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bring the morning light

생장피에드포르 - 론세스바예스

by 정한결

출발 전날 내 방엔 나와 대만에서 온 여자분 둘 뿐이었다.

조용하게 자겠다는 기대와 달리 그분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엄청난 코골이의 소유자셨고 추위와 코골이에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전날 까미노에서 먹겠다고 요거트와 과자를 샀는데, 가방에 공간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배에 넣었다.


그리고 7시 20분, 동이 채 트기 전 시작된 나의 첫 까미노 여정.

첫날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스페인 론세스바예스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이 길이 순례길 전체 여정을 통틀어 가장 힘든 길이다.

돌이켜보면 이 첫날의 일정이 까미노를 완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거르는 척도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길들과 비교도 안 되게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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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과 빨간색이 나란히 있는 폴란드 국기 같은 표시를 따라 걷다 보면 동네에서 벗어나 산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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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로 접어들었을 때 까미노에서 첫 동이 트는 모습을 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 가지, 여행 기록 그리고 노을.

까미노에서는 일몰보다 일출을 볼 기회가 더 많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자연의 풍경이지만 늘 코가 찡하게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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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에 있는 집들과 동물들까지

까미노가 감동적일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첫날부터 이런 풍경이라니.

언제라도 눈물이 터져버릴 수 있는 상태로 그렇게 걷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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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히 떠오르는 모습을 봤다.

근데 이 풍경을 보면서 듣던 노래가 하필 Magnifi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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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신앙이 깊지 않은 기독교인이다. 그런데 CCM은 매우 좋아한다.

CCM이 장르에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좋기 때문에 듣는다. 늘 하는 말이지만 이게 팝송이었다면 빌보드를 휩쓸었겠다 싶을 때도 있다.


하여튼 이 노래에 'You who bring the morning light', '아침을 밝히시는 분'이라는 가사가 나올 때 정말 해가 뜨고 아침이 밝아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저항 없이 눈물을 쏟아버렸다. 그 풍경이, 능선을 넘어 매일같이 떠오르는 아침 해가 장대하고 아름다워서.

이때 마음가짐이라면 이 노래가 아닌 다른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노래를 들었어도 똑같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평소 여행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칠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어서, 까미노에서는 언제쯤 눈물을 흘릴까 궁금했는데 걷기 시작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그 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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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걷다가 순례길 위에서의 첫 도나티보 (donativo)를 발견했다.

도나티보란 순례자를 위해 기부제로 운영되는 간식 바, 숙소 등을 의미한다.

재정이 넉넉한 순례자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보다 더 많은 돈을 내고 가고, 재정이 부족한 순례자라면 돈을 내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만 담아 먹고 가도 된다.

마을 사람들이 순례자들을 위해 만든 도나티보가, 다른 순례자들을 향하는 기부가, 그 기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모여 까미노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바깥세상에선 쉽게 찾을 수 없는 모습들이 800km의 까미노 곳곳에 있으니 이 길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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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에 있다.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저 지나치기만 해도 "Buen Camino!" (좋은 까미노 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내가 처음으로 부엔 까미노 아닌 대화를 나눈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온 Vito.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8년을 산 이탈리아인이고 나는 아일랜드에서 까미노로 바로 넘어온 한국인이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날씨는 안 좋은 방향으로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산 위에서 세게 부는 바람에 '에든버러 생각난다.' '나는 더블린이 생각난다.' 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돌을 지니고 다니다가 돌탑이 나오면 그 위에 올려놓고 기도를 하라는 그의 말에 뒤늦게 돌멩이 조각을 챙겼다.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아무 돌멩이나 챙겼지만 여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많다.

고향에서 돌을 가져오는 사람, 예쁜 조개껍데기를 일부러 가져오는 사람, 사랑하는 이들의 사진과 흔적을 가져오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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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도 몇 시간을 계속 보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끝없는 오르막을 걷다 보면 감사는 어느새 뒷전이 되고 힘들다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Good morning이라는 인사에 Is it?이라고 답하는 할아버지와 It WAS라고 받아치는 할머니의 대화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까미노에서 빛을 발하는 건조한 영국 유머.


그렇게 끝없는 걸음에 지쳐가던 중, 호주에서 온 Kim 아주머니를 만났다.

이 분은 앞으로 나의 여정에 계속 등장할, 까미노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 중 하나.

정말 신기한 게 몇 마디 말을 나누다 보면 이 사람과는 오래 같이 걸을지, 혹은 인사만 하고 끝날 지를 곧 알게 된다.

Kim과는 처음부터 놀랍도록 대화가 잘 통했다. 우리 둘 사이엔 32년의 나이차가 있는데도 대화에 막힘이 없었다.

며칠 지나고 보니 Kim은 까미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화의 주제는 어떻게 까미노에 오게 되었나, 어디서 무슨 일을 하나, 무엇을 좋아하나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말이 잘 안 통하는 상대라면 '어떻게 까미노에 오게 되었나'만 묻고 그래 부엔 까미노 해라 하고 자연스럽게 작별을 고한다.

하지만 말이 통하는 상대라면 점점 파고들어 미래에 하고 싶은 일과 깊은 가족 얘기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Kim이 자기의 가장 큰 두려움 두 가지를 말해주었는데 첫 번째가 순례길을 중도포기하는 것, 두 번째가 이 길을 다 걷고도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방금 제 뇌에 들어갔다 나오셨나요?

또 사실 아침에 풍경보고 너무 감동받아 울었다고 했더니 본인은 전날 순례자 여권을 받으며 우셨다는 얘길 하셨다.

