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을 운명이란 없을 테니까
Stefanie.
겨울에 주어진 이름이었다. 여느 동화 속 불쌍한 아이의 흔하디흔한 레퍼토리처럼, 눈이 펑펑 내리던 날 고아원 앞에 버려졌다. 캐나다의 겨울을 본 적이 있다면, 버려진 아기가 눈에 파묻혀버리기 전에 고아원 원장님에게 발견된 것이 기적이란걸 알 것이다. 아기는 스테파니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날부터 15살이 될 때까지 고아원에서 자랐다. 파란 눈에 푸른끼가 돌 만큼 하얀 피부와 햇빛을 만나면 금가루처럼 반짝이는 금발 머리카락을 가진 정석적인 백인 여자였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고고했고, 극심히 불행한 그녀의 처지와 완벽하게 대비되었다. 아이를 입양하러 온 부모 중 대부분은 스테파니를 데려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이상하게도 늘 스테파니의 입양은 마지막 순간에 불발되었다.
스테파니는 홀로 피어있는 장미 같았고, 외로움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가시들을 돋아냈다. 스테파니처럼 아쉬울 게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아쉬운 내색을 내면 안 되는 세상이었다. 그들에게는 빈말 같은 위로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스테파니는 소용돌이치는 상처의 파도들을 뒤로한 채 늘 잔잔한 호숫가 같은 차분함과 친절함을 내비쳤다. 몇몇 사람들은 그녀를 가식적이라며 비난했고, 그녀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 다가온 사람들도 결국에는 스테파니의 마음속 벽이 너무 높다며 뒷걸음쳐 달아났다.
스테파니가 자란 고아원은 늘 돈이 부족했다. 고아원 운영에는 정부 지원 정책이나 외부 단체들의 도움이 절실했고, 원장님은 자금 마련에 도움이 되는 모든 활동 중에서도 교회의 지원을 가장 중요시했다. 그래서 그런지 고아원에는 매주 고아원을 스폰서링하는 믹서 목사가 방문하여 행사를 열고 갖가지 음식과 물건들을 제공해 주었다. 스테파니는 믹서 목사 내외를 부모님처럼 느꼈다. 스테파니의 기억이 처음 시작된 순간부터 자신을 애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었으며, 스테파니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을 어른의 눈으로 함께해준 몇 안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스테파니를 유독 예뻐한 믹서 목사님의 부인은 겨울이면 스테파니를 위한 손뜨개 모자를, 여름이면 시원한 원피스를 선물했다. 스테파니의 금빛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스테파니는 현명하고 따뜻한 사람이니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 말해주었다. 스테파니는 목사님과 부인의 말을 매일 성경처럼 마음에 새기며 하루하루 감사히 살았다. 고아원을 운영에 힘써주시는 믹서 목사 부부처럼 스테파니 자신도 어린 동생들을 엄마같이 돌보며 모든 궂은 일들을 도맡아 했다. 스테파니가 어엿한 열다섯의 소녀가 되기까지 매주 믹서 부부는 스테파니를 찾아와 본인들의 아이처럼 아껴주었다.
오늘도 스테파니가 처음 고아원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고아원을 스폰서링하던 믹서 목사와 그의 아내가 오는 날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교회를 열게 된 믹서 목사의 부부는 고아원 근처를 떠나게 되었고, 먼 여정을 떠나기 전 마지막 방문이었다. 고아원에서는 그동안 감사의 의미로 마당에서 멋진 페어웰 파티를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테파니에게 믹서 목사의 부부는 거의 양부모와 다름없었다. 그들이 멀리 다른 국가로 떠나간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몇 날 며칠을 펑펑 울었다. 그러다가도 문득 실제로 그들이 자신의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울고 있는 자신이 미련하게만 느껴져 한없이 창피했다.
오지 않기를 빌었던 믹서 목사 부부의 마지막 방문일이 되기까지, 스테파니는 수없이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들의 마지막 발걸음을 가벼운 축복만이 가득할 수 있게끔 거울을 보며 마지막 인사를 여러 번 연습했다. 의연한 모습으로 그들의 마지막 기억에 남는 것이 모두에게 가장 좋은 엔딩이었다.
마당에서 다 같이 먹을 샌드위치를 준비하며 스테파니는 원장님께 슬며시 말을 걸었다.
“원장님, 제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찍어둔 사진은 언제 주실 거예요?”
페어웰 파티를 위한 식기류들을 찾으며 바삐 움직이던 원장님의 눈동자는 스테파니의 질문에 늘 그렇듯 잠시 그림자 진 채 머물렀다. 곧바로 눈동자 위 안개를 걷어낸 뒤 어색하리만큼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스테파니, 도대체 그 사진을 왜 갖고 싶은 거니?”
