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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나무 Dec 16. 2020

사촌이 땅사서 배아프면 병원에 가야한다

안녕하세요 아빠나무입니다. 




인간은 나름의 통찰을 언어에 남기고, 통찰이 농축된 한 문장은 많은 의미를 가집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대표적이죠.


많은 분들이 '배가 아프다' 이 부분을 단순히 부러움에 대한 배알 꼴림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알고 있으신데요.


실제로 아픕니다. 아니, 정확한 표현으로는 아픈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불쾌하고 기분 나쁜, 설사를 하려나 싶은 싸-한 느낌의 통증이 나타납니다.




우리 몸에는 내부 장기를 다스리는 신경이 있어요. 


'자율신경'이라고 부르는 녀석이지요. 


긴장 신경, 이완 신경이 나눠져 있어서, 몸 전체의 긴장과 이완을 왔다 갔다 조절하지요.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 이 자율신경들이 오작동을 일으킵니다.


그러면 긴장 안 할 상황에서 긴장이 되어버리죠.


소화기관은 연동운동이라고 음식물을 쥐어짜서 내리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긴장 신경이 작동해버리면 연동운동이 멈춰버립니다.


소화된 음식물이 내려가려고 하는데 내장 근육이 운동을 안 해서 멈추고, 안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긴장하지 않을 상황에 긴장하면 분위기가 싸- 해집니다.


내장도 싸-합니다.


그러면 뭐라 표현하기 힘든 애매한 복통이 생기지요. 




사촌이 똑같은 땅을 사도, 배가 덜 아픈 사람이 있고 많이 아픈 사람이 있습니다. 


많이 아픈 사람은 이 자율신경 이상이 심하다는 것이겠죠?


이런 분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복통뿐만이 아니라 근육통, 두통, 치통 등이 왔다 갔다 하면서 온 몸이 안 좋다고 느낍니다.


근육도 자율신경이 일부 작용하니까요.


긴장/이완을 제대로 못 하니 뭉치기도 하고 근막을 자극하기도 하는 등 여러 작용으로 통증이 발생하죠.


이런 분들은 아래와 같은 상황에 빠집니다.




언젠가부터 몸이 아프다. 


어디 한 군데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가 아프다. 


특히 스트레스받으면 그렇다. 


명절이 다가오거나, 조금 긴장할 일이 있고 나면 훨씬 심해진다. 


너무 아픈데, 병원 가면 이상 없다는 말만 듣는다. 


심인성, 스트레스성이라는데 그건 결국 상상으로 아프다는 말 아닌가?


나는 정말 실제로 아픈 것이다.


목도 아프고, 머리도 띵하고, 배도 아프고, 가끔 숨도 잘 안 쉬어지는 것 같고, 근육이 당기기도 한다. 


눈도 떨리고, 입술도 씰룩거린다. 


몇 년째 이러니 가족들도 지친 표정이다. 


희귀병이 있는 걸까 싶어서 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 




왜 이런 진퇴양난에 빠질까요?


그건 이 현상을 현대 의학기술로 밝혀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오직 이 이유 때문에 아픈 것입니다!'라고 증명하기가 엄청나게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1+1 = 2라는 사실은 엄청나게 간단해 보이지만, 아주아주 엄밀하게 수학적으로 증명하려면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비슷한 느낌이에요.


일단 자율신경을 제외하면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해야 하는데, 이게 거의 불가능해요.


만에 하나의 희귀병이 있거든요. 괴질.


그러면 아무리 자율신경을 좋게 만들어도 좋아지지 않겠죠.


그런데 세상의 모든 희귀병을 알고 있는 의사도 없고, 그걸 모두 검사하는 것은 엄청난 낭비이죠.


그렇지만 계속 아프니까, 돌고 돌고 돌아서 수천만 원 쓰고 대학병원 정신과로 오시게 됩니다.




특히 운동량이 적고 체구도 작아서 불안을 자주 느끼는 분들이 이런 현상이 심합니다. 


자율신경 안정도도 떨어지고, 근육이 조금만 긴장해도 양이 적다 보니 훨씬 민감하죠. 


깡마르고 늘 불안해하는 연세 드신 아주머니가 전형적인 환자분의 모습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안정제가 즉효를 발휘합니다. 


일순간 자율신경이 이완되거든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소위 약발이 떨어지기 시작하죠. 


자율신경이 튼튼해지지는 않거든요. 


이상해질 때마다 약을 통해 강제로 안정만 시키다 보면 더 허약해지죠. 




이런 분들에게 최고의 치료는 운동입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고 땀이 뻘뻘 나는 격렬한 운동. 


거기에 더해서 불안을 잠재우는 복식호흡과 명상, 인지행동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죠. 




여기서 의사로서 약간 고민이 생깁니다. 


안정제만 딱 주면 명의가 돼요. 


환자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고, 거의 신처럼 저를 떠받들어주시죠.


그런데 '운동하셔야 합니다.'라고 하면 '몸이 안 좋아서 운동을 못 해요.'라고 하셔요.


'약으로는 못 고칩니다.'라고 하면 '진단도 못하고 치료도 못하는 돌팔이는 꺼져라!'라고 하면서 다음부터는 안 오시죠.


제대로 치료하면 돌팔이, 증상만 막으면 명의가 되는 좀 억울한 상황입니다. 


결국은 소량의 안정제와 함께 운동을 하도록 운동의 효과에 대해 말로 약을 팝니다.


아니면 가족을 한 명 붙잡고 '너 평생 저 모습 안 보려면 같이 운동 힘들게 시켜라'라고 협박을 하죠.




여러분 주변에 떠오르는 인물들이 한두 명은 있을 것입니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픈 분, 조금만 스트레스받으면 몸 여기저기가 이상하다고 느껴지시는 분.


같이 운동해주세요. 의사의 약보다 여러분이 같이 해주는 시간이 그분들에게는 치료입니다. 


물론 최대한 정밀한 진단은 필요하니, 의사는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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