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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Mar 17. 2020

자연을 사랑해도 일어나는 나쁜 일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말 중에 '**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가 있다. 저 **에 넣을 수 있는 말은 여러 가지다. 예술, 동물, 산, 바다 등. 그런데 이 말은 틀렸다. 이 말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확실한 예가 있다. 아돌프 히틀러다. 히틀러는 세계 최초로 동물 보호법을 만들 정도의 애견가였고, 철저한 채식주의자였으며, 예술가를 꿈꿨던 아마추어 화가였다. 게다가 히틀러는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고, 나치는 세계 최초로 유기농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참 헷갈린다. 산을 좋아하면 산을 닮고 바다를 좋아하면 바다를 닮는 줄 았았는데 내가 순진했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하던 선조들이 "도(道)가 한 치만큼 자라면, 마(魔)가 한 자만큼 자란다"라고 했나 보다. 자연 속에 있었던 시간만큼 그냥 성숙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만큼의 자만심이 자라기 쉽다. 염치가 없어지는 것도 한순간이다.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계속 돌아보고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


범섬에서 나온 쓰레길들

내가 말야, 엉!

'알만한 사람이 왜 이러시나?'라는 말이 딱인 경우가 있다. 

2019년 태풍 다나스가 지난 후, 한라산 사라오름에는 물이 가득 찼다. 고지대에 생기는 산정호수인 사라오름에 물이 고이면 정말 아름답다. 그래서 그랬나보다. 거기서 00 산악회에서 온 사람들 몇 명이 사라오름에서 수영을 했다. 말리는 사람들에게 '내가 000 산악회다. 신고해라.'라고 오히려 성질을 냈다고 한다. 부끄럽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진다.

트레일 러닝 대회 때마다 산길에 버려진 에너지젤 포장지를 자주 보게 된다. 50km나 100km 대회의 참가자들은 모두  몇 년은 산 길을 달린 사람들일 텐데도 그렇다. 습관일 것이다. 그동안 여기저기를 달리면서 얼마나 쓰레기를 버렸을까.  

프리다이빙을 하러 섬에 들어가면 현무암 사이에 꼼꼼하게 쑤셔 박아 놓은 담배꽁초를 자주 본다. 그 누군가는 물론 다이버다. 스쿠버 다이버도 있고, 프리다이버도 있다. 심지어 강사들도 담배를 피우다가 돌 위에 비벼 끄거나, 바다로 튕겨버린다. 다이빙 교육 중에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도 있다.

알만한 사람들인데 알지 못한다. 아니다. 사실 알기는 할 거다. 큰 고민 없이 그래도 되니까 이제껏 그래 왔던 것이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누군가와 어떤 기업들은 엄청나게 많이) 버리고 더럽히는 사이, 지구는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빌려쓰는 지구를 깨끗하게 쓰자. 지금은 툰베리(10대 환경운동가)한테 욕먹는 정도지만, 나중에는 더 심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해안 정화 활동 중인 해녀들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이어폰을 쓰던지

‘가려진 커튼 등 사이로~ 서성이는 너를 보았지’ 음악 소리가 들렸다. 나는 햇볕이 틈틈이 비치는 한라산 관음사 코스의 적송 숲 구간을 걷고 있었다. 솔잎 위에 쌓였던 눈이 반짝이며 떨어지는 풍경을 오롯이 즐기고 싶었지만, 그  마음은 가려진 커튼 등 사이로 쫓겨났다. 앞서가는 사람의 배낭에 매달린 블루투스 스피커 때문이다. 그 성능 좋은 스피커는 구슬픈 발라드를 연이어 불러댔다. 7080 발라드 플레이 리스트인가 보다.

하~ 저는 그 노래 듣기 싫습니다. 매번 꺼달라고 말하기에도 지친다. 나도 Rage Against Machine의 Killing In The Name으로  응수해주고 싶지만 쪼잔해 보여서 그만두기로 했다.

사람 많은 등산로에서는 여러 음악을 들을 수 있다. 20대들은 힙합과 K-POP을 주로 틀고 다니고, 중년에서 노년 층은 발라드나 트로트를 선호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산행으로 힘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핑계는 그만두자. 내가 좋아하는 하드 코어 메탈과 황병기의 '미궁'을 같이 들을 자신이 없다면. 국립공원에서는 '소음을 유발할 수 있는 도구를 지니고 입장하는 행위'도 자연공원법 시행령 26조 3항으로 금지되어 있다. 위반 횟수에 따라 최대 30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될 수 있으니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는 이어폰을 사용하자! 


