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엔테 라 레이나 - 에스텔라
해가 뜰 때쯤 전날 미리 삶아 둔 계란을 먹으며 홀로 까미노 여정을 시작했다.
출발지였던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여왕의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다. 이 여왕의 다리를 떠나는 날 아침에 건넜다.
4월의 스페인은 일출시간과 일몰시간 둘 다 매우 늦다.
노을을 좋아하는 게으름뱅이로서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천천히 준비하고 나와 걷다 보면 8시쯤 이렇게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해는 보통 걷는 방향의 반대쪽에서 뜨는데, 뒤편에 이런 풍경이 있다면 자꾸만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이 날은 오전 긴 시간 동안 홀로 걸었다. 머리를 비우고 오랜 시간 혼자 걸으며 노래를 들으면 원래 알고 있던 가사들도 더 깊숙이 머릿속에 박힌다.
이 날 기억에 남는 노래는 잔나비의 '여름가을겨울 봄.'
단념, 그 일은 어려운 일도 아녜요
나는 아주 잘해서
이토록 무던한 내가
좋아질 때도 있어요
별생각 없이 듣던 노래의 가사가 별안간 가슴을 후벼 판다.
세상의 때가 벗겨져 이렇게 쉽게 감성적이게 되는 여행의 순간을 사랑한다.
걷다가 쉬어간 동네에 바엔 세계지도가 붙어있었다.
순례자들이 고향에 핀을 꽂아 놓았는데 한국엔 이미 역시나 많이 꽂혀있어서 더 꽂지 않았다.
순례길엔 한국인이 정말 많다. 대화하는 외국인마다 나에게 '까미노에 한국인이 왜 이렇게 많은지 아느냐'라고 물을 정도이다.
한국인들은 DNA에 뭔가를 해내고자 하는 집념이 새겨져 있는 게 확실하다. 그게 아니라면 지구 반대편 스페인의 순례길까지 이렇게 많이 올 리가 없다.
이 날도 여전히 귀여운 이정표들이 길을 알려준다. 까미노의 화살표가 노란색인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스페인의 시골 마을과 이렇게나 잘 어우러지는 색감이라니!
나는 타고난 길치인데 까미노에선 길을 잃기가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날은 혼자 정신 놓고 노래를 듣다 길을 한번 잘못 들었다.
까미노 밖이라면 길을 잃어 약속에 늦거나 짜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까미노에서는 하루 여정이 25km나 되기 때문에 길을 조금 잘못 든 건 기분이나 전체 시간에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다.
Feliz Viaje Peregrinos, '좋은 여행 되세요, 순례자들!'이라고 적힌 하드보드지를 보고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순한 응원용 팻말이 아니라 음식을 꾸려놓은 도나티보였다. 비스킷과 땅콩과 기름에 구운 빵까지!
배가 고픈 줄 모르다가도 이렇게 차려놓은 음식을 보면 갑자기 미친 듯이 허기가 몰려온다.
나는 도나티보가 나올 때마다 감사히 먹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적게나마 돈을 내고 왔다.
근처에 사는 분이 꾸려놓은 곳이었는데 내가 쉬던 중 그분이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마실 물을 채워놓고 가셨다.
나눔이 일상이 되면 저런 마음가짐으로 살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저런 마음가짐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동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건가?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을 난 그 어디보다 까미노에서 실감했다.
서로 존재만 알고 인사만 나누던 까미노 위의 커플, JH & SY.
이 날 처음 통성명을 했다. 이날 이후 오랜 시간을 함께하게 된 나의 까미노 전우들.
통성명을 하자마자 그들이 만들어 나온 베이글 샌드위치로 함께 점심을 해결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더 일찍 일어나 간단한 도시락을 챙겨 다니는 부지런도 오직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좋은 측면의 stereotype에 해당되지 않는 게으른 코리안이다.
사실 첫날과 둘째 날 만난 아주머니에게 너무 데이다 보니 한국인에게 먼저 다가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모두 내 편협한 시각이고 까미노 위엔 좋은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다른 여행과 순례길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같은 길 위에 있다는 것 만으로 유대감이 생긴다는 점이다.
