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브랜드 노트
우리가 브랜드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건, 로고나 광고 영상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한 문장. 그 한 줄의 글을 읽는 순간, 브랜드의 이름과 로고, 분위기까지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JUST DO IT
세 단어입니다. 듣자마자 나이키와 바로 연결되는 이 문장에는 유명한 스토리가 있습니다. 1988년, 광고대행사 위든 앤 케네디의 공동 창립자 댄 와이든이 사형을 앞둔 사형수 게리 길모어의 마지막 말, “있잖아, 그냥 하자(You know, let’s do it)”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극도의 불확실성과 두려움 앞에서도 행동을 선택하는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망설임을 지우기 위해 let’s를 빼고 Just Do It이라는 세 단어로 정리했습니다. 이 슬로건은 두려움보다 행동을 먼저 선택하라는 삶의 태도로 확장되었고, 나이키를 전 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만든 결정적인 언어가 되었습니다.
브랜드 슬로건은 브랜드가 누구인지 어디를 향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압축한 한 문장입니다. 브랜드의 이미지와 가고자 하는 방향을 한 번에 보여주는 좋은 커뮤니케이션 도구이기도 합니다.
브랜드 슬로건을 통해 브랜드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 브랜드가 어떤 콘셉트를 가지며 어떤 내용을 중시하는지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브랜딩이 무엇이야?라고 묻는 질문에 "브랜딩은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것."이라고 답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브랜드 슬로건은 브랜드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이 문장을 떠올리면 우리는 곧바로 에이스침대를 기억합니다. 에이스침대는 편안함이나 감성 대신 ‘과학’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워 브랜드의 정체성을 단번에 각인시켰습니다. 침대를 감각이 아닌 검증 가능한 기술의 결과물로 정의하고, 수면공학 연구와 실험, 구조 테스트로 그 말을 실제 경험으로 증명해 왔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는 더 이상의 설명 없이도 이 브랜드를 신뢰하게 됩니다.
만약 이 슬로건이 없었다면 에이스침대는 좋은 침대 중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한 문장이 모든 설명을 대신했고, 그 문장은 지금까지도 브랜드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슬로건은 브랜드를 꾸미는 문장이 아니라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지, 어떤 기준으로 선택될 것인지를 한 문장으로 미리 정해두는 일입니다. 그래서 브랜드 슬로건은 오래 기억되고 잘 전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브랜드 슬로건이 하는 일은 다양합니다. 어떤 슬로건은 행동을 유도하고, 어떤 슬로건은 브랜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합니다. 브랜드를 과시하기도 하고, 소비자의 마음을 슬쩍 자극하기도 합니다.
1. 설명하는 슬로건 - 우리는 이런 브랜드입니다.
브랜드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브랜드인지를 아주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복잡한 설명 없이, 한 문장으로 브랜드를 이해하게 만듭니다. 브랜드가 무엇을 하는지, 왜 존재하는지를 거침없이 말합니다.
당근마켓 - 우리 동네 중고거래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동네와 중고거래. 이 두 단어면 충분합니다. 당근마켓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왜 필요한지, 다른 중고거래 앱과 무엇이 다른지,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토스 - 금융의 모든 것. 토스에서 쉽고 간편하게
복잡한 금융을 쉽게, 토스의 존재 이유가 한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모든 것이라는 포괄성과 쉽고 간편하게 라는 차별점. 토스가 추구하는 가치가 명확합니다.
2. 과시하는 슬로건 -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재미있는 건 어떤 슬로건은 브랜드가 아니라 당신을 설명합니다.
로레알 - 당신은 소중하니까요 Because You're Worth it
브랜드의 성분이 좋다고 말하는 대신, 이 브랜드를 선택하는 당신의 자존감을 건드립니다. 나는 나 자신을 가꿀 줄 알고,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라는 심리를 대변해 주면서 1970년대부터 엄청난 과시적 공감을 불러 일으 키기도 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It's who you are
차의 성능은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차를 타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품격에 집중합니다. 이 차에서 내리는 당신의 모습이 곧 당신의 명함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성공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과시하게 만듭니다.
3. 행동을 유도하는 슬로건 - 이렇게 해보세요.
어떤 슬로건은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들으면 바로 움직이게 합니다.
마켓컬리 - 내일의 장보기
내일. 이 한단어가 행동을 바꿉니다. 오늘 밤 주문하면 내일 아침 문 앞에. 새로운 장보기 방식을 제안합니다. 마트에 가지 말고, 무거운 짐 들지 말고, 편하게 집에서 주문하면 아침밥을 차리기 전 새벽에 도착합니다.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는 슬로건입니다.
에어비앤비 (Airbnb) - 어디에서나 살아보세요 Belong Anywhere
'좋은 숙소를 예약하세요'가 아닙니다. 살아보라 Belong는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줍니다. 호텔에 갇혀 있지 말고, 현지인의 집으로 들어가서 진짜 그 동네 사람처럼 여행하라며 여행의 방식을 다르게 생각하고 해보라고 유도합니다.
4. 공감하는 슬로건 - 당신의 마음을 압니다.
당신의 마음을 읽습니다. 브랜드의 태도와 철학을 감정으로 전달해 공감합니다.
야나두 - 야, 너도 할 수 있어.
영어 공부를 수없이 포기해 온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반말을 하면서 심리적 벽을 확 허물어 버리고, 포기하고 싶던 마음을 다시 도전하고 싶게 공격적으로 자극합니다. 하지만 설득됩니다.
도브 - 리얼 뷰티 Real Beauty
당신이 가진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 진짜 아름다움이라는 Real Beauty로 브랜드를 소개합니다. 제품의 세정력이나 보습력보다 '당신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브랜드'로의 이미지를 구축하며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친구 같은 브랜드로 인식합니다.
브랜드 슬로건이라는 명확한 메시지가 없다면 브랜드는 흔들립니다. 매번 다른 말을 하고, 고객은 매번 다시 해석해야 합니다. 말은 많아지지만 방향은 정확하지 않고, 메시지는 흩어져서 기억되지 않습니다. 브랜드는 특별한 매력을 남기지 못하고 가격으로만 비교되는 경쟁으로 빠지게 됩니다.
슬로건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브랜드가 오래 기억되기 위해서, 같은 이미지로 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 브랜드를 한 문장으로 말하고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슬로건은 무엇일까요? 많은 기준이 있습니다만, 제 기준에 좋은 슬로건은 브랜드의 진심이 담긴 슬로건입니다.
브랜드가 진짜 하고 싶은 말과 브랜드의 본질을 바탕으로 소비자의 욕망에 불을 지르는 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언어는 쉽고 이해가 되어야 하지만, 뾰족한 차별성이 담겨 있으면서도 감정적으로도 공감이 되어야 합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떠오르고 반복될수록 신뢰가 쌓이며 브랜딩의 모든 것을 담는 그릇.
슬로건은 광고 문구가 아닙니다.
브랜드의 철학을 담는 그릇입니다.
이 한 문장이 브랜드를 영원히 기억하게 만듭니다.
오늘, 좋아하는 브랜드를 떠올려 보세요.
그 브랜드의 슬로건이 떠오르나요? 혹은 그 브랜드를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어떤 문장이 떠오르나요?
당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문장일까요?
나는 _____________ 사람입니다.
브랜드가 한 문장으로 자신을 말하듯, 우리도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퍼스널 브랜딩에서도 커리어 브랜딩에서도 나를 표현하는 한 문장은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파워를 우리 모두가 하나씩 가지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나를 브랜딩 해보세요!
오늘도 어딘가에서, 브랜드가 조용히 말을 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