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대학교에서의 타임슬립 : 그때 그 순간이 가장 빛났다.
누군가 "캐나다 한 달 살기 어땠어? “라고 물어본다면 "타임슬립을 해서 20대의 나를 만나고 왔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캐나다에서의 한 달은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이 하나의 큰 의미였다면 '타임슬립으로 다시 만난 나'가 또 다른 의미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자꾸만 과거의 나로 돌아가 20년 전의 20대의 나와 마주하고, 20대의 나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마음속이 온통, 내가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내가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이라는 질문이 가득합니다.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한 달은 빅토리아 대학교 (University of Victoria)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살았습니다. 아이들이 빅토리아 대학교의 영어캠프를 참여하는 동안, 저는 UVIC 로고가 멋진 후드티 등의 기념품과 서적을 판매하는 Book Store를 시작으로 Student Union Building, 체육관 등등 곳곳을 천천히 걸어가며 이곳저곳을 살펴봅니다. 높은 나무와 오솔길이 있는 캠퍼스 사이를 걸으며 지나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대학생일 때의 나를 이곳으로 불러냅니다. 캠퍼스 잔디 위에서 친구들과 웃던 모습, 수업과 수업 사이에 공강이 없어 쉬는 시간에 김밥 한 줄을 들고 높은 계단을 뛰어서 올라가는 모습,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렀던 학교 축제. 어제 같은 날들인데,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때의 설레던 감정과 열정 가득했던 그때의 그 감정이 그대로 내 안에 남아 있습니다. 나의 20대의 경험과 기억들이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는 것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빅토리아 대학교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도서관입니다. William C.Mearns Centere for Learning - McPherson Library. 빅토리아 대학생이 아닌 여행객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은 바닥에서 천장, 건물 한 면 가득한 큰 창으로 캠퍼스의 연못과 학생들이 쉬는 잔디와 벤치가 한눈에 보이는 1층 로비입니다. 낯선 곳으로 들어가는 여행객의 어색함은 창가 앞 소파에 앉아계시는 할아버지의 미소로 사라집니다. 저도 슬며시 그들의 공간에 들어가 봅니다. 그렇게 자리 잡은 로비 안쪽 통창이 잘 보이던 책상. 그 자리에서의 시간과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좋았습니다. 단순히 책을 읽거나 시간을 보낸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조성익 작가는 <건축가의 공간일기>에서는 "우리가 좋은 공간에 나를 두는 일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위로를 받는 이유는 공간이 사람을 품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도서관의 로비는 번아웃으로 지친 저를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로 따스하게 품었습니다. 공간이 주는 따스함, 그 포근함에 기대어 나에게 휴식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20대의 나처럼 앞으로의 삶을 열정적으로 계획하고, 설렘을 가지고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습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그 감정. 나무의 나이테처럼 덧 씌워진 나의 경험과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앞으로의 나도 내가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믿음도 생깁니다.
어느 날 점심. Student Union Building 안에 있는 Pub에서 식사를 합니다. 대학교 Pub은 점심시간에도 문을 열고,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좋습니다. 테라스의 따스한 햇살도 적당히 부는 바람도 시원한 생맥주도 완벽했습니다. 바로 옆에는 Learning Centre가 있고, 그곳에서 어학연수를 받는 학생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생맥주 2잔에 약간의 취기와 약간의 감성이 찾아와, 그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시나요? 정말 빛나는 지금을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하루를 보내야 해요." 왜 어르신들이 잔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입니다. 꼰대 아줌마 같지만, 20대의 학생들을 보니, '오늘의 하루하루가 나이테처럼 덧씌워져 작은 한 발자국 Small Step이 엄청난 너의 미래가 된다고. 눈부시게 빛나다가 한순가에 사라지는 지금의 아름다운 청춘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하고, 잘 남겨놓아야 한다.' 한 명 한 명 붙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20대가 그립습니다. 열정적이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고, 설렘 가득 눈빛을 반짝이던 내 모습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반짝이는 청춘의 소중함을 알고 하루하루를 꽉 채울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타임슬립부터 꼰대 아줌마를 오가던 내 생각이 잠시 멈춥니다. 생맥주 한 잔을 더 하며, 앞에 앉아 함께 이야기하는 남편을 보며 문득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습니다. 언젠가 미래의 내가 오늘을 떠올리며 "그때, 캐나다에서 그 순간이 가장 빛났다."라고 말하겠네요. 지금 캐나다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이 순간이 20년 뒤에는 얼마나 반짝이는 순간일지, 그리워할 순간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20년 전 나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지금의 나도 20년 뒤에는 그리워하겠네. 꼰대 아줌마는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이곳. 캐나다에서 아니 앞으로 하루하루 모든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열정과 설렘 아직 내 안에 남은 감정들로 가득 채우는 하루를 보내야지. 뿌듯함이 내 안에서 가득 차올라 에너지로 충전됩니다.
캐나다에서 한 달을 보내며, 20년 전으로 타임슬립을 하며 큰 깨달음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영원히 사라지는 지금을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언젠가 미래의 내가 오늘을, 이곳 캐나다의 생활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도록.
Present, 영어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선물 그리고 현재.
어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현재, 지금 바로 눈앞에 시간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비록 늘 투닥거리고 지지고 볶아 됐지만 함께 기대며 살 부대며 행복했던 시간들.
우린 선물 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 드라마 <응답하라 1998>
우린, 캐나다에서 선물 같은 시간을 빛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