나와 내 주변의 모두가 이 고생길을 위해 시간과 돈을 지불했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더 깊게 공감하게 되고 마음의 벽도 더 쉽게 허물어버린다.
JH님의 말에 의하면, 까미노에서 만난 사람들끼린 전우애가 생긴다.
커플들과 한참을 걷다가 헤어지고, 후엔 길 가던 나에게 땅콩을 건네주신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했다.
이들은 까미노 위의 유명인사였다. 할머니와 함께 온 중학생 손자 조합이라니! 어딜 가나 이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할머님은 여행 내공이 엄청나신 분이셨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아일랜드 생활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셨다.
나는 영어를 전공하고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한 이야기, 아일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한 이야기를 들려드렸고 할머니는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하신 경험들을 말씀해 주셨다.
원래는 까미노 완주가 목표셨는데 갑자기 손자와 함께 걷게 되어 중학생의 체험학습 일자 때문에 강제로 일정이 줄어들어 아쉽다고 하셨다.
하지만 지난해엔 친구분들과 남미로 자유여행까지 다녀오셨다는 말을 듣고, 언제든 다시 오실 수 있는 분이라고 확신했다.
할머님은 손자 SH에게 누나처럼 대학생 때 해외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라는 말씀도 여러 번 하셨다.
나는 나대로 SH에게 중학생 때 까미노라니,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에 한번 할까 말까 한 경험을 할머니 덕에 어린 나이에 할 수 있어서 정말 부럽다고 여러 번 말했다.
여기서 형누나들, 더 나이 많은 아저씨 아주머니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세계 이곳저곳에서 온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함께 매일같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이 길을 걷는 일. 이 많은 걸 10대에 경험한다는 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셋이 나란히 걷는 이 사진은 전날 만났던 대학생 EJ님이 찍어준걸 나중에 전달받았다.
서로의 소중한 순간을 남겨주기 위해 묻지도 않고 기꺼이 사진을 찍어주는 것. 내가 사랑하는 한국인의 정.
2시 반이 되기 전 목적지 Estella, 에스텔라 혹은 에스테야 혹은 에스떼야에 도착했다.
늦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동네엔 이미 샤워까지 깨끗하게 마치고 돌아다니시는 한국분들이 많았다.
역시 나는 한국인의 stereotypical 한 부지런함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우연히 할머님과 SH와 같은 숙소에 묵어 식사도 함께 했다.
점심 겸 저녁으로 라자냐를 먹었는데, 낮잠을 자고 일어나 요거트를 먹으려고 주방을 갔더니 할머님께서 만든 카레를 먹어보라고 하셨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조금만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이렇게나 한가득 주셨다. 물론 너무 맛있어서 죄다 맛있게 먹어 치웠다.
순례길 위 도나티보부터 베이글 샌드위치, 카레까지 먹을 복이 끊이지 않았던 날.
나눔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든든하게 배불렀다.
공용공간에서 일기를 쓰다 미국에서 오신 Candy를 만났다.
손으로 쓰는 일기는 확실히 특별한 힘이 있다. 일기 쓰는 사람들끼리는 무언가 통하는 게 있다.
Candy는 얼마 전 은퇴를 하고 기념으로 오랫동안 생각만 해 오던 까미노를 걸으시는 분이었다.
이 분은 영국에서 태어나 남편을 따라 미국에 정착하신 분이었는데, 태어나신 곳이 포츠머스(Portsmouth)라는 지역이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내가 영국 본머스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당시 동기들이 교환학생을 갔던 곳.
그 이야기를 하며 포츠머스 대학교에 가본 적도 있다 말씀을 드렸더니 당연스럽게 너무 반가워해주셨다.
세계 이곳저곳을 다닐수록 더 다양한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할 일이 많아진다.
그래서 여행을 하면 보고 경험하는 것 이상으로 식견이 넓어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