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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나무 Mar 24. 2020

N번방이 만들어지는 과정, 도덕 에스컬레이터

 N번방이라는 이름이 뉴스에 오르내린다. 모두가 격노할 일이다. 사람이라는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일을 했는지. 분노가 치민다. 청와대 청원에 수백만이 서명한 것만 봐도 그 분노는 짐작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분석하는 글을 썼다. 변태 성욕, 인간을 물건으로 보는 시선, 경제 만능주의, 탐욕 등등 여러 가지 요인이 나왔다. 글쓴이는 조금 다른 시선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절대 N번방 연관자들을 두둔하는 글이 아님을 밝히고 시작하겠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뿐이다. 무소유를 이야기하던 스님도 해탈을 하고 싶다는, 아주 경건한 욕망이 있기에 삶을 살아갔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고, 욕망을 이루고 싶기 때문에 인간은 사회적인 합의를 만들어냈다. 도덕과 법률이라고 이름 붙인 이 합의는 인간이 공동체를 만들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도덕과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금방 무너졌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법률이 무너져도 도덕이 살아있다면 어느 정도는 버틴다. 그렇지만 도덕이 무너진 사회는 살아남지 못했다. 그만큼 도덕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도덕 에스컬레이터란 것은 무엇일까? 가장 쉬운 예로 학교폭력을 들 수 있다. 힘을 가진 사람이 약자를 지배하고,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욕망이다. 도덕을 배우기는 했지만, 아직 와 닿지 않은 아이들은 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한다. 이때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이들은 "이 정도는 해도 되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되면, 아이들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은 점점 과감해진다. 아이들이 휘두르는 폭력은 갈수록 치밀해지고, 집요해진다. 이제는 "어디까지 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그 잔인한 학교폭력은,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처럼 점점 심해진다.


 N번방 사건도 비슷하다.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사람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다. 그러나 제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득을 얻는다. 약간 더 과감해지고, 조금 더 자극적인 방법을 찾게 된다. 점점 과격해지고, 훨씬 집요해진다. 눈덩이가 경사길에서 순식간에 커지듯, 잔인성이 심해지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가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다. 어느 정도 선에 도달하면 정신을 차린다. N번방의 그들은 도덕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빠져나오지 않았기에 저 위에서 악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도덕 에스컬레이터 이론은 역사에서도 적용되었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괴팍해진다.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이는 것은 괴팍의 축에도 끼지 못 한다. '인간 돼지'를 만들었다는 여태후는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는 권력을 가졌기에 그렇게 변해갔다. 자기 스스로 도덕성이 충분하지 않다면, 권력을 가지는 것만으로 사람은 점점 잔인해질 수 있다. 그런데 별다른 권력도 없는 그들은 어째서 도덕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올 수 없었을까?


 현대사회는 인터넷, SNS, 휴대전화 등을 통해서 엄청나게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반대로, 휴대전화만 잃어버려도 우리는 고립되었다고 느낀다. SNS를 하다 보면, 어느새 공허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이런 감정을 이야기할 때, 피상적인 대인관계가 늘어났으나, 핵심 대인관계가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대인관계를 통해 안정을 얻는데, 평소에는 피상적 관계로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진짜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힘들 때에는 핵심 대인관계, 즉 아주 친한 친구나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을 정도의 가족 등, 친밀한 대인관계가 필요하다. SNS나 인터넷으로는 이런 관계를 만들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허무하고, 텅 빈 것 같다. 


 N번방의 그들은 핵심 대인관계가 없었다. 결국 그들의 일탈을 옆에서 보고 제지해 줄 사람이 없었다. SNS를 통해 피상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만 챙기는 관계를 형성해버린 그들을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도덕 에스컬레이터는 작동했고, 그들은 악마가 되었다. 학교폭력 중 특히 잔인한 일을 일으킨 아이들을 면담해보면, 대부분 부모와의 관계가 아주 피상적이었다. 부모와도 피상적인 관계만 가진 아이를, 누가 핵심 대인관계가 되어서 제지하는 수고를 들이겠는가. N번방의 그들도 제지될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 이 사회의 땅에 떨어진 도덕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그렇지만 핵심 대인 관계는커녕, 피상적인 관계도 만들지 못할 정도로 경쟁에 내모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학교폭력이 반복되듯이, N번방도 반복될 것이다. 더 은밀하게, 더 잔인하게 말이다. 그들은 잘못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제지당하는 구원의 손길을 받을 권리 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 주변에 N번방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고, 남녀가 서로를 미워하기 전에, 내 주변의 소외된 사람, 홀로 있는 사람, 외로워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여유와 분위기가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도덕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YPGfkG25pw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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