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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나무 Oct 10. 2020

정신에 대한 미신들

오늘은 제가 진료를 하면서 겪는 정신에 관련된 미신들에 대하여 알아보고, 그 진위에 대하여 제 생각을 말씀드려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1. 정신력으로 뭐든 할 수 있다.  


당연히 틀린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쓰이는 정신력 = 육체나 정신이 괴로워도 참고 견디면서 행동을 지속하는 능력 

정도로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이런 정신력은 정말 한계가 명확하며, 심지어 그 한도도 매우 낮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자원을 활용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포기하게 됩니다. 

이 판단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고, 무의식 속에서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판단입니다. 

이건 거의 자동반사이고,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뒤집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럼 정신력으로 괴로움을 이겨내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나쁜 예는 내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입니다. 

훈련되지 않은 알보병이 기관총이 잠시 다른쪽을 본다고 달려드는 모습이지요. 

좋은 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기 위해, 시간을 벌면서 판단을 뒤로 미루는 것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이 정보를 수집하는 동안 들어오는 고통을 견디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처리하다 보면 위기를 극복할 길이 보이기 마련이지요.  

인간의 무의식 속에 결론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당장의 고통은 견딜 수 있거든요.  

이런 사람이 우직하게 뭔가를 해서 성공하는 사람이겠지요.   


2. 사람 고쳐쓰는 것 아니다.  


이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입니다.  

먼저 사람은 잘 안 바뀐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굳어진 인격은 거의 바뀌지 않고, 형성된 사고체계는 어지간해서는 수정되지 않습니다.  

수정하려는 노력도 쉽게 포기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지요.  

정신과 의사로서는 성격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하면 상당히 버겁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서 어느 정도 변화가 가능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습관입니다.  

인간은 긴 시간을 살아가고, 그 긴 시간 동안 뭔가를 유지하면 분명히 변화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익숙한 것을 그대로 하는 습성이 있고, 그 습성을 바꾸지 않으면 변화하기 어렵습니다.  

하루에 20분 뛰기, 침대에 누워서 휴대전화 쓰지 않기 등 조그마하게만 습관을 바꿔도 1년이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바꾸기 위해 별다른 노력도 안 하고 그런 말 하는 경우가 많지요.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스스로 변하기 위한 방향을 잡는 것은 전문가 도움을 받으면 훨씬 쉽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홍보!)   


3.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안 변하면 이상한 것입니다.  

대인관계란 것은 만남 -> 관계 증진 -> 내/외부 스트레스 -> 관계 쇠퇴 -> 결론 (회복, 소실) 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대인관계도 계속 좋을 수 없으며, 저 스트레스 단계와 쇠퇴 후 결론 단계를 소실이 아닌 회복으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가꿔나가는 것이 대인관계입니다.  

애인관계도 똑같습니다. 여러가지 요인으로 관계는 쇠퇴할 수 밖에 없는데, 그 때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이 연인이 잘 나아갈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지요.  

그러니까 오래된 사랑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영롱하게 빛나는 투명한 보석같은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기워진 퀼트에 가깝습니다.  

가끔 조금만 관계가 쇠퇴해도 불안해하면서 난리를 치는 사람이 있는데, 대인관계 민감성이 높은 분이므로 가까이 두면 상당히 피곤할 수 있습니다. (보통 B군 성격 특질을 가진 분입니다.)   


4. 그렇게 생각하지 마 


생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어떤 결론을 내리는데 있어 아주 많은 요소를 사용합니다.  

그 중에서 아주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그 사람의 모든 인생 경험입니다.  

우리가 어떤 결론을 내렸다. 라고 하면 무의식중에 그 모든 경험을 통해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사실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집하는 정보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정보량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정보를 가지고도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살아온 인생이 다르니까요.    

종교/정치 성향은 안 바뀐다는 말이 이 말입니다.  

아무리 짧아도 20년 이상 그에 대한 생각과 정보를 이미 입력하여 그것에 감화된 상태일 것이고, 이런 상태에서 다른 정보가 조금 들어온다고 하여 생각의 방향이 변할리가 없지요. 

일베충도, 대깨문도, 태극기부대도 모두 이런 범주에서 생각 변화가 없다고 서로에게 욕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생각이 변화하려면 오랜 시간, 오랜 설득, 아니면 강렬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군대가면 철들어 온다는 말이, 이전까지 개인주의적 성향이 군대에서 현대 장년층 사회가 동의하는 집단주의적(?) 성향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어서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군대는 기니까요.    


5. 충동조절장애는 힘 쎈 사람 앞에서는 충동조절잘해가 된다.  


요것도 틀린 말입니다. 

보통 인터넷에 올라오는 분노조절장애라고 이야기하던 사람이 덩치큰 사람 앞에서는 충동조절 되더라.  

이건 그냥 그 사람이 충동조절장애가 아닌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짜 정신건강의학과적으로 충동조절장애이신 분들은 덩치 큰 사람 앞에서도 조절이 안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감옥에 계세요... 치료를 잘 받아서 안정된 상태이거나, 감옥에 계시거나.  

그래서 진짜 충동조절장애이신 분들은 사회에서는 보기가 힘듭니다.  

일종의 관찰 편향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보통 충동조절잘해가 되는 사람은 그냥 성격이 나쁜 사람이거나 알코올중독, 기분장애인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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