에서 며칠을 지내고 나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단지 ‘가만히’ 있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아내가 그랬다. 무선 충전기 위의 스마트폰처럼 몇 시간이고 똑같은 자세로 우두커니 앉아서 다시 차오르는 자기 자신을 느끼고 싶다고. 몸 안으로 들어왔다 나오는 숨을, 생각 없이 껌뻑이는 두 눈을, 어떤 문장도 들려오지 않는 적막을 느끼고 싶다고. 목적 없는 행동들로 가득 찬 하루를 보내고 싶다고.
이대로 쉬자. 조금만 쉬자. 숨만 쉬자. 숨을 쉬는 것이 곧 사는 것이고, 숨을 쉬지 않으면 그게 죽는 거니까 숨을 쉬자. 이렇게 며칠을 지내고 나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사실은 굳이 바쁘게 살지 않아도 인생은 흐른다는 걸. 그저 숨만 쉬는 것도 사는 것이고, 하릴없이 ‘그냥’ 사는 것이 곧 쉼이라는 걸.“
https://lifezip.kr/magazine/essay/29407 


마지막으로 <겨울의 언어> 김겨울 작가의 글과 같이, 지금의 시간을 견디며 타인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시도를 해보려 합니다. 지금의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나의 감정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타인의 경험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그리고 의미있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시간을 견디는 경험이란 삶의 모든 순간을 받아들이고 의미 없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이며, 흘러가는 감정에 집중하고 타인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시도다. 그 모든 시도와 노력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나는 믿는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속에서만 자신의 몸 밖으로 나가볼 수 있다” (p.51)



이전 03화 이제야 독서를 시작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