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들의책수다 #2] 펄롱의 내면에 심어진 '선의의 씨앗들"
"사소한 친절은 거대한 구조보다 오래 남는다."
―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지난 1편에서 우리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속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며, 침묵과 용기 사이의 선택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떠오릅니다.
"작가는 왜 펄롱을 1946년 만우절에 태어나게 했을까?"
"그에게 주어진 세 가지 선물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런 질문들 속에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빌 펄롱이라는 인물 속에 '선한 씨앗들'이 어떻게 심어졌고, 그것이 그의 내면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소설 속 펄롱의 생일은 1946년 4월 1일입니다. 전쟁이 끝났지만 평화롭지 않았던 아일랜드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탄생은 누군가에게 '만우절의 농담'처럼 다가왔을지 모릅니다. 사회가 외면하고 싶은 '사소한 존재'였죠.
하지만 동시에 이 날은 '거짓말 같은 기적'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떤 조건 속에서도 생명 그 자체는 거룩하다는 것. 세상은 교묘한 사람, 계산 빠른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진실을 보는 것은 언제나 '바보'라 불리는 자들입니다. 펄롱의 어리석음은 곧 양심의 청결함이었습니다.
어린 펄롱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장 바랐던 것은 '아버지'와 함께 맞추고 싶은 '농장이 그려진 500피스 지그소 퍼즐'이었습니다. 가족의 완전함, 함께하는 시간, 사랑의 증거. 하지만 그는 그가 바랐던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받지 못했죠.
실망한 펄롱은 외양간으로 달려가 한참을 울고, 말구유에 언 살얼음을 깨고 찬물로 세수를 합니다. 손을 차가운 물에 깊이 담그고 아무 느낌이 없을 때까지 그러고 있었습니다. 그때 펄롱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사생아'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해했습니다.
어린 펄롱은 펄롱은 떼를 써서 해결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는 현명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분노가 차분히 가라앉을 때까지 충분히 겪어낸 후 털어버리는 자기 성찰과 현실 수긍의 태도. 이것이 어린 시절부터 펄롱의 깊은 내면을 형성했습니다.
그 크리스마스트리 밑에는 펄롱이 원했던 것 대신 '사소한 선물'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이 선물들이 훗날 그의 '사소하지 않은 결단'을 만듭니다.
1) 손톱솔과 비누 ― "깨끗하게 살아라"
가난한 미혼모였던 세라가 어린 펄롱에게 준 것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선물이었습니다. 장난감이 아니라 손톱솔과 비누. 처음엔 실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선물은 어머니의 절박한 사랑이었습니다. "너는 더러운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를 돌볼 권리가 있다." 사생아라는 낙인 속에서도 존엄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
가난 속에서도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존엄의 의지. 그 단정한 선물은 펄롱의 양심 속에 '청결=존엄'이라는 등식을 새겼습니다. 이는 펄롱이 수녀원의 소녀를 만났을 때, 지저분하고 지쳐 보이는 소녀에게서 자신의 어머니와 잃어버렸던 존엄성을 떠올리게 됩니다.
2) 보온물주머니 ― "따스함의 기억"
추운 겨울밤, 어린 소년을 따뜻하게 해 주려는 네드의 마음. 보온물주머니는 단순히 추위를 막는 물건이 아니라, 사랑의 물리적 형태였습니다.
보온물주머니는 일시적입니다. 물은 식고, 다시 데워야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더 의미가 있습니다. 돌봄은 한 번의 행위가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이라는 것. 누군가는 매일 밤 펄롱을 위해 그 물을 데웠을 것입니다.
펄롱은 회상합니다. "그 보온물주머니 덕분에 그 뒤로도 오랫동안 따스함을 느꼈다."
네드가 남긴 온기는 그의 마음속 '돌봄의 감각'을 남겼습니다. 누군가 나를 돌보고 있다는 안정감,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확신. 인간의 선의는 이렇게 작은 온도에서 피어납니다.
3) 『크리스마스 캐럴』 ― "자랑스럽게 생각하렴"
딱딱한 붉은색 표지에 그림은 없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낡은 책. 처음 받았을 때 펄롱은 실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그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누구나 어휘를 갖춰야 한단다." 미시즈 윌슨의 이 말은 단순한 교육적 조언이 아니었습니다. "너는 배울 자격이 있다, 너는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선언이었죠.
다음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펄롱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끝까지 읽었습니다.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시즈 윌슨은 큰 사전을 이용해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이듬해, 펄롱은 맞춤법 대회에서 1등을 했습니다.
미시즈 윌슨은 마치 자기 자식인 양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렴."
윌슨 부인이 펄롱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필통도 책도 아니었습니다. 사회가 부정한 존엄을, 한 사람이 되돌려준 자존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크리스마스 캐럴』이었을까요?
