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슬픈 여자

갑의 연애가 허망한 이유

by 아빠나무
사랑받는 여자는 불행하다.


여자는 사랑받고 싶다. 아니, 모두가 그렇다. 싸구려 소설을 보면, 완벽한 주인공이 나온다. 어째선지 사랑받고 있는 소녀는, 많은 남자에게 둘러싸여서 기쁨을 누린다. 소설을 덮고 자신을 돌아본다. 주인공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남자 친구가 있지만... 뭐라 말을 못 하겠지만, 부족한 것 같다. 왜 나를 이렇게 놔둘까.


남자는 힘이 든다. 내 여자 친구를 사랑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여자 친구는 늘 부족하다고 한다. 내 삶이 없어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할 수 있었다. 저 여자만 내 여자 친구가 된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모르겠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사랑을 보여달라는데. "Proove it!" 입생 로랑 광고를 보면 답답하다. 어쩌라는 걸까.



받는다는 수동태가 가진 모순


사랑받는다는 것은 너무도 멋진 일이다. 누군가 나를 온전히 좋아한다는 그 말만으로도 기쁘다. 사랑받으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일도 의욕적으로 할 수 있다. 키스를 받고, 꽃을 선물 받으면 아드레날린이 터져 나온다. 흥분된다. 사랑받으니 얼굴이 좋아졌단다. 표정도 좋아진다.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다. 걱정이 없어진다. 이 행복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남는다.


인간은 익숙해지면 없다고 느낀다. 커피를 매일 3잔씩 마시면, 더 이상 카페인이 아닌 것처럼. 커피를 1잔으로 줄이면 커피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사랑도 계속 받다 보면, 어느새 사랑이 부족하다는 감정만이 남는다. 사랑이 변하지 않아도, 나에게는 사라져 있다. 이제 행복하지 않다.


거기다 받는다는 수동태는, 이제 결정권을 뺏어버린다. 나는 사랑받을 때,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내가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니까 사랑받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착각이다. 그 사람이 너에게 사랑을 줄 수 있을 만큼 좋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당신에게는 아무 권한이 없다. 그저 그 사람이 주는 것을 거절할 수 있을 뿐. 하지만 사랑받는 것에 익숙한 그대는 거절도 할 수 없다. 부족하면, 미칠 것 같으니까. 그래서 더 주라고, 더 주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상대가 그럴 수 있을까? 아니, 상대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주인공


을의 연애를 할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가 퍼주는 사랑을 할까 봐 긴장한다. 처음에 기세를 잡아야 한다며 갑이 되고자 노력한다. 자기가 더 많이 받으려고 한다. 자기가 주면 손해인 것 같다. 소설 속 주인공은 사랑을 받으니 승자인 것 같다. 하지만 소설이 끝나고, 현실 속 주인공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상투적이지만, 인생의 주인공은 '나'니까. 사랑받는 사람의 1인칭 시점에서 생각하면, 사랑의 주인공은 언제나 남이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사랑이던 주는 사람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치명적 매력을 가져서 줄 수밖에 없는 상대가 나타나버렸다? 그래도 선택은 주는 사람이 한 것이다. 주고, 사랑하고, 후회하고, 슬퍼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그대는 변했을 것이고, 성장했을 것이다. 이제 또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사랑받은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잠시 기뻐했겠지. 그것뿐이다. 허무한 받음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성장하지도 못했다는 말이니까. 시간만 낭비한 것이다. 사랑을 줘라. 손해를 안 입으려고 사랑을 주지 않는다면, 식물일 뿐이다. 나는 생쥐여도 좋으니, 움직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전 02화내 미역국은 이렇게 짜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