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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나무 Dec 16. 2020

대한민국 조현병 환자 가상 시나리오

하기 내용은 환자분들과 면담을 통해 구성한 가상의 시나리오임을 밝힙니다.


또한, 조기 중재와 사례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각색이 있음을 밝힙니다. 




한 3개월 전부터 뭔가 민감해지고, 짜증도 많아지고, 막 이상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기분도 울적하다. 모두가 다 나를 싫어하는 느낌이 든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느껴진다. 


2주 전부터는 나에게 죽으라는 말을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의 목소리다. 나를 싫어했었나. 


매일매일 들린다. 귀가 아프고 어지러워서 mp3를 벗고 싶은데, 이어폰이 안 빠지는 느낌이다.


아니 뺄 수 없다. 집중도 안된다. 책을 읽을 수 없다. 


무기력해져서 자취하는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교의 동기들에게 가끔 문자가 오지만 답변을 하기 무섭다. 




오늘 한동안 연락이 없는 나를 찾아서 어머니가 왔다.


어머니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환청이 들린다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린다.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시는 것이겠지.


나는 정상인데. 아니, 조금 이상하지만. 나는 괜찮은데.




어머니 손에 이끌려 정신과 의원에 방문했다. 의사하고 2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의사는 지금 내가 당장 자살을 하거나 사고를 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젊고 발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정밀하게 평가하고 약을 쓰자고 한다.


이렇게 빨리 온 것은 어머니가 엄청 대단해서라고 한다.


다른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이 정신과 환자 일리 없다며 1년도 넘게 안 온다며, 빨리 와서 다행이란다.


늦게 오면 뭐 거의 바보가 된 상태로 오니까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다고.


그런데 내가 그렇게 심각한 건가? 스트레스받았을 뿐인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지만 어머니는 의사 말을 듣더니 그 날 바로 대학병원 예약을 잡았다. 


내 말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무섭다. 대학병원에 가면 입원하는건가? 거기에 내 여자 친구가 있을 것 같다. 


목소리가 그렇게 말해준다. 내가 거기 있으니 오면 죽인다고. 


어머니에게 가기 싫다고 떼를 쓴다. 그렇지만 이유를 말할 수는 없다. 말하면 어머니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아니까. 


어머니가 속타하신다. 결국 무섭지만, 가기로 했다. 




대학병원에 도착해서 한참을 기다린다. 미쳐버릴 것 같다. 아니 이미 미쳤는데 또 미칠 수 있나. 


의원에서 만난 의사보다 한참 젊은 의사하고 이야기를 했다. 레지던트란다. 


조현병일 가능성이 높으니 입원을 하자고 한다. 


입원할 때 나는 별거 할 것이 없었다. 다만 어머니는 엄청나게 바빠 보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가족관계증명서, 신분증, 등본 등등을 무조건 입원 당일 날짜로 떼어와야 된단다. 


그것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오시게 해야 했다. 


아버지도 와서 난리였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나를 맡기고, 서류를 이것저것 떼어오셨다. 


내 옆에 있던 할머니는 그런 것 뗄 줄 모르는데 어떻게 하냐고 울고 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나는 조용히 따라와서 괜찮은데, 난리 치면서 들어오는 사람도 있던데...


그 사람들 서류는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지 신기하다.


입원을 생각한다면 미리 입원할 병원에 전화해서 필요한 서류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니, 입원도 어렵다.


나는 이렇게까지 해서 입원을 해야 하는 걸까.




보호병동이라는데 옛 말로는 폐쇄병동이란다. 


1~2일에 한 번 의사와 면담을 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그냥 환자들하고 노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엄청 무서웠는데, 군대하고 뭐 크게 다르지 않다. 엄청 자유로운... 당나라 군대?


내무반처럼 자기 침대하고 서랍장이 있어서 거기에 물건을 둔다. 


가끔 내 물건을 훔쳐가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진짜 힘들어 보여서 놔뒀다. 


환청이 시켜서 가져갔다고 사과하면서 나중에 돌려줬다. 나도 심해지면 저렇게 되나.


자유시간 사이에 군대 일과하듯이 프로그램 시간이 있어서 참여한다. 


좀 유치한 것 같다. 춤추는 시간도 있고 미술시간도 있다. 


군대하고 결정적으로 똑같은 것은 밖에 못 나간다는 것이다.


답답하다. 가끔 산책시간이 있기는 한데, 내가 안정 상태여야지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건 의사가 판단한단다.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아직도 여자친구 목소리는 가끔 들리지만.


병원밥이 맛없는 것도 군대랑 똑같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이야기해서 좋아하는 반찬을 사식처럼 넣어서 먹기도 하더라. 


나는 부모님이 멀리 계시기도 하고,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먹었다. 


밖으로 못 나가니까 간식을 대신 사다 주는 시스템이 있어서 가끔 과자도 먹고, 라면도 먹었다.  




