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원 Oct 18. 2024

Chapter 6. 트럭

또다시 찾아온 뻔뻔한 손님

    스테파니는 수요일만 되면 눈을 뜰 때부터 행복했다.


    킴목사와 제이가 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주일 내내 홀로 참아내던 슬픔을 제이의 옆에서 쏟아낼 수 있는 날이었다. 제이는 고아원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하실로 내려와 스테파니를 꼭 안아주었다. 그럼 반가움에 미소를 머금으며 제이의 품에 안겨있던 스테파니는 긴장이 풀리는 순간부터 두 시간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제이는 집에서 챙겨온 자신의 담요를 스테파니에게 둘러주며 스테파니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제이의 담요에서는 포근한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 그렇게 오랫동안 울고 나면 스테파니는 정신이 혼미했다. 그럴 때마다 제이는 지금은 자신이 지켜줄 테니 마음 놓으라고 스테파니를 안심시켰다. 


    스테파니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제이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세곡, 네 곡, 다섯 곡이 넘어가도록 잔잔한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껴안고 있다보면 스테파니는 다시 새로운 한 주를 살아낼 힘이 생겼다. 스테파니의 눈빛에는 생기가 돌았고, 제이와 함께 매년 흘려보낼 때마다 더 다채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열다섯 살 동갑내기이던 스테파니와 제이는 어느덧 열여덟의 나이를 향해 가고 있었다.


    스테파니의 열여덟 번째 생일이 다가오자, 원장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스테파니를 불러냈다. 뒤뜰의 작은 테이블에 앉아 스테파니에게 따뜻한 카모마일 차를 내어주며 천천히 고아원 출소 및 자립 절차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스테파니는 오래전부터 마음 준비를 해온 터라 이 모든 상황이 갑작스럽지 않았음에도 울먹거리는 원장님을 보며 코끝이 찡해졌다.


    겨우 울음을 삼키며 모든 설명을 마친 원장님은 스테파니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행복해져야 해. 마음의 평온을 찾길 매일 밤 기도할게.”


    스테파니의 생일날, 동생들이 불어둔 알록달록한 풍선들과 원장님이 직접 구운 커다란 사각 케이크의 촛불을 불었다. 이제 스테파니가 떠나고 나면 가장 맏이가 될 아이는 마지막이 될 폴라로이드 사진을 두 장 찍어 한 장은 원장님께 한 장은 스테파니에게 주었다. 


    모두가 눈물을 훔쳤지만, 스테파니는 실감이 나지 않아 되레 싱긋 웃으며 고아원을 떠났다. 18년이라는 세월은 작은 짐가방 하나에 가뿐히 다 담겼다.


    정문을 나서자마자 스테파니의 앞에는 빨간색 승용차가 한 대 끼익 멈춰 섰다. 그 안에는 장미꽃 한 다발을 든 제이가 내려 스테파니를 향해 가볍게 뛰어왔다. 제이는 꽃다발을 스테파니의 얼굴 앞에 내밀며 싱긋 웃은 뒤, 스테파니가 꽃다발을 건네받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 모든 게 무슨 상황인지 얼떨떨한 스테파니의 뒤로 어느새 도착한 원장님과 동생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제이는 약간 수줍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웃어 보이다 다시금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스테파니에게 반지를 꺼내어 내밀었다.


    “나랑 결혼해 줘 스테파니.”


    스테파니는 참았던 눈물이 줄줄 흐르는 걸 느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다 못해 달려가 제이에게 와락 안겼다. 한쪽 무릎으로 중심을 잡고 있던 제이는 갑작스러운 반동에 뒤로 털썩 주저앉게 되었고, 그 상태로 스테파니를 품에 앉은 채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기쁨을 참지 못한 몇몇 아이들은 제이와 스테파니에게 달려와 포옥 안겼고, 그들을 선두로 나머지 동생들과 원장님도 모두 커다란 이불 더미처럼 제이와 스테파니의 곁에 안겼다.


