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화났어. 설명은 못 하겠지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의 빈곤함에 대하여

by 아빠나무

사랑을 하면 많은 감정을 느낀다. 좋은 감정은 괜찮다. 나쁜 감정이 문제다. 화가 난다. 짜증이 치민다. 실망스럽다. 이런 마음이 들 때면 자신을 통제하기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감정이 느껴지면 견디기 어렵다. 자기 마음도 다루지 못하는 자신이 비참해지기도 한다.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꼭 화만 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 아이가 이쁘고 사랑스러운 면도 있지만, 짜증 나는 면도 있고, 그런데 이 일은 화가 난다. 화라기보다는 실망인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사소한 것에 실망하는 자기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이 복잡하면서도 정확하게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 덩어리가 안에 쌓여있지만, 고작 말로 나오는 것은 한 마디. 나 화났어. 심지어 연인이 내 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면 상황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명쾌하게 설명하고 싶은데, 그게 안된다. 내 입에서는 또 한심한 한마디만이 나온다. 내가 꼭 말로 해야 돼? 초라하다.


어린이들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 이름을 붙이며 논다. 저건 용 구름, 솜사탕 구름, 아파트 구름. 이름 붙이면 이름 붙이는 대로 구름은 그 모양이 된다. 마음도 그렇다. 감정 뭉텅이에 '화'라고 이름을 붙이면 그 뭉텅이는 화가 된다. 그 안에 있던 소중하면서도 작은 감정들 하나하나도 모두 화가 되어버린다. 내가 화라고 말해버렸으니까.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너무 크다. 구름이 너무 커지면 먹구름이 된다. 그렇다고 일일이 설명하자니 뭔가 구차한 것 같아서 그러고 싶지는 않다. 너무 커다랗기에 마음 밖으로 꺼내서 보여줄 수가 없다. 설명을 포기하게 된다. 마음에 비가 내린다.


언어 능력이 뛰어나다고, 국어 100점이라고 이런 점을 극복할 수는 없다. 언어라는 것이 가진 한계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하나하나 구름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꼭 멋진 단어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똥 구름도 좋고 아이폰 구름도 좋다. 간질거리는 부끄러움을 참고, 느끼는 것 하나하나를 말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화, 부끄러움, 창피함, 연민, 기쁨, 실망. 조그마한 구름에 이름표를 붙여서 당신 마음 하늘을 풍부하게 만들자. 어색한 일이다. 그래도 하다 보면 알록달록 예쁜 하늘이 만들어진다. 이제 훨씬 설명하기 편하다. 내 애인에게 솜사탕 구름 한 조각 똑 떼어서 보여주자. 그게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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