내 옆 자리 아이는 입원한 지 일주일 되었는데 부모님이 '자기 마음이 아파서 안 되겠다.'면서 퇴원한 적이 있었다.


의사가 '다시 돌아오실 텐데...'라고는 했지만, 법이 그렇다면서 부모님이 원하니까 즉시 퇴원을 시켜줬다. 


그런데 진짜 2주 만에 돌아왔다. 애가 상태가 훨씬 안 좋아졌다. 


나가서 씻김굿을 했다는데, 그걸 보고 애가 경기를 했다더라. 무섭다.




입원해서 주로 하는 일은 약 먹는 것이다. 


조현병은 약이 중요하다고 의사가 귀에 못이 박히게 이야기를 한다. 


의사가 약 잘 먹으라는 말이 환청으로 들릴 기세다. 


그런데 약 먹으면 졸리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여자친구 목소리도 안 들리고, 무서운 느낌도 사라졌다. 


뭔가 머리에 안개 낀 느낌도 사라졌다. 세상이 밝아졌다. 


그런데 졸려. 몸이 무거워.


이거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 먹기도 너무 귀찮다. 아침저녁으로 먹는데, 이거 나가서 먹을 자신이 없다.


그리고 약 먹을 때마다 내가 정신과 환자인 것 같아서 막 우울해진다. 


한방 맞으면 한 달 가는 주사 있다는데. 그건 비싸다고 하더라. 


20만 원인데 건강보험 돼서 6만 원인가? 한 달에 6만 원은 너무 비싼 것 같다. 




한 달 정도 입원해 있었더니 의사가 다 좋아졌다고 한다. 


환청도 안 들리고 무서운 느낌도 없으니까 좋아진 것 같기는 한데. 


이거 그냥 쉬면 좋아지는 것 아닌가? 약 안 먹어도 좋아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에 의사가 그거 틀린 생각이니까 약 꼭 먹으라고 한다. 


가끔 독심술사 같아서 깜짝깜짝 놀란다. 


생각해보니 이 의사가 이제 좀 친해졌다고 생각하는지 가끔 반말도 한다.


사실 나도 반말 가끔 섞어서 했다. 나이도 보니까 나랑 비슷하더라. 


퇴원할 때 산정특례를 하자고 한다. 


엄청 오래 약을 먹어야 하거나 치료비가 비싼 병 중에 몇 개를 국가가 지원해주는 것이란다. 


그런데 이게 건강보험공단에 내 정보가 올라간다는데...


그럼 취직이나 공무원 될 때 불리한 것 아닌가?


의사는 아니라고 엄청 쉽게 말하는데... 뭐라고 설명을 해 줬는데 퇴원하고 싶은 마음에 안 들렸다.


여하튼 친해진 의사가 이 정보가 밖으로 나가게 되면 불법이라니까 믿고 하기로 했다.


산정특례 하면 병원에 내는 돈이 거의 1/3로 줄어든다는데 해야지 뭐.


대학병원은 입원비가 비싸서 한 달 입원하면 200만 원 정도 나온다는데, 산정특례 하니까 100만 원 정도로 줄었다. 


그래도 비싸기는 하지만, 훨씬 좋네. 공돈이다라고 생각해야지. 


산정특례 하면 그 한 달 가는 주사가 2만 원이라는데, 그럼 맞을만한 것 아닌가?


의사한테 물어보니, 의사는 일단 약으로 먹자고 한다. 


지금 성분이 다른 약을 먹고 있어서 바꾸려면 한 2주 걸린다는데, 더 입원해 있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니 그럼 처음부터 주사로 주던가.


의사가 정신건강증진센터에 등록하라고 해서 그것도 하기로 했다.


별 것해주지는 않는데 그래도 등록이라도 해 놓으면 나중에 부모님이 훨씬 편하다니까. 




한 달 만에 밖에 나왔는데 어색하다. 


부모님은 의사한테 연신 아들을 옛날처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굽신거린다. 


의사 놈이 나한테 얼마나 협박을 했는데...


약 안 먹으면 지능이 떨어진다고, 약 먹으란 말이 아주 피딱지가 되어서 귀에 앉은 것 같다. 


재발해서 상태가 나빠지면 다시 대학병원으로 못 오고, 언덕 위에 하얀 집 같은 곳에서 6개월씩 입원해야 한다고 협박할 때는 쫌 무서웠다. 


그래도 나 잘되라고 하는 협박인 것 같기는 한데, 왜 무섭게 말하는지 원.




다시 학교로 돌아가려니 무섭다. 애들이 왜 연락이 안 되냐고 카톡이 와 있다. 


뭐라고 이야기하지. 일단 그냥 아팠다고만 해야지. 


휴학 신청을 해놨다. 애들보다 늦어지겠지만, 지금 다시 공부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의사한테 계속 졸리다고 이야기했는데, 의사가 지금은 이게 최선이란다. 


