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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길(6): 프로메테우스의 불

앎의 책임과 고통

by root
프로메테우스가 우리에게 행동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 나다운 삶’이란 앎의 책임을 피하지 않는 자에게 찾아오는 불꽃이라는 것이다.

나 다운 삶이 시작되는 불길 앞에서

우리가 어렸을 때 알게 된 불의 뜨거움과 그 감각적 교훈은 마음 깊이 각인됩니다. 어른이 된 이후에는 불의 이로움과 함께 친숙해집니다. 하지만 도구화된 불이 친밀해진 만큼 우리는 쉽게 잊습니다. 그 불이 원래는 신의 것이었다는 것을 말이죠.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가져다준 일로 제우스로부터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았습니다.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고, 밤이 되면 다시 간이 재생됨으로써 그의 고통은 마침표 없이 반복됩니다.

이 신화는 일반적으로 문명과 지성의 탄생 신화로 해석되고 있죠. 불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의 시작이고 문명의 씨앗이며 인간적 삶의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다시 묻고 싶은 것은 프로메테우스가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 형벌을 감내하면서 ‘앎’으로서의 불을 인간에게 전달했으며, 우리는 그 불을 전달받은 존재로서, 일상에서 어떤 책임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수평적 삶의 온기, 그러나 눈감고 외면함의 편안함

불은 겨울의 모닥불처럼 따뜻함입니다. 일상의 익숙한 수평성의 삶도 그러한 온기를 제공하죠. 다시 말해 규범을 따라 삶을 살고 다수의 판단에 자신의 고유한 삶의 선택을 의지해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라는 말 뒤에서 침묵하는 삶은 표면상으로는 안정성을 가집니다. 그러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의심하지 않는 눈빛으로, 질문을 하지 않음을 습관화하는, 삶의 선택들에 대한 고민 없는 공간으로서의 그곳은 따스하기는 하되 불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스러진 불 속의 재와 같이 살아는 있으되 불타오르지 못하는 삶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죠.

프로메테우스의 선택은 익숙함을 뒤흔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일상성의 질서를 거슬러 감히 신들의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가져다주어야만 했던 그 내면으로부터의 소리는 어떠한 도덕이나 법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각성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로써의 형벌을 예상했고 이를 알면서도 실행을 멈추지 않았죠. 인간의 ‘나 다움’이란 이렇듯 ‘고통을 알고도 멈추지 않는 주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모두가 그냥 두어도 됐던 것을 ‘그냥 둘 수는 없는 일’로서 선택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때의 선택이란 도구적 이익은 물론 사회적 보상을 넘어서는 어떤 '불가피성'으로서 말해지는 것입니다. 바로 그 결의성이 나를 나이게 할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은 형벌로서의 고통을 초월하는 힘의 토대가 되고, 아는 자가 감내해야 하는 진정성 있는 책임의 형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세계의 모순들과 타인의 고통, 그리고 제도의 부조리함, 공동체에 무관심함 등 ‘앎’은 이 모든 것을 불 수 있게 하고 그것을 보게 된 자는 책임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우리 주위의 수많은 프로메테우스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는 활동가들의 목소리, 다수가 안락함 위에서 외면하는 것들을 기꺼이 드러내는 내부 고발자, 정치적 탄압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자들, 그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불을 옮기고 있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교실에서, 가정에서, 글 혹은 침묵을 통해 불을 전하고 있죠. 우리는 그들을 통해서 인간으로서의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고 여전히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인간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형벌 혹은 그 이상의 고통을 받습니다. 왕따나 해고, 명예훼손과 수많은 조롱, 공동체로부터의 고립 등 그들의 고통은 신화적 상징성만이 아니라 언제나 현대적인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 사유의 시작은 불을 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숨 쉬는 평균적 일상성에서, 어떤 거창한 계시나 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라야만 마음속에 불을 품을 수 있는 사유의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때때로 아주 사소한 순간에 어떠한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익숙함의 토대 위에서 일상성의 온기 속에 살아가죠, 물론 그러한 온기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따스함이 우리의 고유한 불꽃을 잃어버리게 하는 재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다시 그 ‘불’을 다시 품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우리에게 행동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 나다운 삶’이란 앎의 책임을 피하지 않는 자에게 찾아오는 불꽃이라는 것이죠. 그 불이 따뜻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뜨겁고 위험하지만 오직 그 불길을 통해서만 우리는 진짜 ‘나 다움’을 회복할 수 있음을 강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우리 자신에게 되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이 펼쳐지는 이곳에서 어떠한 불을 보았는가?

그때 우리는 멈출 수 있었는가? 아니면 그냥 지나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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