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의 용기
문은 늘 열려 있다, 다만 그 틈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 한 마디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생을 마구간에 갇혀 살아온 한 마리의 말은 사람들로부터 잘 길들여졌고 매일 규칙적인 식사를 제공받으면서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잠들었습니다. 가끔씩 목덜미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을 통해서 보살핌을 느끼며 평화롭고 안온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문이 열렸고, 그 순간 말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도 이와 닮았습니다. 직장을 마구간에, 관계를 울타리에, 사회적 규범을 목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자율적이라 느끼지만 그 자율은 필연적으로 한계를 가집니다. 우리는 ‘돌봄과 통제’를 함께 받습니다. 바깥세상은 위험하다고, 여기가 안전하다고, 수없이 외치는 규범화된 질서 속에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스스로를 가두는 데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물음을 가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도 갑자기 문이 열리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리고 당신의 내면에서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속삭이는 ‘침묵의 목소리’가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익숙한 일상성과 그 안에 감춰진 무력함
익숙한 일상성 안에서 삶이 쉽게 관리되고, 반복되는 가운데 우리는 어느새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의심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익숙한 일상에서는 삶이 무뎌지고 ‘나는 누구인가’, ‘이 삶은 진정 나의 것인가’ 하는 근본물음은 빛을 잃고 사라집니다. 삶은 편안해지지만, 동시에 왜소해지면서 생각은 줄고, 감정은 흐려지며, 시간은 흐르되 ‘살아있다는 감각’은 옅어지게 됩니다. 결국 마구간 안에서 주어진 풀을 먹으며 더 이상 ‘밖’이 있는지 조차 묻지 않게 됩니다.
탈주는 도망이 아니다 ― 내 안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나 다운 삶’
마구간을 뛰쳐나온 말은 겁에 질렸습니다. 길과 소리, 바람, 흙, 빛 등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낯섦 속에서 처음으로 단단한 땅을 딛고 선 ‘자기의 발’을 느끼게 되고 그제야 어딘가로 달리고 싶어 지게 됩니다. 왜일까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바로 여기에 ‘나 다운 삶을 위해 나를 깨우는 순간’이 깃들게 됩니다. 나를 깨우는 순간은 위에서 떨어지거나 외부에서 제공되는 명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것, 언어화하기 어려운 우리 내면으로부터의 ‘호명’입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정말 원하는 삶이 이것인가?”, “더 진실한 나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어떤 울림인 것입니다.
익숙한 일상성이 우리를 눕게 한다면, 나 다운 삶을 위해 나를 일깨우는 순간은 우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그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 다시 묻고 선택하려는 엄숙한 결단이고 용기인 것입니다.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려는 게 아니라, ‘다시 새롭게, 도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살아내기 위한’ 결단적 행위입니다. 익숙한 일상성의 울타리에서 그 문을 나선다는 것은 단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한 삶을 겨냥한 주체적 전환인 것입니다. 또한 삶을 ‘살아지는 것’에서 ‘살아내는 것’으로 바꿔내는, 자기 삶을 책임지는 선택입니다.
문을 나선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다시 붙잡혀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왔다는 사실’ 바로 그 자체에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물었고, 그 물음에 응답했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게 되고, 익숙한 일상성의 포기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바로 여기에 그의 결단의 존엄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 ― 문은 늘 열려 있다, 다만 그 틈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우리는 모두 각자의 마구간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직장이든, 관계이든, 규범이든, 자기 자신에게 거는 기대든 우리의 마구간은 늘 안온한 얼굴을 하고 일상성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순간에,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문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열림을 마주할 수 있는 결단과, 그 문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의 선택입니다.
깊은 사유에서 길어낸 진실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상태에서는 그 ‘문 열림의 틈’을 보고 도피하지 않으면서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지금 여기”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내가 그것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을 통해서 ‘나 다운 삶’을 찾아가려는 결단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평온한 일상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고독한 전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비로소 우리는 살아지는 삶에서 살아내는 존재로 변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