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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나무 Mar 29. 2020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에 대한 단상

 정부에서 연일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2m 이상 거리를 두고, 만남을 자제하라고 주문한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용어, 사회적 거리두기. 그런데 이 용어는 좋은 용어일까?


 글쓴이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일하면서 용어에 민감해졌다. 환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사용해버리는 용어에 스스로를 가두는 경우를 많이 봐서 그런지도 모른다.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은 장기간 약물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약을 장기간 복용하는 환자에게 '너 약에 중독된 거 아니냐?'라고 걱정을 한다. 딴에는 걱정에서 하는,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환자들에게는 '중독'이라는 용어에 의해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치료와 알코올 중독이 동일 선상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중독되지 않기 위해 약물을 끊고, 재발을 겪고 다시 글쓴이에게 온다. 그럴 때 글쓴이는 '중독은 뇌가 약물에 굴복하는 겁니다. 그런데 환자분은 약물이 전혀 뇌를 굴복시키지 않았잖아요? 이건 중독되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는 겁니다.'라고 용어를 교정해준다. 이 용어가 교정되지 않는 이상, 환자에게 언제까지나 약물 = 중독이라는 공식이 무너지지 않게 된다. 이것이 용어를 잘 선택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는 조금 걸리는 것이 많다. 일단 거리를 둔다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사회적' 인가에서는 전혀 아닌 것 같다. 만약 글쓴이가 2019년에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을 들었다면, 뭔가 정신적으로 힘이 들어서 쉬기 위해 이전까지 있었던 대인관계를 정리하고, 뭔가 허무하다고 느껴지는 피상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2020년 현재, 정부가 주문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전파가 이루어질 수 있는 근거리 만남은 자제하지만, 전화나 SNS, 재택근무 등 실제 접촉이 없는 관계는 이전과 같거나 오히려 더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상당히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외래를 방문하는 환자들 중 많은 비율이 실제 만남을 줄이는 것에 더하여, 전화나 SNS 등으로도 관계가 줄어들었음을 호소한다. 심지어,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과도 대화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서 만들어낸 결과이지만, 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 그 자체가 만들어낸 부작용도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물리적 거리두기라던가, 비말 관리 생활법이라거나 등 조금 더 바이러스 전파 자체에 집중한 용어를 선택했으면 어떠했을까 싶다. 뭐, 그렇다 해도 이제 와서 사용하던 용어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글쓴이는 우리나라 정부가 지금까지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더 지나서 COVID 19가 조절이되면 이제 정부는 벌어진 사회적 거리를 좁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벌어진 거리에 의한 부작용이, 특히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자 등 취약 계층부터 퍼져나갈 것이다. 그 때 이 용어 하나가 만들어 낸 부작용이 너무 크지 않을까 걱정된다. 다음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정부 차원에서 조금 더 차분하게 용어를 골라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대들의 말 한마디에 국민들의 생각이 변하니까 말이다.  



사진 출처 : Amin Moshref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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