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를 닮은 눈동자
그날 이후 스테파니는 열흘을 꼬박 앓아누웠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느꼈던 모든 본능적인 감각이 사라진 듯했다. 음식을 먹고 싶지도 않았고, 햇빛을 마주하기도 싫었다. 몸은 스테파니를 구하기 위해 정신을 흐리는 듯 열을 펄펄 끓어내며 스테파니의 혼을 다 빼놓았다.
믹서 부부의 가족이 되고 싶었다. 사실 믹서 부부든 아니든, 가족이 되고 싶었다. 그동안 스테파니는 주변 아이들이 입양처를 찾아 하나둘씩 고아원을 나갈 때에도, 자신만 입양에 실패하는 이유를 늘 본인에게서 찾으며 매일 꿈속에서라도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썩어 곰팡이 핀 속과 달리 하얗고 매끈한 살갗이 비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럴 때면 몰래 숨겨둔 과도로 온몸을 베어내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흉지면 입양 취소 사유가 될까 두려워 소리 없는 눈물만 흘리다 몸이 버티질 못해 쓰러졌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믹서 부부의 부탁이었다니. 모두가 스테파니를 원치 않아서가 아니라 믹서 부부가 스테파니를 아무도 데려가지 못하도록 막아뒀다는 사실에 기뻐야 할지 원통해야 할지 헷갈렸다.
스테파니를 가장 비참하게 만든 건 이마저도 사랑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는 것이었다. 입양에 대한 희망을 짓밟고 다시는 스테파니가 입양될 수 없게끔 한평생 이기적으로 스테파니를 묶어둔 믹서 부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파니가 처음으로 느껴본 사랑이었다. 사회적 도덕을 무시할 정도로 뜨겁고 지배적인 욕심, 집착, 소유욕, 애착, 관심, 통제. 이 모든 건 스테파니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이 감정은 가족의 감정이었다.
스테파니는 믹서 부부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스테파니를 너무 사랑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믹서 부부의 그 표정은 되려 스테파니의 텅 비어 있던 심장 속 구멍을 채워주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랑과 증오를 넘나드는 믹서 목사 부부에 대한 생각으로 스테파니는 나날이 시들어갔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스테파니는 베개에 파묻혀 울음을 쏟아내고 어둠 속에 사로잡혀 시야를 차단해 가며 시리게 아픈 여름을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믹서 목사의 소동 이후, 두 달이 넘도록 새로운 종교 단체의 지원을 찾을 수 없었다. 시골 깊은 곳에 워낙 작게 자리 잡은 고아원이라 원장님은 매일 저녁 직접 전화를 붙잡고 후원처를 찾아보았다. 어느덧 내리쬐는 햇빛이 선선해진 가을이 되어, 드디어 새로운 교회의 목사가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림자진 아이들의 얼굴에 따스한 온기가 돌았다.
원장님도 새로 기댈 존재가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자랑스럽게 아이들을 모아 이야기했다.
“새로 오실 목사님의 성함은 킴이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오신 목사님이셔.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할 수 있으니, 너희가 꼭 또박또박 이야기하고, 기본적인 한국어는 조금 익혀두면 좋겠구나. 한국어 사전을 공동 테이블 위에 둘 테니 틈틈이 익혀두렴.”
흥미로운 새 목사님에 대한 설명에 아이들을 술렁였다. 여기저기서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들을 공유하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듣지 않았다. 더 이상 스테파니는 새로운 목사를 알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어른을 믿고 싶지 않았다. 곰팡이가 번지듯 피폐해졌던 스테파니는 불과 몇 주 만에 다시 잔잔한 호수로 돌아왔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전에 없던 텅 빈 공허함이 무겁게 자리잡아있었다. 그 누구도 믹서 부부의 마지막 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며, 스테파니 앞에서는 입양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되었다.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조금씩 더 나약해지는 고아원 동생들이 가끔은 불쌍했지만,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확신하는 스테파니는 자신 외의 그 누구도 더 이상 챙길 여력이 없었다.
원장님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킴목사님은 내일 아침 9시에 가족분들과 함께 방문하러 오실 거야. 아내와 아들 한 명과 함께 오신다고 들었어. 내일은 아침 7시에 기상해서 모두 함께 대청소를 한 뒤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목사님을 맞이하자. 다들 일찍 들어가 자도록 하렴.”
원장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급히 부엌으로 향해 갔다.
킴 목사의 가족이 고아원에 처음 온 날은 유독 하늘이 높은 가을 아침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산 깊이 있는 고아원에서도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깨끗하게 목욕하고 단정한 차림새로 마당에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며 목사네 가족을 기다렸다. 하늘만큼이나 파란색의 자동차가 요상한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재빨리 원장님의 근처로 모여들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포레스트 하우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원장님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저마다의 높낮이로 인사를 메아리쳤다.
“하하 모두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모두 영광이에요. 아이들이 한명 한명 보석같이 예쁘네요.”
킴 목사는 놀랍게도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이야기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원장님도 매너 좋은 목사님의 첫마디에 볼이 빨개지며 손사래를 쳤다.
“영광은 무슨! 우리 아이들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주셔서 감사해요. 목사님의 가족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원장님은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며 킴목사의 아내와 아들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아, 제 아내와 아들 제이를 소개할게요. 제 아내는 영어를 잘할 줄 몰라 제가 대신 소개해 드립니다. 아내는 한국에서 저와 떨어져 살다가, 도저히 제이와 떨어져 살 수 없겠다며 육 개월 전에 미국으로 왔어요. 언어는 안 통해도 정말 따뜻한 사람이랍니다.”
