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나 - 푸엔테 라 레이나
연박을 결정하고 도착한 팜플로나.
하루의 여유 시간 동안 늦잠을 자고 맛있는 것을 사 먹고 시내를 구경하며 연박을 온전히 즐겼다.
몰랐는데 팜플로나는 좁은 골목에 소를 풀어놓고 사람과 함께 달리게 하는 '산 페르민 축제'가 열리는 곳이었다. 도시 곳곳의 상점에서 디데이 시계를 놓고 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축제 때 방문은 아니었지만 그 얘길 듣고 보니 어릴 때 봤던 다큐멘터리 속 장면들이 이 도시 곳곳의 골목들에서 생각나서 신기했다.
전날 팜플로나로 오던 길에 첫날의 인연 Kim 아주머니를 바에서 만났고, 팜플로나에서 함께 시티 구경을 하게 됐다.
함께 까미노 기념품샵, 로컬 베이커리 맛집,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던 카페 이루냐, 팜플로나 성당 등을 돌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시작한 까미노 일정.
혼자 열심히 걷고 있는데 뒤에서 'Han!' 하는 소리에 돌아봤더니 Kim과 전전날 동행했던 미국인 부부, Harry와 Teresa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까미노 위의 세계관 대통합이란 말인가..!
이 세 명의 까미노 인연들과 한참을 영어로 대화하며 걷다 보니 영어를 할 줄 알아서 경험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대 초반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기 때문에, 그때 얼마나 세상이 큰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지금도 자꾸 새로운 걸 경험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첫날 Kim이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일 때문에 아들을 잘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했었는데 그날도 나는 우리 엄마가 일을 했기 때문에 내가 더 어릴 때부터 훨씬 더 큰 세상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고 했었다.
영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조금 잘할 수는 있어도 자꾸 더 큰 세상을 경험하려는 마음은 엄마 아빠가 보내준 영국 어학연수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영어보다 그 점이 훨씬 더 소중하고 감사했다.
이 날은 Harry & Teresa 부부와 함께 긴 여정을 함께 했다.
나는 원래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사소한 것들, 예를 들면 가장 좋아하는 영화나 크리스마스 캐롤은 무엇인지, 가장 가보고 싶은 여행지는 어딘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등을 묻길 좋아한다.
이들에게도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 종류가 무엇이냐, 그렇다면 어떤 소스랑 같이 요리하는 걸 좋아하냐 등을 묻다가 부모님 뻘인 그들에게 너 정말 귀엽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첫날부터 빠짐없이 계속 만나는 게 인연이라 먼저 사진 찍는 걸 제안했는데, 너무 슬픈 점은 이 날 이후로 이 부부를 다신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까미노에서 한국인을 만날 때마다 Han을 아냐며 내 안부를 물었고, 후에 다른 한국인들을 통해 내 안부를 묻고 다니는 이 부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큰 도시에만 도착하면 이들을 우연히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고 다녔는데 결국 인연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아무리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곳이라지만 어떤 헤어짐은 다른 헤어짐보다 더 슬프다.
걷던 중 나온 San Andres 교회.
순례자를 위한 묵상이 전 세계 다양한 언어로 준비되어 있었고 그중 한국어도 있었다.
특히 마지막 묵상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5. 나는 이제, 배낭의 적은 무게로 이 길을 걷는 것이 낫다는 것과 인생의 순례도 이와 같음을 이해합니다. 그리하여 이 길에서, 혹은 이 길의 끝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다른 이들에게 관대한 기부를 하겠으며, 이로써 내 삶의 진정한 보물은 주님이심을 증명하겠습니다. 성모 마리아, 사도 산티아고, 이 길에 함께 하소서.
언덕이 꽤나 많네 싶었는데 까미노 위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인 '용서의 언덕'이 이 날 여정에 있었다.
길 위에서 자주 뵀던 한국인 HN님과 이곳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통성명을 하고 함께 길을 걸었다.
언덕 이후 지옥 같은 내리막 자갈길이 펼쳐졌는데 동행이 있어서 해낼 수 있었다.
그녀가 첫 날 만난 노르웨이 사람이 순례길에서 얻는 세 가지 선물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고 했다.
맨 처음이 고통. 까미노는 매일이 고통이다. 지겨운 길을 걸을 때, 불편한 숙소에서 지낼 때의 정신적인 고통과 오래 걷는 것에서 기인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육체적인 고통. 언제부터인지 까미노에선 오금이 너무 아파 단 한 번도 쪼그려 앉지 못했다.
두 번째는 내려놓음(소박함). 이곳에 온 모두가 무겁게 가져온 짐을 후회한다. 까미노는 더 얻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라 버리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말이 걷고 4일 만에 뼈저리게 이해됐다.
세 번째는 경청.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 말도 많이 하지만 남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훨씬 더 많다. 나와 다른 배경에서 온 사람들에게 집중하며 이곳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good listener가 되어간다.
발가락 통증으로 고통받으며 내려온 자갈길 끝에는 천국이 펼쳐져 있었다.
끝없이 펼쳐져 있던 유채꽃! 노란 바다 같다던 말이 잊히지가 않는다.
팜플로나로 가던 길에도 유채꽃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팜플로나에서 연박을 하고 나니 완전히 만개해서 황금빛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또 계속해서 길을 걷다가 메인 도로에서 벗어난 언덕에 올라가 있는 한국인 커플을 만났다.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는데 여기 올라오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는 그들의 말에 올라서 또 이런 황금빛 바다 풍경을 마주했다. 봐도 봐도 경이로운 자연의 풍경.
지나쳐온 동네엔 낡은 등산화로 꾸며놓은 화분이 있었다.
실제로 까미노를 완주한 운동화를 가지고 돌아가 기념 화분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인간의 이런 모습들이 귀엽다.
감격했던 유채꽃물결 뒤로도 초원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폭격을 당한 날이었다.
나는 여행을 가거나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가짜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나조차도 몰랐던 말습관인데 그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중 하나이다. 어떻게 이런 아름다움이 실존하는 풍경일 수가 있어?
이 날은 걷는 내내 "가짜 같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HN님과 둘이 걷다 한국에서 온 대학생 셋을 만났다. 미리 말하자면, 셋 중 두 명은 나의 하반기 까미노의 가장 소중한 인연들.
나는 대학생 때 어학연수를 다녀온 이후 세상을 보는 시야가 훨씬 넓어졌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들의 까미노는 이들에게 얼마나 더 큰 세상을 열어줄지 부러웠다.
목적지를 앞두고 눈앞엔 뭉게구름의 정의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오늘의 목적지, Puente la Reina 푸엔테 라 레이나.
주방이 있는 알베르게여서 슈퍼에서 장을 봐 팜플로나에서 산 신라면과 함께 먹었다.
6구짜리 계란을 사서 3개는 라면에 넣어 먹고, 3개는 다음날 아침을 위해 미리 삶는 내 모습을 보며 '이 정도면 까미노 전문가 다 된 거 아냐?' 하는 자화자찬을 했다.
숙소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맑던 하늘에 미친 듯이 장대비가 퍼부었다.
비가 그친 후에야 '엄청난 크기의 뭉게구름이 다 비구름이었구나'라고 깨달았다.
이 날 묵었던 알베르게는 8인실, 2인실로 이루어진 곳이었는데 8인실 전체 손님이 나뿐이었다.
이틀 연박 때 홀로 숙소를 쓴 데에 이어 바로 이런 호사라니!
침대에 누워 그리운 아일랜드 한인교회 친구들과 전화를 하며 아름다운 것을 하도 많이 봐 과부하된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