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넘어
초등학교 4학년 첫째 아들 이름은 우진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시작되던 즈음 우진이는 '욱'진으로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만 비밀리에 불리게 됩니다. 모든 대화와 상황에 자꾸만 '욱' 하며 답하고, '욱'하며 방으로 들어가서 '욱진'이가 되었습니다.
엄마와의 대화는 "아니 엄마는 왜......"로 시작합니다. 퇴근한 엄마와의 저녁 시간은 아이의 '욱함'으로 끝납니다. 두 눈은 얼마나 매섭게 흘기는지. 그 눈빛에서 나오는 레이저로 엄마 마음은 조각조각 갈라집니다. 우리 '욱진'이가 4학년이 되면서 사춘기에 발을 슬쩍 담갔습니다. 평소에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와의 대화에도, "아니 엄마는 왜"라고 시작하고 "욱"하며 방으로 들어가며 짜증을 내었습니다.
엄마는 반가사유상을 상상하며 온화한 미소를 띠어보아도 마음속에 Inner Peace를 주문처럼 외워 보아도, '욱진'이의 눈에서 뿜어 나오는 레이저는 하루하루 그 강렬함이 더해집니다. 유튜브를 보아도 육아서를 읽어보아도 '욱진'이를 다시 우리 '우진'이로 만드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회사를 다니며 아이까지 케어하기엔 엄마도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엄마의 퇴사와 아빠의 육아휴직으로 캐나다를 여행을 왔습니다. 밴쿠버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빅토리아로 가는 차 안에서 문득 큰 깨달음이 옵니다. 캐나다에 여행을 온 이후, '욱진'이가 사라진 것입니다. '욱진'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우리 '우진'이가 매일 매일 웃고 있습니다.
그렇게 찾아도 모르겠던 방법. 그 이유. 사춘기가 시작이겠거니 했는데, 다시 우진이가 된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여행을 하며 아이와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핸드폰이 없고, 유튜브가 안되며 영어로 나오는 TV 프로그램은 재미가 없어 아이들과 산책하고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마음을 읽어 보려 노력했던 것. 그것이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캐나다 여행을 하는 40일 동안 온 가족이 매 시간, 매일을 함께 꼭 붙어 있었습니다. 빅토리아에서 밴프까지 9시간 10시간 운전을 하며 차 안에서는 정말 아이들과 함께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차에서 잠을 자고 또 자고 일어나도, 아빠는 계속 운전을 하고 있어서, 그 시간을 끝말잇기서부터 시작해 다양한 이야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어느 날 저녁엔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MBTI를 서로 말하고 물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직 MBTI의 의미를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아빠는 냉철하고 사실만을 말하는 T이고 엄마는 감정적인 F야"라고 설명을 해주며 우진이의 MBTI를 물어보았습니다. "우진이의 MBTI는 어떤 거 같아? T야? F야?" 우진이가 고민을 하더니, 슬며시 웃으며 말합니다.
엄마, 나는 '사춘기'야
그 한마디에 우리 모두가 정말 크게 웃었습니다. 그게 왜 그렇게 웃음이 나는 이야기 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웃으면서 대답하는 아이의 엉뚱한 말에 호탕하게 몇 분을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아빠가 이렇게 크게 웃는 거 처음 봐!."라고 더 웃었고, 결국 우리 모두는 한참을 데굴데굴 웃으며 배를 움켜 잡았습니다. 그 '사춘기' 사건 이후, 우진이는 모든 일을 '뭐 다 그런 거지'의 마음 가짐으로 '그럴 수도 있지'의 마인드로 웃으며 넘어갑니다. 날카로운 모서리로 날을 세운 네모였던 아이가 둥글둥글 동그라미가 되어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저녁을 먹고 바닷가로 산책을 하고, 잔디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거나 석양을 보러 갑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엄마와 아빠의 여유 있는 시간, 여유 있는 마음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해지나 봅니다.
일을 하는 엄마는 퇴근 이후, 저녁에 2시간 이상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 2시간도 준비물 확인, 숙제 확인으로 늘 잔소리를 했네요. 아이들과 '대화'가 아닌,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지시'만 가득했던 시간입니다. 주말에만 아이들을 만나는 아빠도 그전에는 놀아주는 역할에 충실했지 아이들과 주제를 가지고, 깊은 대화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캐나다에서 비로소 아이들과 '진정한' 대화를 시작하고, 그러자 아이들의 마음이 보입니다. 엄마 아빠는 가득한 여유로 아이들의 눈을 마주치고, 생각을 물어보고 궁금해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의 시간을 보내며 표정, 마음 가짐이 밝아진 것이 확연히 보입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비로소 대화를 시작합니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합니다.
첫째 아이는 많은 동물들을 만나고 나서는 아쿠아리스트가 되고 싶어 합니다. 둘째 아이는 고래, 곰, 사슴 같은 동물들의 귀여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며, 동물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고 싶은 것들, 궁금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질문의 매일 넘쳐 납니다. 엄마 아빠의 과거 장래 희망도 궁금해합니다. 엄마 아빠의 러브 스토리까지 궁금해합니다. 생각해 보지도 못한 아들의 질문, "엄마, 아빠의 어디가 좋아서 왜 결혼한 거야?"에, 잠시 당황을 합니다. 그리고 언제 이렇게 컸지. 이런 대화를 다 하네. 지금이 아니면 못할 이야기.라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캐나다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도전하고 또 경험합니다. 영어 캠프를 가며 웃으면서 가고 오후에 집에 돌아올 때는 더 신나서 돌아옵니다.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할 텐데, 그 시간을 재미있어합니다. 처음 해보는 것들도 가득합니다. 수영복을 입고 강에서 수영을 하고, 카누도 타봅니다. 엄마도 하기 어려운 10K 하이킹을 가방을 메고 완주했습니다. 그 안에서 도전하고 성취하고 그러면서 만족감도 자존감도 모두 커졌나 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매일 조금씩 자라는 것이 보인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아이들의 미소를 보며, 일기장에 적습니다. 사실, 캐나다 여행을 고민했었습니다. 비용도 시간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웃는 아이들. 그거 하나로 모든 선택이 옳았고, 이번 여행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일 웃는 아이들.
그래 그거면 다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