킴 목사는 곧바로 아내에게 낮은 목소리로 한국어를 웅얼거렸다. 아내는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살짝 목례를 건넸다.
“우리 아들 제이는 캐나다에서 어릴 적부터 자라 영어가 유창하니, 직접 소개하도록 하죠. 제이, 아이들과 원장님께 인사드리렴.”
모두의 눈이 제이를 향했다. 커다란 키에 어둡게 그을린 흑설탕 빛 피부를 가진 제이는 모두의 눈을 피하지 않고 간결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다들 당황하는 눈치였다. 어색할 정도로 친절한 킴 목사에 비해 그의 아들 제이는 고아원에 봉사하러 온 사람답지 않게 아무런 감흥이 없어 보였다. 그 이후 또 다른 말을 이어 나가길 모두가 간절히 바랐지만, 제이는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듯 아무 말 없이 사람들을 한명 한명 쳐다보았다.
“아, 제이는 열다섯 살이에요. 이 자식이 사춘기가 늦게 온 건지, 요즘 통 이야기를 많이 안 하네요. 하하 이해해 주세요.”
킴 목사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분위기를 수습해 보았다. 원장님도 그런 목사의 의도를 읽은 건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희 포레스트 하우스에도 제이와 동갑내기인 아이가 있어요. 스테파니?”
원장님과 아이들의 눈은 요리조리 스테파니를 찾아 헤맸지만, 커다란 마당에 스테파니는 없었다. 원장님은 급히 근처에 있던 아이에게 귓속말로 얼른 스테파니에게 내려오라고 전해달라 이야기했다. 미션을 받은 아이는 우당탕탕 고아원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렇게 스테파니가 내려오기까지 몇분간의 적막이 있었다. 그 적막을 깨고 스테파니가 등장했을 때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스테파니는 믹서 목사의 마지막 페어웰 파티 날 입었던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화사한 원피스를 입은 스테파니의 모습은 본연의 모습인 듯 자연스러웠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미동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스테파니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편히 계시다가 가세요.”
스테파니는 고요한 눈빛과 상반되는 친절한 목소리로 마치 외워둔 대사를 읽듯 읊조렸다. 그러고서는 금방 뒤돌아서 고아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스테파니의 뒤를 따라 고아원으로 향한 건 다름 아닌 제이였다. 급히 스테파니를 뒤따라가는 제이의 모습에 벙쪄있던 킴목사는 금세 표정을 바꿔 이야기했다.
“동갑내기라고 하니 제이가 친해지고 싶었나 봐요. 이렇게 나이가 많은 아이까지 이곳에서 함께 머물고 있다니 원장님은 정말 훌륭한 분이시네요.”
스테파니의 약점을 꼬집는듯한 뉘앙스에 원장님은 웃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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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는 도망치듯 고아원 안으로 들어와 재빠르게 걸음으로, 곧바로 지하실로 향했다. 떨어지는 눈물을 보여주기엔 자신의 모습이 너무 한심하고 비참해서 허락할 수 없었다. 모두에게 강해 보이고 싶었다. 상처가 아문 척, 너무 무뎌져서 저 원피스를 입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또 다른 목사의 가족을 마주한 순간, 그리고 모두가 자신을 바라본 그 순간, 마지막 믹서 부부의 날이 다시 떠올랐다. 그 적막, 그 따가움. 모두 여전히 스테파니를 생생하게 찌르고 있는 기억들이었다.
스테파니는 지하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머리를 쥐어싸고 숨을 삼켜가며 울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미세한 들썩임만 보이며 누구보다 처절하게 울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스테파니의 호흡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을 때, 그제야 스테파니는 자신의 등을 토닥이는 손을 인지했다.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자, 스테파니의 머리를 덮고 있던 커다란 천이 흘러내렸다. 갑작스러운 밝은 빛에 말도 이어 나가지 못한 스테파니는 자신의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남자아이를 보았다.
제이라고 했던가.
“그냥, 뭐라도 덮어주고 싶어서. 네 옆에 이불 같은 게 있길래.”
제이는 덤덤한 말투로 설명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깊은 에스프레소 같은 온기가 서려 있었다.
“그거 커튼이야.”
스테파니는 덩달아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게 그 둘은 서로 영문도 모른 채 의아해하다 웃음을 터트렸다.
“아, 커튼이었구나. 어쩐지 무겁더라.”
제이는 웃으며 낮게 말했다.
“오랫동안 울던데, 목마르지 않아? 주방 쪽에 어른들 계시니까 내가 주스라도 가져다줄게.”
스테파니는 거절도, 감사도 할 힘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제이가 덮어준 커튼을 두르고 앉아 남은 눈물들을 흘려 내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제이가 주스 한 컵과 우유 한 컵, 그리고 물 한 통을 잔뜩 안고 내려와 스테파니 앞에 내려놓았다. 의아했다. 누군가가 스테파니를 챙겨준 적은 없었다. 스테파니 또한 누구의 앞에서 이렇게 솔직한 모습으로 있던 적은 없었다. 스테파니의 입술 바로 앞까지 물병을 갖다 대며 마시라는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제이에게 스테파니는 물었다.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나 모르잖아.”
제이는 놀라지 않는 아이였다.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이며 모른다는 제스쳐 후 다시 물을 권할 뿐이었다. 스테파니는 더 묻고 싶었지만, 한편으론 이런 이유 모를 따뜻함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제이의 옆에서 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