사실 스테파니도 왜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다만 틈이 생길 때마다 스테파니의 마음속에 커다랗게 피어나는 공허함을 해결할 방법이 그 사진 속에 있을 것 같았다. 아픔을 가진 인간들이 종교를 찾고, 공허함을 느낀 인간들이 철학을 하듯, 상처받은 아이들이 자신을 파고드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스테파니는 늘 파고들었다. 스테파니는 오랜 시간 고아원에서 자라며, 버려질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버려진다는 것을 보았다. 입양하러 온 척 아이들을 구경하다 본인 아이를 몰래 버리고 가는 여성, 자신이 아이를 분명 죽이게 될 거라 울부짖으며 아이를 살리기 위해 버린다는 남성, 엄마가 여기로 가면 살 곳을 줄 거라고 했다며 자기 발로 걸어와 문을 두드리는 아이. 박스나 담요에 말아서 고아원 앞에 가져다 놓는 게 오히려 가장 평범한 방식일 지경이었다. 새로운 아이가 고아원에 들어오면 원장님은 벽걸이 시계 밑에 놓인 탁자 서랍에서 오래된 카메라를 꺼내왔다. 아이가 버려진 현장의 사진을 찍어 여러 장을 인화했다. 경찰 제출용, 고아원 앨범 기록용, 원장님 소유용, 적어도 총 세장은 매번 인화하는 것을 보았다. 스테파니는 자신이 처음 버려진 겨울밤의 사진을 보고 싶었다.
초등교육을 받을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매주 원장님께 사진을 달라고 졸랐지만, 원장님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직은 어린 스테파니가 그런 사진을 볼 준비가 안 되었다는 핑계였다. 이제 막 열다섯 살이 된 지금은 스테파니도 양보할 수가 없었다. 매일 밤 자신이 살아있는 원인을, 그 목적을 알 수가 없어 괴로움에 잠을 설치는 시간이 숨 막힐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원장님은 태어났을 때 출생 신고하셨잖아요. 누구에 의해 어떻게 태어났고, 태어난 후 어떤 모습이었고, 어떻게 키워졌는지 모두 알 수 있잖아요. 저는 그 사진이 제가 가진 모든 존재의 역사예요. 그게 제가 어디서 시작된 존재인지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단호한 스테파니의 눈빛에 원장님은 작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오늘은 너에게도 정말 중요한 날이니까. 잠시만 기다리렴.”
원장님은 앞치마를 벗고 원장실에서 가져온 꾸깃꾸깃한 사진을 한 장 쥐여주었다.
사진을 본 스테파니는 숨이 턱 막혔다. 참혹한 모습이었다.
사진 속 아기는 너무 작았다. 사랑받는 가정에서 태어난 아기였다면, 부모들은 분명 아기를 만지기조차 조심스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 속 버려진 아기의 모습은 시체처럼 파랗게 질려있었다. 돌돌 말아졌던 담요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묻혀있었다. 아기의 눈은 풀려있었고 작은 팔과 다리는 동상으로 괴사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원장님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뒤로한 채 스테파니는 빠르게 사진을 들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자려고 누우면 딱 보이는 천정에 사진을 붙여두었다. 이제 스테파니에게도 존재의 시작점이 생겼다. 태어난 순간이 아닌, 사진 속 버려진 후 발견된 그 순간이 스테파니의 시작이었다. 참혹한 현장이어도 괜찮았다. 자신의 시작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은 스테파니에게 자아 그 이상을 형성해 줄 수 있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퍼즐 한 조각이 드디어 자리를 찾아 스테파니에게 깨지지 않는 중심을 잡아주었다.
원장님은 스테파니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눈물이 그득하게 맺힌 원장님의 눈빛은 솔직했다. 원장님은 단정하게 포개어진 하늘색 원피스를 살포시 스테파니의 침대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오늘은 너에게 정말 특별한 날이 될 거야 스테파니. 오늘을 나도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왔단다. 충격이 크겠지만 마음 잘 추스르고, 믹서 목사의 부부가 오기 전에 예쁜 원피스 입고 내려오렴.”
이상했다. 스테파니가 생전 처음 받아본 선물이었다. 원피스라니, 열세 살 이후부터는 스테파니가 고아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언니와 오빠들의 옷을 물려 입던 시절이 끝나면서 스테파니는 늘 같은 옷을 입었다. 스테파니는 한참을 쳐다보다, 원장님이 건넨 흰색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를 슬며시 만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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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서 목사는 자신의 페어웰 파티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이미 아는 듯이 수줍어하며 고아원에 도착했다. 소박하고 서툴지만, 아이들이 온 힘을 다해 불어둔 알록달록한 풍선들과 원장님의 감사가 담긴 정성스러운 점심 식사는 스테파니가 보기에도 감동스러웠다. 오렌지 주스가 담긴 유리컵을 허공으로 치켜들며 믹서 목사 부부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려는 믹서 목사를 원장님은 급하게 붙잡았다.
“음.. 목사님, 오늘 공식적으로 하실 말씀이 있잖아요. 지금 이 자리에서 기쁜 소식을 발표해 주시면 어떨까요?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에요, 이날을 스테파니에게 선물해 주려고 십 년을 넘게 참아왔어요.”
