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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나무 Dec 14. 2020

주모! 국뽕 한 사발 말아줘!

안녕하세요 아빠나무입니다. 


오늘은 '국뽕'과 관련된 심리 작용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국뽕을 정의해봐야겠지요. 


'국'가 + 히로'뽕' 의 합성어로,


자신이 속한 국가의 어떠한 면이 대단한 점에 전율을 느끼면서 고양감을 느끼는 것으로 정의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스포츠 경기에서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다가 탁!하고 이겼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지요.


요즘은 일시적인 감정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이러한 내용만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행태가 포함되었죠.


거기에 더하여 국뽕을 자극하기 위하여 별것도 아닌 것이나 심지어 거짓으로 조작하는 행위까지 단어에 포함되면서 뭔가 단어가 난잡해진 감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감정으로서의 국뽕에 대해서 다뤄봅시다. 




우리는 왜 '국뽕'을 느끼는 것일까요?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는 국민일 뿐이고 국가대표가 이기는 것은 우리와 직접적 연관은 없는데 말입니다. 


마치 직접 연관이 있고, 이게 심지어는 나=국가 인 상태가 됩니다. 


심리학,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심리적인 과정을 '동일시'라고 합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방금 생각하신 그 뜻 그대로 입니다. 


어떤 대상과 내가 같다. 라고 느끼는 심리 과정입니다. 

아주 자세하게는 그 대상의 일부를 받아들여 나의 인격의 일부로 삼는 것입니다만, 뭐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좋아하는 것은 따라하게 되지요? 이게 동일시입니다.

이 따라하는 과정에서 나 = 대상이라는 생각이 깊어지니까, 대충 두 개념을 뭉뚱그려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동일시를 시작합니다. 


첫 상대는 대부분 부모이지요. 


우리는 태어날 때 백지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대상이 앞에 있으면, 우리가 그 대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행동을 모방하고, 따르죠. 


이 때는 엄청난 기억을 남습니다. 다른 대상이 없기에 나 = 부모였죠.


이런 강렬한 기억은 부모님 욕을 들으면 기분이 나쁜 것으로 나타납니다. 


나 = 부모니까 부모를 욕하는 것은 나를 욕하는 것이죠. 


점차 개별화라는 과정을 거쳐서 나 = 부모까지는 아니게 되지만, 나의 일부는 부모라고 생각하는 정도 까지는 고정이 됩니다. 

그래서 대인관계를 할 때 이 약화된 동일시를 계속해서 하면서 관계가 만들어지고, 깊은 대인관계를 하는 사람과 비슷해져갑니다.




우리는 수시로 이 동일시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동일시가 되어야 재미있는게 많아요.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주인공에 동일시합니다. 


게임을 할 때는 조작하는 캐릭터에 동일시를 하지요. 


이 동일시가 되면 내가 그 대상의 일부가 되고, 그 대상이 나의 일부가 됩니다. 


그러면 감정도 더 격하게 느껴지고, 상황에 몰두하게 되지요. 


그 감정의 파고와 몰두가 나에게 재미를 주지요. 


'저 주인공은 나와 상관이 없어'라는 생각을 계속 반복하면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해보세요. 세상 재미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많은 작가와 게임 제작사들이 어떻게하면 독자, 플레이어가 주인공과 동일시하게 만들지를 고민하지요. 




다시 국뽕으로 돌아오면, 국가 = 나 라는 동일시가 형성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이 동일시가 강하게 형성된 사람은 국뽕을 느끼고, 약하게 형성된 사람은 국뽕 컨텐츠를 보아도 별 감흥이 없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나이가 많은 분들일수록 국가 = 나 라는 동일시를 형성하도록 강하게 교육받았지요. 


전쟁이라는 위기, 군부정권의 충성 교육 등등은 무의식에 이 동일시를 강하게 주입했습니다. 


그래서 2020년 현재 국뽕 컨텐츠는 장년 ~ 노년층에게 인기가 많지요. 


이 동일시를 형성하는 교육이 거의 없어진 젊은 사람들은 이런 컨텐츠에 오히려 당황스러움을 느끼고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동일시를 느끼기 쉽습니다.

긴 역사, 단일민족, 고립된 자연환경, 사방이 적, 전쟁 후 발전이라는 드라마적 요소 등 아주 다양한 동일시를 일으킬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지요.

다만 이런 요소가 장년~노년층에 훨씬 강하게 작용하고, 청년층에게는 덜 작용하다보니 세대강 국뽕지수가 너무 다른 것이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서로 이해가 안되버리죠. 

뭔가 발전하고 강대해지는 것에 인간은 동일시하기가 쉽습니다. 자기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기분이 좋잖아요.

그래서 노년층이 '아니 이걸하면 나라가 발전하는데(그러면 너도 발전할건데) 나라를 위해 이것도 못 해?'라는 말을 할 때 젊은이들은 '아니 내가 나라를 위해(내가 발전하지 않는데) 이걸 해야해?'가 됩니다. 

러시아사람들 중에 소련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사람들 중에 일본제국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이 때에 동일시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정치에서는 이 동일시를 유도하기를 위해 최선을 다 합니다.

다수에게 이것을 유도하기 위해서 서민코스프레도 하고,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악수를 하루 다니지요.

프레임짜기라는 것도 이 동일시를 유도하거나, 적대진영이 가진 동일시를 깨버리는 것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게 깨지면 현타와 함께 빠가 까가 되는 현상까지 일어나거든요.

이전에는 적이라고 인식하던 대상에 동일시가 일어나버리기 쉬우니까요. 

제가 봤던 재미난 것은 메시와 호날두에 대한 팬덤 대결인 메호대전이, 호날두의 동일시 깨기 한방에 전세가 완전히 넘어가버렸죠. 우리형이라고 부르던 강력한 동일시가 깨져버리니 이제 적이 될 일만 남았던 것은 아닐까 추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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