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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나무 Dec 24. 2020

F코드 없이 정신과 진료하기

모처럼 보건복지부가 마음에 드는 일을 해서 이를 알리고자 전달해드립니다. 




지금까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려면 F코드를 넣어야 했습니다. 


F코드라는 것을 먼저 설명을 드릴게요.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의사가 환자분에게 받는 돈은 아주 일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의사는 환자분에게 진료를 하면, 건강보험공단에 '내가 이런이런 진료를 봤으니 돈 더 주세요.'라고 신고를 합니다. 


그러면 건강보험공단이 보고 '응 그래 줄게'하기도 하고, '안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번 '안돼'하기 귀찮으니까 '이런 것은 아예 안 줄 거야 신고도 하지 마'라고 정해 놓은 항목이 있습니다. 


이걸 비급여라고 합니다. 주로 생명과 관련이 없는 미용이나 특수치료 같은 것들이 해당이 되지요. 


'이런 것만 줄거야'라고 해 놓은 것을 급여 목록이라고 하고, '이 정도만 줄 거야'라고 해 놓은 것이 수가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보건복지부나 건강보험공단이 뭐는 돈을 주고 뭐는 안 주는지를 계속 신경을 쓰면서 신청을 잘 넣어야 하죠. 


건강보험공단에서 '너 우리 말대로 안 했지? 안 줌' 해버리면 손해가 엄청납니다. 


이거 몇 번 크게 당하면 병원 운영이 어렵다고 할 정도래요.


(이 위의 설명은 모두 아주 간단하게 퉁 친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에게 의사는 '이런 질병으로 이런 치료를 이렇게 했으니 돈 주세요.'라고 보고서 같은 것을 올립니다. 


그런데 보고서를 다 읽을 수는 없잖아요? 전국적으로는 하루에만도 몇 십만 명이 진료를 볼 텐데요.


그래서 이것들을 코딩해 놓은 시스템을 빌려왔어요. 


ICD라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넘어갑시다. 


여하튼 이 코딩 시스템에 정신과 질환은 거의 모두를 F**.**로 모아 놓았죠.


그래서 F코드라고 하면 정신과 코드라고 알려져 있지요. 


정신과에 방문하면 F코드를 등록하고, 진료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진료 과정이겠죠.




사실 별다른 것이 없는 행정적인 과정인데, 정신과 질환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이 행정적 장치에 새로운 낙인을 부여했습니다.


나중에 건강보험기록을 모두 떼어보실 수가 있는데, 그러면 어떤 코드로 어디서 언제 진료를 보았다가 뜹니다. 


물론 기밀이고, 이것을 유출하면 큰 벌을 받습니다. 본인이 신청하거나 영장이 나와야만 다른 사람이 볼 수 있죠. 


지금은 많이 사라져 가는 추세인데, 사보험에서 F코드 진료기록이 있으면 가입을 안 받아주는 곳이 있었습니다.


사보험 = AIG 띠링띠링, 실비보험 같은 것입니다.


또한 갑질 하는 직장 등에서도 이런 것을 떼어오라고 하기도 했었고요. 


요즘 직장에서 이것을 떼어오라고 하면 바로 신고 넣으세요. 포상금 나올 겁니다.


아닌가? 포상금은 아니어도 여하튼 요구하면 불법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군인, 국정원 정도가 아니면 정신과 진료를 봤다고 불이익을 받을 일은 요즘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죠.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응급실에서 진료 후 F코드를 넣으면 '내가 정신병자냐!!'하고 나중에 병원 와서 뒤집어버립니다. 


부모님이 아이를 데려와서는 '애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기록 남기면 안 된다. 내 이름으로 진료를 봐달라.'라고 하기도 하고요. 


'나는 병인지 아닌지 헷갈려서 정신과 의사한테 진료를 받고 싶은데, 그러면 일단 F코드가 기록에 찍히니까... 못 가겠네.'라는 분도 많았죠.


그래서 '정신과 기록이 안 남는 곳'을 찾아다니느라 이런저런 상담센터를 떠돌다가 병을 키우게 되지요. 




이전에 이것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Z코드는 상담 코드라고 해서, 상담이 필요한 사람에게 상담을 했다는 것을 표시하는 코드를 새로 만든 것이죠.


그런데 이 Z코드에는 지금까지 건강보험공단에서 '응 안 줘'라고 했었어요. 


정확하게는 첫 번째 상담, 의사들이 보통 말하는 초진은 줬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안 줬어요. 재진이 안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리고 상담만 할 수 있고 검사 같은 것은 못 했죠. 


사실 무쓸모... 정신과 질환이 상담 한 번으로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 후에는 F코드를 쓰거나, 아예 비보험으로 공단에 신고를 안 해버려야 했죠. 


그래서 한차례만 상담이 이뤄지고, 그 이후로는 끊어져버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2020년 1월 1일부터 Z71.9 보건일반상담 코드로 재진을 해도 건강보험공단에게 '돈 주세요'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이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돈 줌'이라고 공시를 했는데, 이 내용이 포함되었어요.  


그래서 이제 상담만을 위해 내원한 경우에 정신과 의사가 쭉 이어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현재까지 나라가 인정한 수가를 청구하고, 환자는 정신과 기록에 대한 걱정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죠. 


사실 이제 정신과 관련된 편견은 많이 줄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안 느끼는 분들이 많고 실제로 걱정하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다만, 아직 약물 처방은 F코드가 들어가야지만 됩니다. 상담과 간단한 검사까지만 Z코드로 가능해요.




요약하자면 '정신과 기록'이라고 이야기하는 통칭 'F코드' 없이 정신과 진료를, 상담에 한해서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더 좋은 것은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불이익을 주는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나요. 


정신과 진료를 받는데 큰 문턱이 아주 약간이나마 낮아지는 것만이라도 만족해야죠.


의사 입장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일만 하는 것 같은 보건복지부입니다만, 칭찬할 것은 칭찬해야죠!


주변에 정신과 진료에 대해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아빠나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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