원장님의 눈은 금세 다시 촉촉하게 빛났다.
믹서 목사는 눈을 피했다. 난감해하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믹서 목사의 부인은 갑작스럽게 터진 눈물에 놀란 듯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떨구었다. 믹서 부부와 원장님보다도 더 당황한 사람은 다름 아닌 스테파니였다.
“믹서 목사님, 제게 하실 말씀이 뭔가요?”
스테파니는 기대감과 두려움에 휩싸여 물었다.
목사는 붉어진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며 고개를 돌려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마치 담배를 훔치다 걸린 남자아이처럼 변명하듯 빠르게 말을 이어 나갔다.
“스테파니, 나와 부인은 너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사랑에 빠졌단다. 우리가 너를 십 년 넘게 친딸처럼 아끼고 애정했다는 사실은 너도 느꼈을 거야. 너와 가족이 되고 싶었단다.”
스테파니의 눈가가 떨렸다. 친구들이, 언니들이 모두 입양을 가던 어릴 적에는 스테파니도 가족이 생길 거라는 희망이 있었었다. 하지만 매년 나이가 들어갈수록 입양 확률은 낮아졌고, 15살이 된 지금은 독립만이 살아갈 길이라고 체념했다. 그런데 믹서 부부가 자신의 부모가 되고 싶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마치 자신이 입고 있는 하늘색 원피스가 가져다준 인생 최고의 선물 같았다. 그 순간 스테파니는 눈 속 파묻혀있던 자신이 살아남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원장님은 기쁨을 숨길 수 없는 높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목사님, 오늘이 스테파니의 정식 부모가 되어주시는 날인가요?”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두의 시선이 달콤하게 반짝거리며 믹서 부부를 향했다. 그중 스테파니는 부풀어 오른 마음에 자신이 벌떡 일어서있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일초.
이초.
삼초.
사초.
오초.
육초.
이상했다. 이렇게 긴 침묵은 옳지 않다. 스테파니는 직감했다. 오늘이 다시 한번 버려진 날이라는 사실을. 버린 사람들과 버려진 사람들만이 앉아 있는 이 테이블에서는 이날이 각자의 상처로 다시 한번 번질 것을 스테파니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았다. 어릴 적부터 가까웠던 언니의 입양이 취소되는 순간 본인이 버림받던 순간이 떠올라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지금은 자신이 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동생들의 상처를 다시금 찢는 순간이었다.
입양에 관한 부분은 버려진 아이들의 영역이 아니었다. 마치 진열대에 놓인 상품이 팔리면 팔리고 팔리지 않으면 처분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는 입양에 대해 논할 권리가 없었다. 모두가 침묵했고, 고요하게 상처를 껴안았다. 오늘의 스테파니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왜죠?”
스테파니는 낮게 물었다.
“십 년 넘게 기다리셨다면서요. 마음이 바뀌신 건가요?”
스테파니의 질문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스테파니의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분노와 좌절이 새어 나와 버려진 아이들의 마음에 간지럽혔다. 아이들의 눈빛은 나약한 상처가 아닌 딱딱하게 굳어 돌멩이가 되어버린 독으로 바뀌었다.
“우리 부부는 널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와 똑 닮은 아이를 갖고 싶었어. 하지만 매번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이란 축복 대신 고난을 안겨주셨지. 네가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아이를 갖지 못한다면, 너를 하나님이 맺어주신 핏줄로 여기며 널 입양하려 했단다. 하지만 올해, 네가 딱 열다섯 살이 된 지금에서야 우리에게 아기가 찾아왔어. 네게는 정말 미안하구나.”
믹서 목사는 울음을 참아가며 이야기했다.
소리를 지른 건 다름 아닌 원장님이었다.
“그럼 두 명을 키우세요! 스테파니는 아기에게 정말 좋은 가족이 되어줄 거예요. 십 년 넘게 스테파니를 입양하겠다고 하던 부부가 몇명이었는줄 아시나요? 당신들을 위해 거절한 입양처만 해도 한 페이지를 넘어요. 이럴 수는 없다고요!”
“스테파니, 우리 부부에게도 가족계획이 있었단다. 네가 지금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우린 한 명의 아이만을 키우기로 결정했어. 네게도 축복이 찾아오길 바란다. 지금은 우리 부부가 정말 원망스럽겠지만 우리는 널 진심으로 사랑한단다. 살면서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우리를 찾아오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믹서 부부는 일어나 유유히 침묵을 가로질러 고아원을 떠나버렸다.
귀가 끝까지 빨개지는 걸 느꼈다. 눈에 전류가 흐르듯 눈꺼풀은 덜덜 떨렸다. 스테파니는 어릴 적 자신을 버리고 간 부모가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자신이 버려지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서 목사님을 고아원이 아닌 교회에서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사진 속 눈에 뒤덮인 아기가 그대로 발견되지 않은 채 죽어버렸다면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