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세계인들과 함께하는 까미노

로그로뇨

by 정한결

도나티보 알베르게에서는 하루만 머물 수 있었다.

로그로뇨에서의 연박을 위해 다른 곳에 새로 숙소를 잡아 이른 아침 길을 떠나는 사람들과 함께 나왔다.

전날 밤 비가 무지막지하게 왔는데 아침엔 다행히 그쳐있었다.


로그로뇨 두 번째 숙소는 JH & SY님이 머물고 있는 알베르게였다.

이른 아침에 갔다가 이미 그곳에 2박을 예약해 쉬고 있는 Candy를 오랜만에 만났다.


부킹닷컴에서 예약할 수 있는 알베르게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알베르게는 개별 예약 시스템을 사용한다.

그 경우 구글맵으로 숙소를 검색해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번호로 메시지를 보내서 예약해야 한다.

나이가 꽤 많으셨던 Candy는 부킹닷컴으로만 예약을 해오시다가 한계를 만난 상태였다.

아침에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대략적인 이후 루트와 구글맵을 통해 숙소를 예약하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나에게 별거 아닌 일이었는데 나중에 크게 보답하셨다.


로그로뇨 둘째 날은 일요일이었어서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나는 천주교가 아니라 기독교지만 이 날은 우연히 부활절 전 주였고, 운 좋게 천주교의 가장 큰 주일 중 하나를 스페인의 큰 도시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로그로뇨 대성당에서 한국인 다섯이 쪼르르 앉아 미사를 드렸는데 알고 봤더니 내 옆에 앉으셨던 아저씨는 신부님이셨다.

나중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내가 까미노에서 신부님 옆에서 미사를 드렸다니.


큰 도시에 왔으니 오랜만에 Kim도 만나기로 했다.

숙소에서 쉬다가 약속시간에 맞춰 나갈 준비를 하는데 Candy가 혼자 계시길래 같이 나가시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고 흔쾌히 응하셨다.


Kim과 Candy는 나이대가 비슷했고, 두 분 다 혼자 오랜 꿈이었던 까미노에 왔다는 공통점도 있기 때문에 좋은 친구사이가 될 것 같았다.


어딜 갈까 하다 내 주도로 로그로뇨의 타파스를 먹으러 갔다.

까미노를 오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이곳의 양송이 타파스는 필수 코스인데, Kim과 Candy는 전혀 모르고 계셨다.

드시고 당연히 감탄하셨고, 어쩜 이렇게 맛있는 걸 알았냐고 하시기에 원래 한국인들은 먹을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양송이 타파스와 함께 와인까지 곁들이는 그들을 보며 정말 어른 같다고 느꼈다.

이상 술 안 마시는 28살의 개인적인 평.


초반 글에서 말했듯 Kim은 까미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초초초초초 인싸였다.

이 날도 원래 나와 Kim 둘의 만남이 될 뻔한 게, 내가 초대한 Candy와 Kim이 초대한 세명을 더해 총 6명의 거대한 걸스파티가 되었다.


두 명은 프랑스에서 온 조카 Alex와 이모 Bernadette.

모녀도 아니고 이모와 조카라니 특별한 조합이었다.

그들은 매년 부활절 휴가 때마다 까미노를 조금씩 걷고 있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순례길을 휴가마다 오갈 수 있는 유럽인만의 특권이 부러웠다.


Bernadette은 영어를 거의 한마디도 못 하셨다.

Alex가 통역사로 나섰다.

직접 소통할 방법은 없는데 그분의 러블리함이 모두를 행복하게 했다.

영어로 ‘place where you dream’이라고 하셨는데 ‘침대’를 의미하신 거였다. 침대의 가장 로맨틱한 정의 아닌가!


나머지 한 명은 폴란드계 미국인 Marcelina.

말로만 들어본 존스홉킨스 의대를 다니는,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였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언어를 통달한 사람처럼 보였다.

영어와 폴란드어 원어민에 스페인어도 원어민 수준으로 했고, 이탈리아어와 독일어, 불어까지 할 수 있었다.

그녀가 합류한 이후로 Bernadette의 통역사가 한 명 더 늘었다.

길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스위치 바꾸듯 언어를 바꾸는 Marcelina를 보니 존스홉킨스는 이런 사람들이 가는 곳이구나 싶었다.


로그로뇨에 와 봤고, 스페인어까지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녀의 뒤를 졸졸 따랐다.

Marcelina가 추천해 주는 타파스 바에 가서 또 다른 명물인 patatas fritas, 즉 튀긴 감자 타파스를 먹었다.

튀긴 감자에 바게트를 곁들이는 스페인식 탄수화물 폭탄에 가지각색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기절초풍했다. (물론 맛있다!)


그렇게 도시 여기저기를 탐방하고 친구의 친구를 만나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조개 모양 초콜릿을 보고 ‘순례자로서 이걸 안 사 먹을 수 없지!‘ 하는 Kim의 말에 동의하며 함께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시티투어 끝에 마지막으로 찾은 바!

나는 곧 저녁 약속이 있었기에 바에서 음료를 시키지 않고 잠깐 앉아만 있었는데 Alex가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에 대한 호의로 샹그리아를 사주었다.

헤어질 때 Bernadette은 내 볼에 뽀뽀를 수도 없이 퍼부으셨다. 이렇게나 스윗하고 귀여운 프랑스 할머니라니! 디즈니 영화 같았다.


Alex, Bernadette, 나, Candy

이 날 이후로 Alex, Bernadette, 그리고 Marcelina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렇게나 짧고 강렬한 만남이라니.


오후를 호주, 미국, 프랑스 친구들과 보내고 저녁은 JH, SY님과 함께 했다.

빠에야 같은 유명한 스페인 음식을 먹을까 하다가 대도시의 또 다른 특권인 아시안 음식을 먹기로 했다.

라멘을 먹고 밥까지 말아먹으니 든든한 게 국밥을 먹은 기분이었다.


후식으론 스페인의 요아정, llao llao(야오야오)에서 요거트 아이스크림까지 사 먹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후 플라스틱 스푼은 버리지 않고 챙기는 치밀함까지 갖춘 한국인들이었다.


다 같이 깔깔거리며 식사를 하고 꽤나 멀리 떨어져 있던 아시안 마켓까지 들렀다.

비상식량 라면도 가방의 여백과 다음 대도시까지의 거리를 잘 고려하여 구입해두어야 한다.


알베르게로 돌아와선 2차로 치즈케이크를 먹었다.

Melt라는 스페인 치즈케이크 체인인데 까미노 루트엔 로그로뇨와 부르고스에 있다.

참고로 정말 맛있는 치즈케이크이고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까미노를 걷는 한국인이라면, 먹을 것을 중요시하는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꼭 드시기를 권한다.


다음날 다시 까미노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비교적 짧은 거리를 걷기 때문에 마음의 부담이 덜했다.

계속해서 먹고 일기를 쓰며 밤늦게까지 시간을 함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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