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피노 체크인

유유히 흐르는 시간 그리고 토피노 바이브

by 엘렌

빅토리아에서 한 달을 보내고, 이제 본격적으로 밴쿠버 아일랜드 여행을 떠납니다. 밴쿠버 아일랜드의 여러 여행지가 있지만, 가장 기대하고, 가장 기다렸던 곳은 토피노 (Tofino)입니다.


이효리가 입양한 강아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tvN의 프로그램 <캐나다 체크인> 방송에서 처음으로 '토피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효리는 캐나다 여러 도시에서 입양을 보낸 강아지들과 눈물겨운 만남을 한 후, 토피노로 갔습니다. 토피노에서 머무는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더라고요. 서핑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해안가를 다니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


아름다운 해안과 서퍼들의 낭만이 가득했던 토피노에는 분명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 토피노를 깊숙이 새겼습니다. 밴쿠버 아일랜드의 빅토리아에서 한 달 살기를 결정하자마자, 토피노를 To Go 리스트의 맨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토피노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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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피노(Tofino)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밴쿠버 아일랜드의 서쪽 끝에 자리한 작은 마을입니다. 태평양과 맞닿은 이곳은 끝없이 펼쳐진 해변, 퍼시픽 림 국립공원, 원시림, 그리고 야생의 자연이 함께 하고 있는 곳입니다. 스타벅스나 팀홀튼도 없습니다. 마을의 고유한 색과 여유를 지켜나가는 마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여유로운 사람들. 파도를 사랑하는 서퍼들의 도시이자 캐나다 사람들이 너무나 사랑한다는 마을.


토피노 바이브

Tofino is where you learn to slow down — a town where time drifts, not ticks.
토피노는 속도를 늦추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 시간이 유유히 흘러가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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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에서 나나이모(Nanaimo) 그리고 포트 알버니 (Port Alberni)를 거쳐 도착한 토피노.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지만, 공기도 확실히 달랐습니다. 토피노만이 가진 설명할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바이브가 온통 가득했습니다. 토피노 지형의 긴 모양을 따라 끝없이 연결된 해안선은 아름다웠고, 탄탄한 몸에 서핑 보드를 든 서퍼들은 여유로웠습니다. 태평양의 끝없이 연결되어 있는 바다는 엄청납니다. (이렇게 쓸 수밖에 없는 표현력이 아쉽습니다.) 끝이 없는 바다의 지평선과 왼쪽 오른쪽을 보아도 끝이 없는 해안가. 그리고 그 바다를 마주하는 원시림.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했던 '자연의 모습'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곳은 1년 중 절반 이상이 비가 와서 토피노를 'Rainforest by the sea (바다 곁의 비의 숲)'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토피노를 부르는 애칭도 서정적이며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간 그날도 비가 왔습니다. 하지만 아쉽지 않았습니다. 비를 맞으며 해변을 걸었을 때는 바다 곁의 비의 숲에 정말 들어온 것 같아 기분이 묘하게 설레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은 토피노를 만났다면 행운을 만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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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인생 선셋 프로젝트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서쪽을 향해 길에 끊임없이 이어진 해안의 모습에 반하여, 평소에도 석양 러버(Sunset Lover)인 남편이 인생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입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오늘 '바다 곁의 비의 숲'에서 멋진 석양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단 한 번의 기회. 토피노라는 멋진 석양의 바다에 온 오늘 딱 하루. 오늘 그는 꼭 석양을 봐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석양을 찾아 해안을 따라 이동합니다. 롱비치(Long Beach)에서 시작해 체스터먼 비치(Chesterman Beach), 매켄지 비치 (Mackenzie Beach)까지 해가 지는 방향으로 향하면서 구름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롱비치에 멈춰 석양을 기다립니다.


구름이 가득하고, 뿌연 안개가 가득한 바다가 점점 어두워집니다. 그러다 정말 찰나의 순간 구름과 구름 사이에 작은 틈이 벌어지고 그곳으로 연한 노을이 살포시 내려왔다가 구름 뒤로 사라집니다. 우리의 기다림을 토피노의 바다가 어루만져 준 것 같습니다. 그 스치는 노을마저 아름답게 모두의 마음에 기억되었습니다.


남편은 말합니다. "남은 여생은 석양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어." "그럼 우리 서해로 이사를 해야겠다. 인천 송도에 40층 아파트는 매일 석양을 볼 수 있다는 데 거긴 어때? 집값은 얼마나 하려나?"


한줄기 노란빛 만으로도 낭만이 온몸으로 가득해진 남편 옆에 너무나 현실적인 대문자 T 아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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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미래를 상상한 토피노


석양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토피노 롱비치의 주차장에서 한 가족을 보았습니다. 기다란 서핑보드를 양손에 든 20대 젊은 남성이 주차장으로 들어옵니다. 로맨스 드라마 주인공 같은 큰 키에 곱실거리는 금발 머리 주근깨가 가득한 그는 서핑슈트를 벗으며 수영복의 물기를 털고 있습니다. 그에게 단숨에 사로잡혀 내 시선은 고정되었습니다. 뒤이어 50대로 보이는 엄마 아빠, 그리고 남동생이 따라옵니다. 서핑보드를 차 위에 올리고, 짐을 함께 정리합니다. 동그란 검은 뿔테를 쓴 아빠와 캐시미어 니트를 걸친 우아한 엄마는 뒷자리에 앉았고, 둘째 아들이 운전을 해 롱비치를 떠납니다.


우리 가족의 미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꼭 두 아들과 함께 서핑을 다니고 싶다는 바람이 생깁니다. 우리 가족도 토피노 서핑 가족의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십 년 뒤 20대가 되는 아이들과 함께 토피노는 어렵겠지만 양양이라도. 우아한 할머니가 되고 싶었는데, 이곳 토피노에서 우아하게 서핑하는 할머니가 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건강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습니다.


토피노의 제주 JEJU


비가 오고 석양을 기다리느라 허기지고 지친 우리 가족은 한식을 찾아갑니다. <캐나다 체크인>에서 보았던 JEJU, 한국 식당입니다. 캐나다에서 두 달 살기를 하면서 처음 깨닫습니다. 같은 값이면 피시앤칩스나 피자를 먹는 것보다 한식이 훨씬 맛있다! 그래서 저희는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정말 한국의 맛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토피노, 우리들의 베스트


토피노에서 하루를 보낸 시간으로는 토피노가 가진 그 매력을 다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태평양의 파도를 마주치는 서핑도, 해안가를 달리는 자전거 하이킹도 원시림 숲의 트레일도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만의 그 석양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토피노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여유로운 시간이 주는 바이브, 태평양의 웅장한 바다가 주는 바이브. 토피노의 바이브 만으로도 이미 이곳은 우리들의 여행지 중 가장 멋진 곳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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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피노를 여행 TIP

숙소를 토피노에 잡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1년 전에 예약을 추천드리며, 최소한 6개월 전에 예약을 하셔야 합니다. B&B 타입의 숙소가 좋습니다. 특히 여름 시즌은 최고 성수기로 숙소가 얼마 없는데 정말 Full Booking입니다. 그 시기를 놓쳤다면, 저희처럼 포트 알버니 (Port Alberni) 등 근처에 숙박을 하고, 차로 이동해 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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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3_181027145_iOS.jpg 토피노의 최고 맛집, TACOFINO 모두가 이곳을 가라고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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