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나무 Oct 27. 2020

감정 조절하기 연습

정신과에는 자신의 감정을 다루기 어려운 상태인 분들이 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가끔 저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너무 괴로우니 아예 감정을 느끼고 싶지가 않다.'

생각해보니 제 아내도 

'이렇게 화나는 것 자체가 화난다.'

라는 말을 하고는 했었습니다.

저도 가끔, 화나는 일이 있어도 분노 없이 차분하게 상대를 이론으로 제압해서 일을 끝내버리는 멋진 모습을 상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감정을 아예 처음부터 느끼지 않는 것이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동/서양 모두에 있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우울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죄악시되었죠.

수녀님을 면담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잘생긴 남자 신도분을 보고 잠깐이나마 마음이 흔들렸다면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동양도 오욕칠정을 이야기하면서, 어느 순간 이것을 느끼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되었습니다.

현대에 넘어와서는 특히 남성들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강요되었죠.

군인들은 감정 없이, 오직 명령만 잘 수행하기를 원하는 조직이지요.

군부독재 시절 우리나라에 이런 생각은 전 국민에게 퍼졌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 이득이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고요.



그렇지만 감정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막는 행동은, 지금 당장 본인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본인에게 일어난 사건이나 머릿속에 들어온 생각을 입력값이라고 했을 때, 감정이란 것은 당신이 살아온 삶 전체라는 빅데이터에서 순식간에 뽑아 올려진 결과값입니다.

이건 뇌를 거치기는 하는데 척수 반사에 가까워요. 막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런 감정이 드는 정확한 이유도 잘 몰라요.

지금까지 삶 전체의 데이터를 감정을 덜 느끼는 방향으로 쌓아와야지만 처음부터 감정을 안 느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걸 지금 와서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실제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거 못 느끼는 것도 정신과에서는 병으로 봅니다. 지나면 부작용이 터져 나오거든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애초에 막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생한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입니다.

감정은 곧 행동을 유발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지요.



친구가 약속을 어겨서 화가 났다고 해 봅시다.

여기까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이다음은 어떻게 행동하냐입니다.

전화를 해석 닦달할 수 있고, 평안히 기다릴 수도 있지요.

만나자마자 쌍욕을 박을수도 있고, 네가 늦었으니 커피 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본인에게 이득이 되도록 친구가 늦었다는 자극을 처리했다면, 감정을 잘 '처리'한 것입니다.

어떨 때는 쌍욕을 박는 것이 좋은 처리인 경우도 있습니다. 무조건 참는 갓이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는 않습니다.



자 그럼 결국, 감정이 일어나는 상황에도 나의 이득을 따질 수 있는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어야지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되겠네요.

그러기 위한 조건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감정의 강도 감소입니다. 

어떤 감정이 드느냐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이 강도입니다.

화가 나냐 웃음이 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강도의 감정이냐가 내가 이 감정을 처리할 수 있느냐 아니냐를 구분하거든요.

그래서 보통 감정과 행동의 시간 간격을 멀찌감치 떨어뜨리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아무리 강한 감정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강도가 줄어들거든요.

감정이 격해질 때 행동 방침을 정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화장실 다녀오기, 물 마시기, 심호흡 세 번 하기, 손에 힘 꽉 쥐었다가 풀기 등.

이건 상대에게 내가 감정이 격한 상태인데 처리 중이다라는 신호를 주어 상대가 나를 더 자극하지 않게 만드는 요소도 되지요.

이런 감정의 동요에 따른 신체 반응이나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것 없이도 처리가 되면 좋겠다고요.

그런데 세상이 그리 쉽습니까. 감정의 강도를 낮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까지는 타협을 봅시다!

감정과 그 강도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는 추후 감정의 강도를 낮추는 것에 도움이 됩니다. 

이건 아까 말 한 빅데이터를 수정하는 것과 동시에 당장의 감정도 강도를 낮추는 좋은 방법이지요.

'내가 화난 것은 그럴 만 해. 그런데 내일 생각해도 이 정도 강도로 화가 나는 것이 맞나?' 정도로 생각해보는 것이지요. 이건 물론 자신의 감정에 대한 알아차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만...

또한 하면 안 되는 실수는 추가적으로 감정이 격해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말꼬리 잡기라던가... 공격적인 말투라던가...

보통 실수가 나오죠. 본인도 상대방도. 감정만 남아버리죠 ㅠㅜ



두 번째는 스트레스 줄이기입니다.

누구나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고 후회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감정이 행동으로 바뀌는 것을 가속화합니다.

스트레스를 다르게 설명하면 생존을 위해 빨리 움직여야 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이성을 마비시키고 본능, 감정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가능한 줄이면 좋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옷을 맨날 똑같은 것이 좋은 예지요.

일상을 루틴 화하고, 그 루틴이 스트레스가 적도록 꾸려가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분배하는 것도 좋지요.

아침 출근시간에 옷 고르는 것보다, 전날 미리 골라놓고 자는 것. 그리고 스트레스 상황인 아침 출근시간에는 옷을 무조건 그대로 입고 가도록 훈련하는 것 같이요.

스트레스 관리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썼고, 다음에도 다뤄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감각 차단하기입니다.

이건 연습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요.

보통 감정을 처리하기 어려운 경우는 감각이 예민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유전적인 경우 거나, 생애 초기에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환경인 경우가 많지요.

여하튼 이렇게 감각이 예민한 분들은 본인이 처리하기에는 너무 과다한 자극이 한 번에 들어옵니다.

이러면 그 자극마다 감정이 발생하고, 이걸 일일이 처리하기가 어려워지죠.

그래서 예민한 감각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습니다.

방법은 다양합니다.

의사 없이 해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드리면, 먼저 자신이 예민해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감각을 목록을 쭉 써 봅니다.

대충 물때 냄새, 날카로운 생김새, 땅콩 맛 등이 써질 것입니다.

그러면 순서대로 가장 힘든 자극부터 쭉 순서를 매깁니다. 

그리고 가장 덜 힘든 것부터 하나씩, 그 감각에 노출을 시키면서 본인의 생각과 감정 변화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때 냄새에 민감하다면, 그 냄새를 계속 맡으면서 본인의 생각과 감정에 뭐가 나오는지 보는 것이죠.

하루 30분씩 이것을 일주일 정도 반복하면 그 감각에 상당히 누그러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단계를 높여가는 것이지요.

음... 의사 없이 하기는 좀 힘드려나요.

여하튼 내가 왜 이렇게 고생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분명히 효과가 있습니다.

나중 가면 본인이 유독 예민하게 느끼는 상대의 표정 같은 것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에 더하여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수 있겠습니다.

총정리하면, 감정을 아예 안 느끼는 것이 조절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 감정이 일어난 후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 잘 처리하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의 강도를 낮추고,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예민해진 감각을 달래주어야 한다는 것. 이상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쓸데없는 말하기가 좋은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