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정의 그리고 실존적 결단
법에 근거한 질서는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가로 '질문하지 말것, 불평하지 말것' 이라는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리스의 비극 안티고네에서 주인공은 반란을 일으킨 그녀의 오빠를 매장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게 됩니다. 가족의 죽음을 두고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규범을 거부하고 신들의 법인 보다 근원적인 옳음을 따르게 된 결과인 것이죠.
우리의 딜레마는 이렇듯 법과 옳음의 균열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입니다.
우리는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상식으로 공유하며 안도감을 가집니다. 법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고, 사회는 그것을 따를 때 안정을 얻는다는 믿음 때문이죠. 그래서 법에 근거한 질서라는 것은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주게 되고 우리는 이러한 예측 가능한 세계에서 비로소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법을 기반으로 누리는 이 ‘편안함’은 우리에게 질문하지 않을 것, 불평하지 말 것이라는 큰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공인 안티고네도 자신이 금지된 명령을 어겼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행위를 부끄러워 하지도 않습니다. 그 행위의 근저에는 실정법에 대한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질서에 대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길어 올린 응답으로서의 선택이 자리하고 있었던것입니다.
주인공이 속한 세계는 법과 명령의 준수를 통해 구성원들이 예측가능하도록 구조화된 세계였습니다. 사회의 안정성은 권위와 질서라는 토대 위에 자리하고 있었고, 반역자는 처벌받아야 하고, 법을 어긴 자는 예외 없이 심판받아야 했으며 위반하는 사람은 이러한 공동체 유지에 필수적인 질서의 위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법의 정의와 옳음으로서의 정의
그러나 정작 그 공동체에서 감당하지 못한 것은 한 인간의 존엄한 삶에 대한 깊이와 죽음에 대한 책임, 그리고 슬픔에 대한 윤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질서는 지키되 그 질서로 인한 한 인간의 상처를 볼 수 없었던 것이죠. 법과 명령은 살아 있으되 옳음으로서의 정의는 사라진 것입니다.
주인공은 법과 명령으로 생명을 유지하던 질서의 균열로부터 ‘윤리적 주체’로 거듭나는 것을 선택했고, 필연적으로 법 보다 먼저 자리하게 되는 인간의 내면으로 부터의 목소리에 응답한 것입니다. 그 선택은 제도적 판단을 넘어서고 삶과 죽음의 깊이에 대해서 다시 묻게 합니다.
결국 주인공의 죽음으로 질서는 유지되었으나 그들의 공동체는 파괴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과 질서를 준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법의 진정한 사명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주인공이 법과 명령을 어김으로서 파괴한 것은 공동체 혹은 안정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명령을 어김으로써 파괴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바탕한 옳음이라는 윤리의 가능성을 드러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