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리 - 팜플로나
춥고 길었던 밤이 지난 후 맞은 셋째 날 아침.
첫날 미친 등산의 여파가 전날 밤부터 찾아왔고, 이 날 아침엔 알베르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갓 태어난 기린처럼 걸어 다녔다.
좁은 복도에서 준비하며 서로 길을 비켜주는데 다들 그 걸음 걷기조차 힘들어서 느린 게 웃겼다.
까미노 일정엔 4개의 대도시가 있는데, 팜플로나는 그중 가장 먼저 나오는 대도시이다.
(팜플로나, 로그로뇨, 부르고스, 레온)
시작한 지 3일 만에 대도시가 나오는 게 조금 밸런스 붕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날 아침의 근육통을 겪자마자 대도시가 있는 게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육통은 내리막에서 특히 심해지는데 이런 계단이 나오면 전 세계 사람들이 사이좋게 후들후들거렸다.
걷다 보면 아이까지 온 가족이 함께 까미노를 걷는 풍경을 종종 마주친다.
한국인들은 긴 휴가를 내기 힘들고 스페인까지의 거리도 멀기 때문에 순례길이 버킷리스트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가까운 곳에 살기 때문인지 휴가를 짧게 쓰고 조금씩 걷기도 한다.
"비행기값과 휴가 뽕을 뽑아야 해!" 하는 마음 없이 까미노를 걸을 수 있는 여유가 부러웠다.
어딜 가나 부지런한 한국인들은 보통 동이 트기 전에 이동을 한다.
이 날 늦게 출발한 나는 여정 내내 여유로운 미국인들과 함께 걸었다.
처음 함께한 이들은 Harry & Teresa. 아들 셋이 모두 20대 중반을 넘기고 자리를 잡자 오랜 버킷리스트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까미노를 찾은 뉴요커 부부였다.
첫날 피레네 산맥 오를 때 만나서 통성명만 하고 헤어졌었는데 이 날은 꽤나 긴 시간을 대화하며 걸었다.
Kim 얘기를 하며 '내가 그저께 만난 분은 혼자 걷고 싶어서 같이 가자는 남편을 뿌리치고 왔다고 하더라'라고 하니 Teresa가 그분 정말 멋있네! 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 '우리 아직 750km나 남았어. 혼자 가고 싶으면 아직 기회가 많아.'라고 받아친 Harry. 유쾌해서 함께 걷는 시간이 즐거웠던 부부.
쉬러 들어간 바에선 전날 영어-스페인어 통역을 도왔던 Jasmine을 만났다.
수비리에서 너무 정신없이 만났던 터라 통성명도 못했는데 여기에서야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됐다.
둘 다 까미노 걷기 직전 카페에서 일하다 왔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즐겁게 얘기했다. 각자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앞에 두고 고민을 위해 걷고 있다는 점도 동일했다.
까미노에선 하루에 사계절을 모두 겪을 수 있단 말이 있을 정도로 일교차가 크다. 새벽의 추운 날씨가 거짓말 같을 정도로 낮엔 해가 쨍쨍하다.
3일간 걷는 내내 해가 왼쪽에 떠 있었다. 그래서 왼쪽 팔만 빠삭하게 익었다. 팔이 익는 게 실시간으로 보인다니 걸을 땐 마냥 웃겼는데 숙소에 도착해서 씻으니 너무 아팠다. 웃긴데 안 웃겨...
이땐 걸은 지 너무 얼마 되지 않아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요령도 없었다.
이 날 이후부터 순례길 마지막 날까지는 내내 얇은 긴팔 셔츠만 입었다.
걷다 보니 근육통도 점점 나아지고 날도 더워져서 팜플로나 2박을 예약한 게 조금씩 후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결정들은 각 순간에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를 마음에 새기며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추위에 고통받던 나를 떠올리며...
이 날의 마지막 동행은 Justin & Jessica. 미국 시카고에서 온 젊은 부부였다.
신혼여행인가 싶었는데 결혼 13년 차라고 해서 정말 놀라버렸다.
