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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 퍼스트 Oct 11. 2016

엄마, 호랑이가 날 잡아가면 어떡해

어른이 되었다고.. <호랑이와 곶감>


공포에 떠는 아이에게 <호랑이와 곶감>,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초록이는 목욕 전 욕조에서 혼자 물장난을 친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그러기로 했는데, 초록이가 자꾸만 나를 부른다. 옆에 있어 달라는 것이다. 너무 무섭다고 했다. 그날 우린 망태 할아버지가 나오는 연극을 보았더랬다. 말 안 듣고 떼쓰는 아이를 잡아가는 망태 할아버지 말이다.



“망태 할아버지 때문이야?”


나의 물음에 초록이는 대답도 못하고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우는 아이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파랗게 질렸다. 그 표정에 나도 놀라서 얼른 아이를 안았다.


“망태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아. 무서워 하지마.”


아무리 토닥여도 아이의 두려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망태 할아버지’ 말만 들어도 울음소리가 커졌다. 

“초록아 비밀 하나 알려줄까? 망태 할아버지는 산타 할아버지 친구야, 두 분이서 아주 친해. 초록이는 산타 할아버지 좋아하지? 산타 할아버지처럼 망태 할아버지도 어린이들을 좋아한대.”


행복을 부르는 익숙한 이름, 겨울마다 선물을 주는 산타 할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초록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근데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어린이에게만 선물을 주잖아, 그러면 나쁜 어린이들은 어떡해? 선물 못 받아서 속상하겠지? 그래서 망태 할아버지가 데리고 가는 거야. 나쁜 어린이가 착한 어린이가 될 수 있게 잘 가르쳐 주시려고. 그럼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망태 할아버지도 산타 할아버지처럼 어린이들을 아주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방법이 좀 다르대. 엄마도 초록이 사랑하지만 잘못하면 좋은 사람 되라고 혼내잖아, 망태 할아버지도 그런 거야”


망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소 길고 장황하게 하고 나서야 초록이의 얼굴이 좀 편안해졌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갖가지 감정들은 삶을 다채롭게 한다고 믿기에, 초록이가 자연스럽게 감정들을 습득하기를 바랐다. 기쁨은 오래 마음에 담고, 슬픔은 금세 날려버릴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에 어떤 감정들이 있는지 느껴야 한다. 특히 아이에게 다가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무조건 차단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전한 부모의 품 안에서 슬픔 분노 상실 외로움에 빠지고 다시 벗어나는 연습을 하다보면 마음 안에 푹신한 쿠션, 홀로 이 세상에 섰을 때 마음이 찢기고 부서지지 않도록 지켜줄 쿠션이 생길 것이라 믿었다. 외동으로 자랄 아이가 자연스럽게 상실감을 연습할 기회가 없을까봐 반려동물을 들이고 초록이에게만 쏟아지던 사랑과 관심을 나누었던 것 또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공포는 제외였다. 나는 경험을 통해 공포는 다른 감정보다 생명력이 질겨서 깊게 뿌리를 내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떤 대상이 극도로 무섭거나 두려운 마음은 삶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공포가 내 아이를 덮치는 일은 막으려고 했다.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내 생각은 틀렸다. 공포가 오지 못하도록 아이 곁을 지켰는데 망태 할아버지 하나 막지 못했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완벽한 벽돌집이 되려고 했는데 비가 내리면 아이는 자꾸만 비에 젖는다. 엄마는 벽돌집이 아니라 우산이었다. 비가 오면 아이가 흠뻑 젖지 않도록 지붕의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아이 어깨에 스며드는 빗물까지 막을 수는 없다.


아이의 집은 결국 아이가 짓는 것이다. 집을 완성하기 전에는 비가 올 때마다 우산을 쓰고 있어야 한다. 겨우 우산 하나라고 해서 걱정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내리던 비가 그치면 볕이 들고 바람이 분다. 젖은 어깨는 볕 아래에서 바람 앞에서 마른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초록이 마음 속을 공포로 가득 채웠던 망태 할아버지는 산타 할아버지 덕분에 되돌아 나갔다. 그러나 곧 호랑이가 나타났다. 역시 나는 이번에도 호랑이 하나 막지 못했다.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은 것인지 초록이는 호랑이가 나타나서 자기를 해칠까봐 잠드는 것도 힘들어했다.


공포로부터 아이를 완전히 막아낼 수 없다면 공포로 젖은 아이의 어깨를 따뜻한 볕과 시원한 바람에 내놓으면 된다. 그 볕과 바람은 그림책에도 있다. 한번 들어오면 점점 커져서 날뛰는 공포를 잘 길들여 내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아이와 함께 찾아보자.