    그 이후 결혼식은 작게 진행됐다. 제이의 말에 의하면 제이의 부모님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결혼식도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급한 일이 있냐고 묻자, 제이는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 후로 킴목사와 그의 아내에게 한 번의 연락도 오지 않은 걸 보며 스테파니는 자신이 킴목사 내외에게 환영받지 못한 며느리임을 알 수 있었다. 가끔 그들은 제이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듯했지만 제이는 늘 그들의 전화를 멀리 나가서 받고 왔다. 멀리서 보이는 제이는 대부분 화를 내고 소리치며 전화를 끊었고, 돌아온 그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 져 있었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묻지 않았다. 혹여나 제이가 부모 대신 자신을 택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까 봐, 그리고 자신의 질문이 작은 불씨를 일으켜 그를 떠나게 할까 봐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제이는 꽤나 알아주는 상위권 학벌과 자격증으로 자산운용사에 취업했다. 스테파니는 동물 보호소에서 일하며 하루 종일 버려진 동물들의 곁을 따뜻하게 지켜주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스테파니는 아이를 제이의 고향인 대한민국에서 키우는 게 어떨지 제안했지만 제이는 이미 대한민국에서 자산운용은 로봇의 영역으로 대체되었다며 자신이 일할 곳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제이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로봇이 아닌 고아원 출신의 며느리라는 사실을 얼핏 알고 있었다.


    “제이! 오늘은 정말 운전 연습 시켜준다고 했잖아. 나 엄청 기대하는 중이라고,”


    스테파니는 청량한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더 밝게 빛내며 제이에게 달려가 와락 끌어안았다.


    토요일 느지막한 오전의 끝자락에 부스스하게 일어나 물을 한 컵 마시던 제이는 아침부터 열의가 넘치는 스테파니의 모습에 슬며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한쪽 팔로 감싸안았다.


    “여보, 나 방금 일어났어. 아직 잠도 덜 깬 채로 운전하면 그게 졸음운전이나 다름없지.”


    그는 거실 구석에서 토끼 인형을 갖고 옹알이를 하며 놀던 지아에게 동요를 부르듯 물었다,


    “졸음운전을 하면 될까요~ 안될까요~?”


    스테파니의 푸른 눈동자가 아닌 제이의 에스프레소 같은 갈색 눈동자를 가진 지아는 까르르 웃으며 외쳤다.


    “절~대 안되지요!”


    뾰루퉁해진 스테파니는 소파로 터벅터벅 걸어가 팔짱을 끼고 읊조리듯 말했다.


    “제이, 오늘은 절대 못 넘어가. 지아를 봐줄 베이비시터도 구해놨어. 딱 두 시간만, 응?”


    자주 볼 수 없는 엄마의 떼쓰는 모습에 멀찍이 앉아 있던 지아는 몸을 열심히 일으켜 뒤뚱뒤뚱 걸어와 폭신하게 앉아 엄마와 똑같이 팔짱을 끼고 볼에 바람을 가득 넣었다. 지아는 비장하게 눈을 질끈 감고 엄마와 최대한 비슷한 단호하면서도 발랄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두 시간만, 응?”


    어쩌다 같은 편이 된 지아와 스테파니를 보며 제이는 녹은 솜사탕 같은 웃음을 지었다. 가장 사랑스러운 두 여자의 아이 같은 모습에 제이는 물 한 잔을 다 마시기도 전에 차 키를 집어 들었다.


    마침,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지아의 베이비시터에게 따뜻한 포옹을 하고 스테파니는 지아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지아, 언니랑 두 시간만 같이 잘 놀고 있어. 엄마 얼른 운전 배우고 와서 다 같이 우리 지아가 제일 좋아하는 팬케이크 먹으러 가자!”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며 시터의 손을 잡고 집으로 뛰어 들어가는 지아를 뒤로한 채, 스테파니와 제이는 빨간 승용차에 올라탔다.


    긴장한 스테파니의 손은 한여름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이 금세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경직된 자세로 삐걱거리며 운전하는 스테파니의 조수석엔 제이가 흐뭇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제이, 나 그만할래. 이 정도면 오늘 운전 연습은 충분했어. 우리 지아가 기다리겠다, 얼른 들어가자 이제!”