Justin은 프로그래머, Jessica는 웹 디자이너로 함께 캠핑카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일과 여행을 병행한다고 했다. 이렇게 꿈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순례길 위에선 종종 만나게 된다.
둘 다 말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걷던 길에 있던 조개장식으로 가득한 고택을 보고 셋이 함께 아름다움에 감탄을 했는데, Jessica가 '미국은 생긴 지 5분밖에 안 된 나라라 이런 거 없어'라고 하더라.
팜플로나 외곽 지역부터 팜플로나 시티 중앙에 입성할 때까지 함께 걸었는데 정말 즐거웠다.
한 번쯤 다시 만나길 바랐는데 아쉽게도 이 날 이후로 까미노에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큰 가방에 조개를 달고 걷는 이방인들을 보고 다가오신 현지인 할아버지.
처음엔 영어로 대화하는 우리에게 영어로 된 쪽지를 주셨다.
이때부터 이미 감동이었는데, 나에게 '곤니찌와' 하시길래 'I'm from Korea' 했더니 복대를 뒤져 한국어 쪽지를 꺼내시는 게 아닌가!
그분은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까미노 글귀를 인쇄해서 다니는 분이었다.
이렇게 꿈같은 순간이라니. 셋다 감격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그 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Muchas gracias(무차스 그라시아스, 매우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이날엔 이 분뿐 아니라 다른 친절함도 많이 목격했다.
큰 도시와 가깝다 보니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따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헤매는 순례자들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순례길 위의 이정표는 화살표나 조개껍데기뿐이 아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친절함까지 이정표가 된다.
순례길 거점에 살면 매일같이 길 잃은 사람들을 만날 텐데 친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그곳에서 웃는 얼굴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팜플로나 입성! 큰 도시에 갈 때마다 한국인들은 한국 라면을 산다.
몸이 고될 때 한국인이라면 응당 국물 생각이 나고, 그 욕구를 가장 저렴하고 간편하게 채울 수 있는 게 라면이다.
너무 많이 사면 짐이 될 수 있으니 다음 도시와의 거리를 지혜롭게 계산해 구입해야 한다.
내가 2박을 예약한 숙소는 시티 중앙에서 벗어난 곳에 있었다. 가방을 메고 그 숙소까지 찾아가는 길이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헐레벌떡 달려오시더니 스페인어로 말씀하셨다.
스페인어는 단어 몇 개만 아는 수준이지만 '여기 순례길 아니야. 순례길은 저 쪽으로 가야 해!'라고 말씀하신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영어를 아예 이해 못 하시는 할아버지 눈에 근심 걱정이 가득하셔서, 듀오링고 2년 반을 했음에도 여전히 형편없는 스페인어를 더듬더듬 구사했다.
"Voy a acomodacion, no camino ahora, camino mañana."
한국어로 번역하면, "간다 숙소, 까미노 아니다 지금, 까미노 내일."
하지만 원어민이 알아듣기엔 손색없는 실력이다. 이 말을 들으시자 그제야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다시 가던 길을 가셨다. 내가 길 잃은 순례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시던 그 얼굴이 생생하다.
별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며 듀오링고를 붙잡고 있었던 지난 2년 반의 세월이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따뜻한 이곳 사람들과 짧게라도 의사 표현을 하고 감사인사를 할 수 있어서.
이렇게 길 위 가지각색의 친절이 조개를 단 순례자들에게 자석처럼 달라붙는다.
체크인을 하고 바로 옆에 있던 코인세탁소에 가서 냄새나는 옷을 세탁기에 빨고, 건조기까지 돌렸다.
대형 건조기에서 나는 뽀송한 냄새. 이 행복감은 까미노를 가본 사람만 알 것이다.
있는 대로 땀을 흘리고 손빨래로 연명하는 순례자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사치가 아닐까 싶다.
순례길을 걸으면 신기하게 단백질이 무지 당긴다. 그래서 대도시에 오자마자 KFC를 사 먹었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내일은 아침에 늦잠을 자도 된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혼자만의 방에서 깨끗한 이불을 덮고 행복하게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