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세스바예스 - 수비리
준비 기간도 없어 침낭도 안 가져온 나는 가지고 있던 모든 옷을 껴입고 오들오들 떨다 잠들었다.
미리 말하지만 까미노에 침낭도 안 가져온 얘길 들으면 사람들이 다들 기겁한다.
한여름도 아니고 4월 초에 시작한 사람이 대체 무슨 깡이었는지 모르겠다. 모르는 게 약이다...
하여튼 자판기에서 초콜릿 과자를 사 아침으로 먹으며 7시 20분 둘째 날 일정을 시작했다.
수비리까지의 길은 첫날 등산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편안한 길이었다.
대부분의 고강도 운동이 그렇듯, 근육통은 운동 다음날보다 그다음 날이 더 심하기에 이 날은 정말 신체적으로 아무런 무리 없이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까미노에선 길치도 걱정이 없다.
길을 잃었나? 싶을 때쯤 귀신같이 조개가 보인다. 마치 내 생각을 읽고 안심시키듯이.
오피셜 까미노 비석은 물론, 펜스에 조개껍데기, 동네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표지판까지 가지 각색의 조개 무늬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순례자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순례길 최고의 음식 Tortilla.
보통 생각하는 또띠아는 얇은 멕시코 전통 음식인데 까미노에서의 또띠아(또르띠야, 토르티야, 또르띠아, or whatever)는 스페인식 오믈렛을 뜻한다.
감자를 가득 넣은 계란 부침으로 바게트 한 조각과 나오는데 대부분의 식당에서 매우 저렴하게 판매한다.
나의 기념비적인 까미노 첫 또띠아는 2유로.
계란에 빵까지 주는데 2유로라니, 유럽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나라 중 한 곳인 아일랜드에서 살다 온 나에겐 좋은 의미로 기절초풍할 가격이었다.
무(無) 맛의 바게트까지 너무 맛있어서 곧장 2번째 또띠아까지 추가로 해치웠다.
산길이 조금 있긴 했지만 이마저도 매우 평이한 난이도.
이틀차만에 "까미노 껌이네!" 하는 망언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 또한 좋은 날씨 덕분이어라. 비가 와서 미끄러울 것만 생각하면 아찔해졌다.
까미노 위에서의 좋은 날씨는 정말 축복이야!
목적지인 수비리를 코앞에 두고는 오른쪽 사진과 같은 특이한 지형이 나오는데, 스테고사우르스 등딱지를 걷는 것 같다던 한 미국인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한껏 여유를 부리며 걸었는데도 2시 반쯤 수비리에 도착했다.
전경부터 '수비리'라는 이름조차 강원도 시골마을 같았던 곳.
반짝반짝한 개울이 반겨주어 행복이 배가됐다.
수비리에서 묵은 자그마한 공립 알베르게.
까미노에 무조건 챙겨가야 할 준비물 중 하나는 숙소용 슬리퍼이다.
모든 알베르게가 실내에서의 등산화 착용을 금지한다. 그래서 어느 숙소에 가나 전 세계인의 발냄새를 담은 등산화들이 한 곳에 바글바글하다. 등산화는 벗는 그 순간부터 꼴도 보기 싫어지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날 이른 오후부터 사건 발생.
전날 론세스바예스에서 일을 해결해 드렸던 분과 또 같은 숙소에 묵게 되었다.
까미노엔 짐을 미리 다음 숙소로 보내는 동키서비스가 있는데, 그분이 그렇게 맡긴 가방이 실종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가방의 행방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분이 영어가 가능한 나에게 문제 해결을 요청하셨다.
전날 문제를 해결해 드린 이후로 내가 문제 해결의 마법사처럼 보였나 보다. 어쩌다가?
그런데 문제는 알베르게를 관리하시는 할머니께서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하신다는 점.
전 세계인이 다 모이는 까미노지만 여전히 영어를 아예 못하시는 알베르게 주인장들이 꽤나 많으시다.
하여튼 다행히도 그 숙소에 스페인어를 잘하는 미국인이 있었고, 그래서
1. 내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한다.
2. 미국인이 영어를 스페인어로 번역한다.
3. 할머니가 대답을 한다.
4. 미국인이 스페인어를 영어로 번역한다.
5. 내가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한다.
의 매우 비효율적인 루트로 사건 해결을 진행했다. AI 번역도 잘 되는 와중에 왜 이랬냐고 물으신다면 별별 업체에 전화까지 하고 난리부르스를 췄기 때문이어라.
물론 처음엔 나도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 휴식시간과 자유시간까지 다 써가면서 몇 시간째 이 일을 하다 보니 매우 지쳤다. 그분의 부탁에 함께 수비리에 있는 모든 숙소에 걸어 다니며 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짐을 뒤지고 다니며 가방을 찾았다. 하는 내내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비리에서 가방을 찾을 수 없자 그분은 나에게 같이 론세스바예스로 돌아가자는 제안을 했고 (???) 여기서 나는 더 이상 사회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제가 왜요?"라고 대답해버리고 만다.
제가 왜요? 그쪽이 저랑 무슨 사이신데요?
다시 글을 쓰면서 또 지친다.
결론적으로 온 수비리를 다 뒤지고 다니고 돌아온 원래 숙소에서 뒤늦게 도착한 그분의 가방을 발견했다.
일이 잘 해결돼서 다행이지만 난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과한 요구를 당연하게 하는 모습에 너무나 질려버렸다. 고작 이틀차에!
3시간 넘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분이 미안하고 고맙다며 비싼 저녁 식사를 사주시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날은 일요일이었고, 일요일의 스페인, 특히 수비리같이 작은 마을은 6시 이후로 영업을 하는 식당을 찾기 힘들다.
결국 유일하게 문을 연 작은 바에서 또다시 또띠아를 주문했다.
이렇게 또띠아 복이 터질 줄 알았다면 낮에 또띠아를 하나만 사 먹는 거였는데...
그래서 이 날은 하루 종일 또띠아만 4개를 먹었다.
원래 계획은 낮에 일기를 쓰고 저녁엔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일찍 잠에 드는 것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남의 가방 이슈로 해가 다 지고서야 일기를 썼다. (첫날의 Zito를 여기 공용 공간에서 또 만났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다 지친 상태로 일기를 쓰는데, 너무 소중한 나의 더블린 한인교회 친구들이 사진을 보내왔다. 그 사진을 보니까 힘들고 지친 마음이 더 무너졌다.
이틀차에 왜 이렇게까지 멘탈이 갈기갈기 찢긴 건지 나조차도 의문이었다.
이 상태로는 오래 못 가겠다 싶어서 다음 목적지인 팜플로나에서 연박을 예약했다.
그것도 이불이 있는 깨끗한 1인실로! 이 또한 도시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겠거니...
까미노 3일 차만에 이틀을 쉬어가는 게 맞나 싶다가, 첫날 신체적 고생 + 둘째 날 정신적 고생을 생각하며 그냥 결제해 버렸다.
전날보다 고도가 낮아졌으니 덜 춥지 않을까 하던 바람과 달리 수비리의 밤은 끔찍스럽게 추웠다.
침낭 없인 버틸 수 없을 지경이라 불쌍하게도 더러운 바람막이를 덮고 잤다.
이날 밤부터 첫날의 근육통도 세게 찾아왔다.
새벽 내내 깰 때마다 추위와 근육통에 시달리며 '팜플로나에서 연박하길 잘했다' 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너무 추워 아침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사서 고생'의 정의와 같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