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이토록 갑작스러운 까미노

더블린 - 생장피에드포르

by 정한결

산티아고 순례길, 혹은 Camino de Santiago

수많은 여행자의 로망

깨달음을 얻고 왔다는 간증이 쏟아지는 곳


여행깨나 다니고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내 버킷리스트에도 있던 그 길을

생각보다 빠르게 다녀왔다.


참 웃긴 게 버킷리스트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인생의 목표도 뜬금없는 순간에 찾아온다.

나의 경우, 쉽게 말하자면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져서.

더 자세히 말하자면 5월 말에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가고 싶어서. (???)


나는 2025년 4월 3일에 만료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아일랜드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지인이 5월 말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제안했다.

이탈리아 남부, 포지타노. 지상낙원이라고 불리는 그곳도 역시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 (죽기 전에 해야 할 리스트가 버킷리스트인데 욕심도 참 많음)

포지타노를 잘 아는 사람이 제안을 해 오자 막연한 꿈이었던 포지타노도 마음속에 성큼 다가와버렸고 결국 동의해 버렸다.


5월 말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확정 짓자 이제 비자 만료 후 어디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몇 가지 후보가 있었는데,

1. 아일랜드 - 나는 비자 만료 후 불법체류를 할 깡은 없다.

2. 영국 - 나의 첫사랑 같은 곳이지만 물가를 생각하면 입맛이 뚝 떨어진다.

3. 동유럽 - 물가도 싸고 가본 적도 없지만 거진 두 달 동안 뭘 하나?


그래서 이 남는 시간에 순례길이나 걸어? 가 된 것이다.

그렇게 갑자기 버킷리스트 여행지 두 곳이 성큼 다가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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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코스는 여러 가지 순례길 중 가장 유명한 프랑스길.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시작해 국경을 넘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가는 800km 여의 길이다.


한국에서 오는 순례자들은 대부분 파리 혹은 바르셀로나로 입국해 긴 시간 기차를 타고 생장까지 가는데, 더블린에서 출발한 나는 생장과 가장 가까운 공항인 비아리츠(Biarritz)까지 직항을 타고 가는 호사를 누렸다.

유럽 저가 항공 중 가장 악명 높은 라이언에어를 난 진심으로 사랑한다. 심지어 아일랜드 항공사라 더블린에서 운항하는 노선이 정말 많았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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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리츠에서 기차 타고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생장피에드포르.

순례길 시작 직전 아일랜드에서 프리랜서 작업을 하며 생활 리듬이 모두 깨져버려서, 바로 걷기 시작하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걷기도 전에 파격적으로 이틀을 지내며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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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잠을 자며 동네 곳곳 탐방도 했다.

유럽과 아메리카 나라들 사이에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태극기...

이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순례길을 찾는지 알 수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보다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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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메밀로 만든 프랑스 식사 크레페를 먹으며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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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아름답던 첫 숙소에서 충분히 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 나의 로망, 이제 정말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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