여기 온 사람들은 다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결의 감성을 가지고 있나 싶어서 이 얘기를 하며 둘이 눈물 날 정도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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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배가 고파서 진이 빠질 때쯤 간식을 파는 미니 밴이 등장했다. 운 좋게 철수 직전에 가서 마지막 간식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샌드위치같이 식사가 될만한 것들은 이미 다 팔리고 없어서, 삶은 계란과 마들렌을 사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어치웠다.

여기가 15km 시점이고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는 11km 정도. 일상생활에서 11km를 걸어야 한다면 욕이 나오겠지만 여기서는 Thanks god 하게 된다. 까미노에서만 가능한 관점의 변화.


여기서 잠시 쉬다 Kim과의 여정을 다시 시작했는데 아들이 준 조개를 잃어버렸다며 급하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헤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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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 밴 이후엔 진짜 고비가 나타난다.

나도 믿을 수 없었다. 이미 15km를 넘게 걸었는데 지금까지 있던 오르막은 다 뭔데...?

지금까지는 아스팔트 오르막을 올랐다면 이 풍경이 나오는 순간부터는 정말 산길을 걷게 된다.


피레네 산맥은 11월부터 3월까지 출입이 통제된다.

나는 거의 출입이 허가된 직후, 4월 5일에 이곳을 넘었다.

4월에도 눈이 다 녹지 않아 출입이 통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들었다.

까미노에 대해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타이밍 맞춰 온 사람치고 행운이 과하다고 생각됐다.


그렇게 오르막을 또 오르다가 뒤에서 오던 Kim을 다시 만났다.

아들이 준 조개껍데기를 결국 찾지 못한 그녀는 나를 만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일하느라 바빠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한 시간이 적은데, 이 사건이 아들이 자기를 떠나간다는 신호같이 느껴진다며 어떻게 아들이 준 조개를 첫날에 잃어버릴 수 없냐는 자책을 했다.

나 나름대로 열심히 위로를 하고 그분도 만나자마자 이런 무거운 얘기를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나도 인생의 많은 부분에 과한 의미 부여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히도 그리고 다행히도, 그분의 아들에겐 아무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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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산맥엔 화장실이 없다. 이건 까미노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나는 화장실이 없으면 불안감에 화장실이 더 가고 싶어 지는 유리방광 소유자이다.

Kim과 걷던 중 저게 화장실이었으면 했던 건물은 아마 기상악화에 피난용으로 사용하는 셸터인 것 같았다. 셸터라고 하기엔 여기 안이 더 험악한 분위기여서 웃겼다.


하여튼 중요한 점은 첫날에 참지 못하고 피레네에 노상방뇨를 해버렸다는 것이다.

Kim이 망을 봐줬다. 까미노 첫날의 인연이란 이렇게나 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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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12년 견생 까미노 5 회차라는 순례길 베테랑 강아지도 만났다.

이 강아지를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은 모두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지금쯤 강아지가 보고 싶었는데" 하던 어떤 아주머니의 말에 십분 공감했다.


지대가 높다 보니 변덕스러운 날씨는 어쩔 수 없는 곳,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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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을 뚫고 간신히 도착한 정상.

힘든 와중에 날씨까지 이래버리면 정상이고 뭐고 빨리 숙소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

비가 점점 거세져서 걱정을 가득 안고 빠르게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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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론세스바예스! 7시 20분에 출발해 4시 40분에 도착한, 9시간 20분의 대장정이었다.

서둘러 론세스바예스에 위치한 가장 큰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나이 지긋하신 직원 할머니는 유럽 모든 언어를 통달하신 분이었다. 그 나이에도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의 체크인을 도우시는 모습이, 여전히 생기 넘치는 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어느 시점부터는 밥 생각이 간절했다. meal이 아니라 rice가 간절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대로 된 밥을 먹어야겠다 생각했고 스페인이니까 아무 식당에나 가서 빠에야를 먹으면 되겠다! 는 계획을 세웠는데 내가 까미노를 너무 우습게 봤다.


론세스바예스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닌 그저 순례자를 위한 거점일 뿐이었다.

여기엔 알베르게 몇 개와 호텔 하나밖에 없었고, 일반 음식점은 아예 없었다.

와중에 나는 숙소에 늦게 도착해서 숙소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저녁식사도 동나버렸다.

하는 수 없이 호텔에 딸린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안 할 호사지만 이 날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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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아서 리조또가 포함된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첫날부터 밥값에 25유로를 쓰다니 파격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크림과 버섯이 가득 든 리조또, 장조림 같았던 스페인식 돼지고기 스테이크, 후식 브라우니까지 후회 없는 맛이었다.

땀과 비에 젖은 순례자가 호텔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게걸스럽게 저녁식사를 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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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같았던 나의 첫 알베르게.

씻고 일기를 쓰러 공용공간으로 갔더니 아침에 만났던 Vito가 일기를 쓰고 있었다. 까미노에 오는 사람의 성향상 일기 쓰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100명이 넘게 머무는 숙소에 일기 쓰는 사람이 우리 둘밖에 없다는 게 더 신기했다.

그렇게 일기 쓰며 공용공간에 앉아있다가 내가 한국인이란 걸 알아본 어떤 한국인 아주머니를 만나 그분의 더블부킹 문제와 택시비 과금 문제를 해결해 드렸다. 한 줄로 썼지만 두 시간 정도를 그분에게 시달렸다. 아주머니 저 일기 써야 해요...

이것이 어떤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올지 모르고 첫날을 마무리했다. 돌아누울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2층 침대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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