알고 보면 호랑이는 겁쟁이야, <호랑이와 곶감>



목판으로 표현한 호랑이는 제법 위압감을 준다. 선은 굵고 색은 어둡다. 이렇게 생긴 호랑이라면 초록이의 말대로 정말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다. 호랑이는 몹시 배가 고파서 산을 내려가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외딴집으로 다가간다. 원근감을 무시한 초록이 눈에 호랑이는 집보다 훨씬 커 보인다. 그래서 더 무섭다.



호랑이가 와서 잡아간다고 말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기만 하던 어린아이가 곶감을 받아들고 울음을 그친다. 호랑이는 곶감이 자기보다 무서운 존재라 생각하고 겁을 먹는다. 여기서부터 초록이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공포가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초록이가 무서워하던 호랑이가 곶감도 모르고 겁을 내니 우스울 수 밖에 없다.



그때 외딴집에 소도둑이 나타난다. 소도둑은 호랑이를 소라고 착각하고 호랑이 등위로 훌쩍 뛰어 내린다. 호랑이는 호랑이대로 소도둑을 곶감이라고 착각하고 무서워서 달리기 시작한다. 모든 것은 착각에서 비롯된다. 깜깜한 밤이 이런 우스운 착각을 만들어냈다. 초록이가 느끼는 공포의 배경에는 아득한 어둠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어둠도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깜깜한 밤은 꼭 장난꾸러기 같다, 고 말해주니 초록이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중간에 등장하는 토끼도 초록이에게 큰 힘이 된다. 작고 약하지만 토끼는 호랑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게다가 토끼는 곶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 무섭지 않다. 속으로 호랑이를 비웃기까지 한다.


결국 곶감이 무서워서 멀리 달아나버린 호랑이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호랑이가 아니다.



호랑이가 곶감이 무서워서 밤새 달리는 모습은 어쩌면 아이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모르니까 무서운 것이다. 무섭고 두렵다고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거나 도망치지 말고, 자세히 들여 본다면 그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초록이가 무서워하던 호랑이도 가만히 지켜보니 겨우 곶감 하나에 벌벌 떤다. 사실은 순진하고 겁이 많다. 이제 호랑이의 정체를 알았으니 좀 더 가까워질 차례이다.




어서와, 반갑게 맞아줄게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표지부터 사랑스럽다. <호랑이와 곶감>의 선이 굵고 색이 어두운 호랑이가 초록이가 무서워하던 호랑이 이미지에 가깝다면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는 순진하고 겁이 많은, 정체가 이미 밝혀진 호랑이이다. 특히 분홍빛 코는 막 태어난 강아지처럼 귀엽다.



소피네 집에 난데없이 호랑이가 찾아왔다. 배가 아주 고프니 간식을 같이 먹어도 되는지 묻는다. 소피와 엄마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호랑이에게 식탁 의자를 내어준다. 그리고 묻는다. “샌드위치 하나 드실래요?”


호랑이는 샌드위치와 케이크, 과자, 우유, 냉장고에 있던 것, 찬장에 있던 것, 그리고 수돗물까지 몽땅 다 먹고 마신다. 그런 호랑이에게 소피와 엄마는 그만 먹으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느긋하게 호랑이를 기다려 준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저녁으로 먹을 것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문제되지 않는다. 방법은 찾으면 생기는 것이니까. 소피네 가족은 밖으로 나가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한다.




소피는 호랑이가 또 간식을 먹으러 올까봐 커다란 깡통에 든 호랑이 먹이를 산다. 호랑이는 또 왔을까? 아니,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소피네 집에 찾아 온 호랑이는 아이 마음에 찾아 온 공포일지도 모른다. 예상하지 못한 무서움과 두려움이라고 해서 무조건 거부 할 것이 아니라 소피의 엄마처럼 아이가 일단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은 어떨까.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로 공포에서 어서 벗어나길 재촉하는 것 보다 아이가 공포의 대상을 자세히 지켜보고 익숙해질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무섭고 두려운 마음은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처럼 어느새 사라져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그림책은 어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어른이 되었다고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디 그 뿐인가. 걱정과 우울, 슬픔과 외로움도 늘 우리를 서성거린다.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는 그것을 외면하지 말자고 말한다. 감정들이 문을 두드릴 때는 문을 열어 주고 우리 마음 안에 두자. 시간이 지나 감정들이 다시 떠날 때까지 그저 함께 머물기만 하면 된다.



/글·사진: 지혜


 Information

<호랑이와 곶감> 저자: 위기철 / 역자: 김환영 |  출판사: 국민서관 | 발행연도: 2004.07.10 | 가격: 10,000원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저자: 주디스 커 / 역자: 최정선 | 출판사: 보림 | 발행연도: 2000.04.21 | 가격: 8,800원


그림 같은 육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신 개념 육아일기. 이를 통해 ‘엄마의 일’과 ‘아이의 하루’가 함께 빛나는 순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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