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아르코스 - 로그로뇨
팜플로나 이후 다시 대도시 Logroño(로그로뇨)로 입성하는 날.
로스 아르코스에서 로그로뇨까지의 거리는 28km로, 그동안 해온 모든 여정들보다 긴 거리였다.
먼 거리지만 목적지가 정원 20명인 도나티보 알베르기였기에 동이 트기 전 길을 나섰다.
해가 뜨기 전 푸르스름할 때 나온 적은 많았지만 빛이 아예 없이 깜깜할 때 여정을 시작한 건 처음이었다.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니 랜턴을 끼지 않으면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JH, SY님과 함께 걷기 시작했는데 혼자였으면 정말 무서웠을 길이었다.
지나친 길에 공장 기계 같은 것이 있었는데 순간 '살인의 추억'이 생각났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더 무서워질게 뻔해서 그냥 혼자만 되새김질했다.
그리고 랜턴에 의지하여 걷다 보면 저 멀리서부터 동이 트기 시작한다.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을 보며 여명(黎明)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黎 검을 여 明 밝을 명. 내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한자 단어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랜턴 빛에 의지하며 나눈 대화들이 좋았다.
대화를 나누다가 함께 밝아지는 하늘을 보고, 랜턴을 끄고 걸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저 멀리 보이는 첫 마을 San Sol(산솔)은 사진으로만 봤던 몽생미셸을 닮았다.
이 마을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아기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 때문에 발을 못 떼고 있던 다른 한국인 HY님과 JS님까지 여기서 다 같이 만났다.
새끼부터 성묘까지 스페인 순례길 위엔 길고양이가 엄청나게 많다.
까미노를 걸으며 처음 안 사실.
나는 이제 막 하늘에 낮게 뜬 해를 노을만큼이나 좋아한다.
하늘이 밝아진 후에도 해가 눈에 보이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밝아진 하늘 아래서 걷다 보면 갑자기 내 그림자가 보이고, 그때 뒤를 돌아보면 아침해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갈길이 먼데 뒤에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으면 빠르게 걷는 걸 잊은 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말 그대로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이다.
각자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함께 여정을 시작하더라도 까미노 위에선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한다.
이 날은 힘들기도 했지만 발바닥이 너무 아팠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팠다.
확인하지 않아도 엄청난 크기의 물집이 생겼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걷다 보면 길 중간중간 각종 깃발과 돌탑들이 있는 구역이 있다.
소중한 사람들의 사진도 많이 놓여 있다.
빛바랜 사진들을 보다 보면 이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사진을 가지고 이 길을 걸었을까 하는 생각에 눈가가 뜨끈해진다.
전날 이른 저녁을 먹은 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로 15km를 걸었더니 배고파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Viana(비아나)라는 마을 도입부에서 쉬고 있는 HY님과 JS님을 만났다.
절뚝이며 들어오는 나를 보고는 쉬어가라고 권했지만 당장 입에 뭘 넣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앞에 보이는 아무 바에나 들어가서 카페 콘 레체(카페라테)와 초코빵을 사 먹었다.
1유로짜리 초코빵인데 힘든 상태에서 커피와 함께 먹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불이 날 것 같았던 발바닥도 잠깐 쉬어주었다.
비아나부터 로그로뇨까지는 9.5km 정도인데 중간에 마을이 없어서 여기서의 휴식이 이 날 처음이자 마지막 휴식이었다.
그 후 걷던 중 아침부터 계속 만나왔던 JS, HY님과 새로 보는 한국인 SY님까지 만났다.
SY님은 텐트를 가지고 다니기로 유명한 한국인이었다. 세계여행 경험이 있는 여행 초고수이기도 했다.
우리 넷은 모두 도나티보 알베르게를 목적으로 하는 96, 97, 98, 99년생 조합이었다.
쉰 이후로 발이 더 아파와서 속도가 처질 뻔했는데 이들 덕분에 계속해서 걸을 수 있었다.
물집이 생기면 발에 작은 돌이 박힌 기분이 난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했다. 신발에 돌이 들어간 것 같은데 털었을 때 돌이 없을 때의 절망감을 아느냐고.
물집 난 것 같다는 말에 SY님은 그 상태를 즐기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걷던 속도를 생각하면 이미 난 무아지경 상태였다.
저 멀리 대도시의 위용이 보이기 시작하자 엄청나게 설레었다.
도시의 모습이 멋져서인지, 2박을 할 예정이어서인지, 이제 그만 걸을 수 있겠다는 기대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발로 약 7시간 40분 만에 27.5km를 주파했다.
