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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 왜 눈물이 날까요?

캐나다 시드니에서 받은 위로

by 엘렌

주책입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여행에서 눈물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너무 행복해서 일까요? 너무 아름다워서 일까요? 여행은 항상 행복하고, 모든 여행지는 아름답지만 매번 눈물이 나는 건 또 아닙니다.


초등학생 아들 2명과 캐나다 40일을 여행하며, 밴쿠버 아일랜드 빅토리아에서 한 달 살기를 했습니다. 밴쿠버섬에 있는 아름다운 빅토리아에서, 차로 1시간만 가면 또 아름다운 작은 소도시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매력적인 작은 소도시 중 '시드니'를 생각해 봅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시드니에서 흘린 눈물은 다녀 온지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선, 시드니는 빅토리아서 북쪽으로 약 20여분을 올라가면 있는 바닷가의 작고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이곳은 밴쿠버에서 페리를 타고 빅토리아에 도착하게 되는 Swarts Bay의 바로 아래쪽에 있습니다. 또한, Victoria Airport 바로 옆이기도 합니다. 밴쿠버에서 페리 타고 오다가 페리 타러 가다가 잠깐 들러가기에도 좋은 작은 도시입니다. 호주의 시드니 Sydney 가 아닌, 캐나다 밴쿠버 아일랜드의 시드니 Sidne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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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시드니 도시의 슬로건이라고 해야 하나요? 캐치프레이즈는 "SIDNEY by the SEA"입니다. 바다의 자신감이 가득한 캐치프레이즈에서도 느껴지듯이 평화로운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그 바다를 따라 비콘 공원 Beacon Park, 바다 저 멀리까지 놓여 있는 산책길이, 오션뷰를 자랑하는 레스토랑이, 호텔들이 평화롭고 조용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글을 쓰며 평화롭다는 말을 몇 번이나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네. 그런 평화로운 도시입니다. 정말 조용하고 한적하며, 갈매기마저 평화롭게 날아다니는 그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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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따라 길게 있는 데크길을 걷고, 해변을 산책하고,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 왔습니다. 이 날은 아이들을 여름캠프에 보냈고, 캠프는 8시부터 5시까지 하는 날입니다. 모처럼 남편과 둘이서만 나선 데이트입니다. 남자 아이 둘과 절대 같이 올 수 없는 그런 고급진 레스토랑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만큼은, 우리 한번 멋지게 보내보자. 한 달 살기의 가장 큰 단점은 매일 매 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 오늘 하루만큼은, 아이들 없이 우리끼리 마음껏 이 시간을 즐기겠다. 이 도시를 즐기겠다는 다부진 결심을 하고 의지를 다시 다지고, 레스토랑으로 들어왔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서 앉아 그냥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옆 테이블에서는 온 가족이 할머니의 생일 파티를 하고 있네요. 마침 불어오는 바람도 평화롭습니다. 갈매기가 조용히 날아가는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고, 시끌시끌한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귀에 맴돌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그런 완벽한 날입니다. 그날의 햇살, 온도, 공기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해산물이 가득 나왔습니다. 참 신났습니다.


"그래 이런 게 행복이지"라고 소소한 행복을 생각하며 음식을 먹습니다. 그런데. 너무 당황했습니다. 정말 지금 나의 신나는 마음과 나의 행복이 가득한 이 순간과는 어울리지 않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저는 울고 있었습니다.


그날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동안 수고했어. 정말 잘했어.
그동안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했어.
너는 이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어.
그러니 이제 충분히 누려

번 아웃과 퇴사. 20년 넘은 커리어의 중단으로 인한 고민과 불안함. 그리고 이런저런 후회와 생각들. 저 멀리 마음속 구석진 곳에 꾹꾹 눌러두었는데. 그날 시드니에서 내 마음이 나에게 구석진 곳에 꾹꾹 눌러둔 그 마음을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너 열심히 살았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그래서 괜찮다고. 그러니. 이 모든 것들을 너는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처음입니다. 내 마음이 나와 대화를 나눈 순간이. 내 귀에 들리는 그 따스한 말에 벅차올라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나 수고 했어.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은 이제 내려놓자. 그리고 지금 여기, 이곳 그리고 앞으로의 순간을 그대로 즐기는 거야.


시드니의 바다가 어느 누구도 못했던. 나조차도 못한 일. 내 마음을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렇게 울고 나니 마음이 시원해지고... 평화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시드니에서의 눈물은 제 기억에 평생토록 제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을 거예요. 글을 쓰는 지금도 또 훌쩍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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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텐트 밖은 유럽" TV 프로그램을 즐겨 봅니다. 그러다가 또 같이 울어버렸습니다. 곽선영이 이탈리아 바다에서 여행을 하며 울었고 라미란과 함께 이야기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쉽게 오는 순간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눈물이 났다고".


20대의 여행은 모든 것이 새롭고, 신나는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40대의 여행에서는 자꾸 눈물이 납니다. 아마도 여행에서 자꾸 눈물이 나는 이유는 지금 이순간의 소중함을 느끼고, 다시 돌아 오지 않는 순간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순간이 그동안의 나의 힘듦을 모두 어루만져주어 치유해 주는 그런 효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 떄론 나를 돌아보고, 때론 그 순간을 가진 지금의 내가 너무 행복해서, 그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게 너무 소중해서 눈물이 나는 것 같습니다.


주책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그 소중한 순간. 나의 마음이 말을 걸어오면 그 마음을 잘 들어보고, 또 그 순간을 그대로 즐기고,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기억에 남으면 내 마음 속 행복의 매듭이 단단하게 묶어져 앞으로 분명히 이 매듭으로 견뎌내야 하는 일들을 무던히 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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