이 책은 이기적인 스크루지가 자신의 탐욕을 깨닫고 유령들의 경고를 통해 양심의 부름에 응답하여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미시즈 윌슨은 펄롱에게 단순한 읽고 쓰는 능력만을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통해 펄롱에게 '도덕적 상상력'과 '변화의 가능성'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인간은 현재의 선택으로 자신을 다시 만들 수 있고, 세상의 비극적인 현실 앞에서 무관심에서 벗어나 공감과 행동을 통해 타인의 삶, 더 나아가 자신의 삶까지 변화시킬 수 있음을 펄롱은 스크루지처럼 배우게 된 것입니다.
비누, 물주머니, 책. 이 세 가지는 '청결', '따뜻함', '깨달음'의 상징이었습니다. 펄롱은 이 세 가지를 자신의 삶으로 옮겼습니다. 선물의 진정한 의미는 받은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어린 펄롱이 진정 원했으나 결국 받지 못한 선물. 완전한 가족, 아버지의 존재, 함께 무언가를 완성해 가는 경험을 상징하는 퍼즐.
지그소 퍼즐은 조각들이 모여야 완성됩니다. 펄롱의 삶도 그렇습니다. 엄마 세라의 사랑, 네드의 돌봄, 윌슨 부인의 선의. 이 모든 조각이 모여 지금의 펄롱을 만들었습니다.
세상의 조각은 늘 불완전합니다. 펄롱은 그것을 맞추려 하지만, 늘 어딘가가 모자랍니다. 하지만 그는 불완전함을 '포기하지 않는 시도'로 받아들입니다.
그의 행동은 퍼즐의 마지막 조각처럼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려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이제 그는 다른 사람의 퍼즐에서 빠진 조각이 되어주려 합니다. 결핍이 연대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네드가 어린 펄롱에게 불러주었던 '크로피 소년'(*번역본에서는 '까까머리 소년')은 1798년 아일랜드 반란에 관한 슬픈 민요입니다. 젊은 저항군이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러 가지만, 그 신부는 변장한 적군이었고 소년은 배신당해 처형됩니다.
펄롱이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목덜미에서 털이 쭈뼛 솟았다"라고 합니다. 왜일까요?
'신의 이름을 빌린 배신' 때문입니다. 이것은 수녀원의 위선과 정확히 겹칩니다. 네드는 이 노래를 통해 어린 펄롱에게 경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종교의 탈을 쓴 폭력을 조심해라. 선을 가장한 악을 경계해라."
이 민요는 펄롱에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라는 물음을 남겼고, 훗날 그의 행동에 깊은 내적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저항의 정신이 노래로 전해져 한 개인의 도덕적 나침반을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석탄은 펄롱의 직업이자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이미지입니다.
석탄은 겉으로 보면 검고 더럽습니다. 손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죠. 하지만 석탄의 본질은 열을 내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을 견디게 해주는 것입니다.
펄롱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보면 사생아이고 하층민 노동자입니다. 늘 손에 석탄가루를 묻히고 일하죠. 하지만 펄롱의 본질은 가장 정직한 사람이고, 가장 따뜻한 마음과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반대로 수녀원은 하얗고 깨끗하고 성스러워 보이지만, 그 본질은 폭력과 위선입니다.
펄롱이 소녀에게 몰래 전해주는 석탄은 단순한 연료가 아닙니다. 그것은 따뜻함이자, 누군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석탄은 태워야 빛을 냅니다. 자신을 희생해야 다른 이를 따뜻하게 할 수 있습니다. 펄롱의 행동도 그렇습니다. 더러워 보이는 것이 가장 정직할 수 있습니다. 석탄처럼, 자신을 태워 남을 따뜻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선입니다.
미시즈 윌슨의 따뜻한 가르침과 『크리스마스 캐럴』, 네드의 숨겨진 사랑과 보온물주머니, 손톱솔과 비누가 상징하는 존엄성, 만우절에 태어난 자의 통찰, '크로피 소년' 민요가 전한 저항 정신. 그리고 지그소 퍼즐의 불완전한 완성.
이 모든 '선의의 씨앗들'은 빌 펄롱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아 그를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갔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진짜 기적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습니다. 인간의 손끝, 말 한마디, 사소한 물건 속에서 한 인물의 선한 내면을 형성하며 일어납니다.
2편에서 펄롱을 움직인 내면의 '선의의 씨앗들'을 탐구했다면, 다음 편에서는 그 선의가 맞서야 할 거대한 침묵의 벽과 '어쩔 수 없음'의 현실을 마주합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통해, 개인의 선의가 사회 구조적 부패와 집단적 침묵을 넘어설 수 있는지 깊이 있게 파헤치겠습니다.
1. 2편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펄롱의 '선의의 씨앗'이나 '상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펄롱처럼, 당신의 삶에 영향을 준 '사소하지만 위대한 가르침'이나 '선물'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우리가 태워야 할 것은 석탄이 아니라,
안에 남은 따뜻함일지 모른다.”
― 라온나비, 《앗싸들의 책수다》 2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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