마지막 10km를 함께한 이들이 없었다면 오후 늦게까지 길 위에서 홀로 절뚝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원이 20명인 도나티보 알베르게 'Albergue Parroquial Santiago El Real'에도 문제없이 도착했다.
2시에 체크인을 시작하다 보니 먼저 온 사람들이 백팩으로 영역 표시를 해놓았다.
20명 안에 못 들까 봐 걱정했는데 침대가 20개였고 이후에 늦게 온 사람들에게도 바닥에 매트를 깔아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이곳은 까미노 전체를 통틀어 시설이 가장 열악했던 알베르게이다.
나는 잠자리에 대해 정말 관대하고 무던한 편인데 그런 나에게도 힘들었던 곳.
2층 침대에 올라가는 사다리도, 난간도 없었다.
대부분의 알베르게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2층을 배정해 주기 때문에 이번에도 2층을 배정받았다.
잘 때 움직이지 않고 자는 편이지만 여기서는 뒤척이다가 떨어질까 불안해서 새벽 내내 잠을 설쳤다.
다른 의미로 의미 있는 알베르게였지만 잠자리가 예민한 분들에겐 절대 추천할 수 없는 곳이다.
사람들이 2시에 한 번에 체크인을 했는데 샤워실이 2개뿐이어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온몸이 땀에 절었지만 무작정 기다리기보다 로그로뇨를 먼저 돌아보기로 했다.
타파스(Tapas)는 스페인 전통 요리로, 한 입 크기로 술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음식을 말한다.
타파스가 유명한 로그로뇨에서 특히 유명한 양송이 타파스.
다른 메뉴 없이 오직 양송이 타파스만 파는 가게도 여럿 있었다. 진정한 맛집의 향기가 느껴진다.
미친듯한 속도로 철판에서 양송이를 구워내고, 빵에 올려 손님에게 내어준다.
가격도 저렴해서 부담 없이 먹기 좋았다.
채즙이 이렇게나 대단하구나를 느꼈다. 잘 구운 버섯은 고기보다 훨씬 맛이 좋다.
다른 종류의 타파스도 몇 개 먹었지만 가장 저렴하고 대중적이었던 양송이 타파스가 모두가 뽑는 1위 메뉴였다.
(물집 사진 주의)
그리고 걷는 내내 고통스러웠던 발바닥에는 상상 이상의 물집이 잡혀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이 정도 크기의 물집을 본 적이 없다.
물집을 즐기라고 했던 SY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발을 말리려고 발바닥을 들고 복도에 서 있었는데 외국인들도 놀라고 갔다. 로그로뇨까지 잘 왔다는 훈장이 생겼다.
이 알베르게가 다른 곳보다 유명한 이유는 흔치 않게 저녁까지 제공해 주는 도나티보이기 때문이다.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하기 전, 이곳을 관리하시는 분이 순례길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요즘의 알베르게들은 너무 관광지처럼 되었다고 하시며 "Pilgrims pray but tourists demand."라고 말씀하셨다.
돈보다 순례 그 자체의 의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곳을 기부제로 운영하시는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식사는 쿠스쿠스가 가득 든 샐러드. 쿠스쿠스가 입에 안 맞는다는 한국인들도 많은데 나는 너무 맛있었다.
야채와 빵이 가득 든 수프도 뜨끈하게 몸을 데워주는 맛이었다.
여기에 요거트에 과일을 넣은 후식까지 먹었다.
이곳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소박하고 맛있는 식사였다.
함께 로그로뇨에 입성한 SY, JS, HY님과
이 알베르게에서 오래 대화를 나눴던 독일인 Julian.
2016년 완주 이후 종종 까미노를 찾는다는 그의 말을 듣고 이 길엔 정말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식사 후 몇몇 사람들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고 그중 HY님과 나도 있었다.
어쩌다 보니 가장 긴 시간 설거지를 하게 됐는데 그들이 베푸신 것에 비해, 우리가 한 것에 비해 너무나도 고마워하시며 마구 껴안아 주셔서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
이후에 공용공간에서 일기를 쓰다가 운영자분들이 회의하시는 걸 들었는데 '설거지를 chicas coreana (Korean girls)가 했다'는 이야기도 나누고 계시는 걸 짧은 스페인어로 알아들었다.
괜찮다는 만류에도 끝까지 설거지를 붙들고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은 다음날 오전에 체크아웃할 때도 내가 설거지했다는 걸 기억하고 계셨다.
그게 두고두고 고마우신지 스페인어로 길게 축복을 해주셨다.
5분의 1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마음만은 온전히 전달됐다.
많이 베풀며 바라지 않고 작은 것에 더 많이 감사하는 그들의 삶.
이 길에 끝에선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