의사가 '나도 약 줄여주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더 줄이면 환청 들리잖아요? 환청 안 들리는 상태로 뇌를 굳혀야 한다니까요?!' 하는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야지.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해주는 사례관리는 뭐 별게 없는 것 같다. 


일단 센터에 나오는 분들이 나보다 훨씬 상태가 안 좋은 분들이다. 


대부분 아직 환청이 들리는 것 같고. 내가 저렇게 될 거라니 좀 무서운 생각도 든다. 


의사가 급성기를 여러 번 겪으면 안정기에도 증상 일부가 남아버려서 치료가 어렵다고 하던데. 


재발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정도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지만, 수준이 안 맞는 것 같다. 말도 다 어눌하고. 같이 못 놀겠다. 


가끔 영화도 보러 가고, 볼링도 친다는데 좀 그렇다. 


사례관리자라는 분도 '만성 환자 위주라서... 좀 어울리기 힘들죠?'라고 한다. 


센터 이용은 하지 않고, 사례관리만 받기로 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방문하시고, 가끔 전화 통화를 한다. 잘 지내는지 물어보신다. 




이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다. 의사 선생님도 이제 약 줄여도 된다고 해서 약을 줄였다. 


졸린 것은 사라졌는데, 내가 게을러진 것 같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뭔가 느끼는 것을 잘 못한다. 감정 자체가 잘 안 느껴진다. 멍하다. 


이게 음성 증상이라고 한다. 이거는 훈련으로 좋게 해야 한다는데. 


이건 아직 약도 없다고 한다. 의사가 한탄을 한다. 자기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나라에서 돈을 써가지고 일상 훈련도 시켜주고 직업 훈련도 시켜주고 하면 좋겠는데, 아직은 안 해준다고 한다. 


6개월이 지나니까 엄마가 어디서 말을 듣고 왔는가, 머리 쓰는 일은 어려울 것 같으니 기술을 배워보자고 하신다. 


그 말을 하는 어머니 눈이 너무 흔들리고 눈물이 보여서 내가 힘들었다. 


조현병은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고, 그러면 직업지원 등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장애인이 된다고? 


싫다.


일단은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부터... 귀찮네. 




3년이 흘렀다. 다행히 나는 재발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 혼자서는 뭘 할 수가 없다. 


변명인가? 그래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 된다. 누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없다. 


부모님도 지치셨다. 자기들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하냐면서 우신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는 아마 생활보호 대상자가 될 것이다.


이전에 안 한다고 했던 장애인 신청도 해놨다.


나랑 그때 같이 입원했던 아이는 훨씬 안 좋았는데, 퇴원하고 바로 장애인 신청을 했다더라. 


그리고 장애인 전형으로 공무원 시험을 봐서 합격해서, 뭐 말단 직원이지만 일하고 월급을 받는다는데.


부럽다. 나도 얼른 복학했으면 좋았으려나. 지금은 공부할 엄두도 안 난다. 


그렇다고 뭐를 배울 엄두도 안난다. 이미 부모님 재산도 상당히 까먹었다. 


어쩌겠나. 나 때문에 일에 집중을 못 하시는데.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없으니 의료급여 상태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병원비가 무료라고 하더라.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야기지만. 


그런데 그놈의 한달가는 주사는 돈 내라네? 나쁜 놈들... 




살이 쪘다. 움직이기가 싫다. 예전의 내가 아닌 것 같다. 


의사는 만날 때마다 운동하라고 하는데. 대답만 하고 안 한다. 


3년 넘게 부딪치니까 이 의사가 참 좋은 의사고, 열심히 해줬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안되는 것 같다. 


의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다. 


그런데 아닌 일이 진짜 많다. 의사가 나를 끌고 다니면서 직업훈련을 시켜주지는 못 할 테니까. 


이걸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혼자는 못 할 것 같다. 


광주에서 '마인드 링크'라는 곳에서 뭐 이것저것 한다는데.


내가 처음 걸렸을 때 그런 도움을 받았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까. 


다시 시작하고 싶다.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는 인생이 싫다.


그래도 그냥 살아간다. 멍하니.






우리나라에서 조현병에 걸렸다면 병이 아주 가벼운 분이거나, 아주 열정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부모님이 아니라면 이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이 시나리오에 나오는 부모님 정도면 상당히 좋은 부모님에 해당하는데도 이렇습니다. 


'의학적'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고 하더라도 많은 보조와 도움이 필요한 것이 정신질환입니다. 


그리고 하루바삐 그 도움과 보조가 잘 이루어져서 환우분들도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를 빕니다. 


이런 조현병 환우의 사례관리에 관심 있는 분들은 '마인드 링크'를 검색해보세요!


다음 글에는 조현병 환자 사례관리의 이상적 사례에 대한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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