    통보인지 부탁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쉼 없이 말하는 스테파니에게 제이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여보, 우리 운전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됐어. 오늘 하는 거 보니까 지난번보다 훨씬 많이 늘었는데? 어차피 시터도 두 시간이나 불렀으니 잠깐 고속도로 타고 근처 호수라도 다녀오자.”


    제이는 스테파니가 말릴 새도 없이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한스 호수로 바꾸어두고 안전벨트를 부여잡는 시늉을 했다.


    고속도로는 너무 무리라며, 근처 마트나 들렀다가 돌아가자고 사정하던 스테파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비게이션 없이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초보 운전자의 숙명을 받아들이며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막상 고속도로에 오르니, 길은 탁 트여있었고 내리쬐는 햇볕에 스테파니의 손은 포근하게 따뜻해졌다. 


    금방 적응하는 스테파니를 보여 제이는 이야기했다.


    “봐 스테파니, 넌 할 수 있잖아. 고속도로는 오히려 복잡할 게 없어서 운전하기에 더 편할 수도 있어. 저 앞에 있는 트럭만 잘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어디 출구에서 나가야 할지 알려줄게.”


    스테파니는 온 집중력을 다해 같은 차선으로 달리고 있는 앞 트럭을 주시했다. 이 정도 속도로 운전을 한 건 처음이라 내비게이션을 볼 여력이 없었다. 그런 스테파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던 제이의 해결책을 따라 트럭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기 오리가 어미 오리를 따라가듯 주의를 기울였다.


    그런데 유심히 앞 트럭을 지켜보니 무언가가 이상했다.


    여러 철거물들을 싣고 가던 트럭의 뒷 짐칸에서 긴 철봉이 그물망의 구멍 사이로 미세하게 미끄러지듯 흔들리고 있었다. 짐을 둘러싸고 있던 그물망 사이로 철봉은 스르륵 우아하게 흘러나왔고, 철봉의 가장 끝자락까지 미끄러지듯 해방되자 그제서야 중력을 만난 듯 갑작스럽게 휘청거렸다.


    그 순간 스테파니는 잘 쉬던 숨이 탁 막혔다. 푸른 눈동자에 회색 잉크가 엎질러지듯 그녀가 살아왔던 불행한 삶이 어리석은 그녀를 비웃듯 스쳐 지나갔다.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자신이 불쌍할 정도로 소름 끼쳤다. 행복하다고 착각했던 짧은 시절이 그녀를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밀어 넣은 듯했다.


    매서운 속도로 날아온 철봉은 스테파니의 눈에는 절망적일 정도로 느려 보였다. 그 순간은 그녀의 모든 인생보다 긴 순간이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이렇게 선명하게 들린 건 처음이었다. 앞 유리를 뚫고 들어온 철봉은 제이의 외마디 비명이 제대로 소리를 내뱉기도 전에 그를 관통했다. 스테파니는 핸들을 놔버리고 제이를 움켜쥐었다. 고속도로 옆 벽면을 향해 돌진한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부딪히는 순간, 자동차의 반동으로 제이는 영혼 없이 펄럭였다. 왈칵왈칵 쏟아지는 피에 제이가 아끼던 티셔츠는 범벅이 되었다.


    “안돼 제이. 이러지 마. 제발 죽지 마. 안돼 제이!”


    절규하듯 울부짖었지만, 그 누구도 스테파니의 말을 듣지 못했다. 제이마저도 이미 그녀를 떠나버린 듯했다. 제이의 목에 박힌 철봉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이미 시체의 표정을 쓰고 있는 제이에 빌었다. 제발 떠나지 말라고, 제발 꿈이게 해달라고 숨도 쉬지 못하고 빌었다. 사람들이 둘을 구조하고자 차 문을 열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스테파니는 제이에게서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자신이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스쳐 보냈다. 자신의 모든 삶은 제이가 있었기에 존재했고, 앞으로 살아갈 남은 삶은 모두 삭제되어 버렸다. 나의 제이, 그의 깊은 눈빛과 부드러운 손길마저도 나를 버렸다.

이전 07화 Chapter 5. 빗속의 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