Photo by Dan Meyers on unsplash

X 밭에는 X들이 모여 살고요

등산로 바로 옆에서 볼 일을 보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볼 일이란 배변활동을 말한다. 옆에는 친구가 서 있었는데 둘은 해맑게 이야기하고 있었다(다른 문화권 사람들로 보였다). 내가 본 장면이 현실인지 내가 헛것을 본 건지, 혹은 그냥 앉아서 쉬고 있는데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닌지 잠시 동안 혼란스러웠다. 찬찬히 생각해 봤지만 역시나 쪼그려 앉아 있던 사람의 바지는 내려가 있었다. 배변활동 이 외의 다른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야영하는 사람들이 몰리는 경치 좋은 오지는 유난히 똥밭인 경우가 있다. 그것도 제대로 묻지 않고 휴지로 살포시 덮어 놓는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그 X 묻은 휴지가.... 그만 생각하자.

미국 트레일에는 배변 활동에 대한 확실한 규칙이 있다. 배변 활동은 물, 캠프, 숲 길에서 최소한 200피트(약 80미터) 떨어진 곳에서 할 것. 권장 거리는 800미터. 배변을 위해 6~8인치(15~22센티) 깊이로 땅을 파고 잘 묻을 것. 사용한 휴지는 자연 분해하는데 오래 걸리므로 비닐팩 등을 넣은 후 쓰레기통에 버릴 것. 미국 정부는 환경에 대해 책임감이 없지만 지자체와 민간에서는 철저한 규칙을 세웠다. 우리는 그 규칙을 정하고 유지할 시스템이 안되있는 건지, 의지가 없는 건지 모르겠다. 관리하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서로 즐겁게 즐기기 위한 규칙을 만들고 철저하게 감시했으면 한다. 그냥 금지하고 없애지만 말고. 


Photo by Daemyong Middle School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2.0/


고라니 없는 제주에 고나리는 많네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한 아내가 얼굴이 빨개져서 씩씩 거렸다. 숨이 차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먼저 올라와서 그런 것도 아니다. 화가 잔뜩 났다. 

“뒤에 오던 어떤 **(동물의 어린 것을 부르는 말)가 혼잣말처럼 ‘요즘 여자들은 산에서 내복을 입고 다니네?’하는 거야. 나 들으라고!” 

아내가 흥분하며 말했다. 자신의 취향을 일반화해서 공표하려는 고라니 아니, 고나리를 또 봤네. 레깅스가 유행이 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여성 지인들로부터 종종 듣는다. 취향은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투영하는 것이 아니다. 예외가 있다면 아주 친밀한 사이에 서로 합의에 의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다른 사람들이 레깅스를 입는 것에 대한 의견의 있다면 대놓고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의 장에서 이야기할 일이다. 

고나리는 예전에 육지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 등산에서 아내가 천천히 앞서가고 내가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지나가던 등산객들이 '힘든 등산에 여자를 앞세우고 남자가 따라가다니'하며 한 소리 한다. 잔소리를 듣기 싫어 자리를 바꿨다. 이번에는 다른 등산객들이 '뒤에서 따라오는 게 더 힘들다. 여자가 당연히 앞에 있어야지'라며 또 한 소리 들었다. 이 무슨 이솝 우화 같은 일인가! 아, 역시 그건가? 내가 아내를 어깨에 메고 갔어야 했나?

시간이 지나니 나에게 고나리질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가끔 내 눈치를 보거나, 지나치게 깍듯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이유는 어느 날 거울을 보고 깨달았다. 까탈스러워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거기 있었다. '꼰대'가 되지 않기로한 맹세를 되새기지만 허술하게 다니는 초보들을 볼 때마다 입술이 옴짝 거린다. 그때마다 참을 인자를 손바닥에 쓰며 참는다. '먼저 요청하지 조언은 고나리질이니라.'


*이 글은 <GO OUT> 매거진 2020년 3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작가의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aMeX_s2nXZYRY2cCz8z1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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