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들의책수다 #3] 외면과 부패의 그림자
"마을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지난 2편에서 빌 펄롱의 내면을 빚어낸 '선의의 씨앗들'을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선한 씨앗이 심어져 있어도, 펄롱이 마주해야 할 현실은 너무나 거대했습니다.
막달렌 수녀원의 문이 닫히는 순간, 우리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착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이 문장은 작가가 세상에 던진 경고입니다. 폭력보다 더 잔인한 것은, 그 폭력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3편에서는 펄롱의 용기를 가로막은 외면과 부패의 거대한 그림자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방관자들은 왜 침묵했고, 그 침묵이 어떻게 구조가 되었는지, 그리고 펄롱은 어떻게 그 침묵을 깼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명백한 가해자보다, 선량해 보이는 이웃들의 집단적 침묵입니다.
아일린은 다섯 딸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입니다. 그녀가 펄롱의 행동을 염려하며 선을 긋는 모습은, 냉정해 보이지만 가족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그녀의 선택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자신의 아이에게 해가 될지도 모르는 위험 앞에서, 과연 우리는 가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아일린은 우리 내면의 현실적 두려움을 거울처럼 비춰 보여줍니다.
식당 주인 미시즈 케호는 펄롱에게 경고합니다. "수녀들이 안 껴 있는 데가 없어요. 다 한통속이야, 어느 한쪽하고 척지면 다른 쪽 하고도 원수가 되는 거예요."
이 말은 마을 전체에 퍼진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은 수녀원의 학대를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며 외면했습니다. 침묵은 단계를 거쳐 시스템이 되고, 그렇게 권력을 유지시키는 구조가 됩니다.
펄롱이 던진 "그들이 갖는 힘은 딱 우리가 주는 만큼 아닌가요?"라는 질문은, 집단적 침묵이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동력임을 꿰뚫습니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선택이며, 그 선택이 방관을 넘어 공모가 됩니다.
침묵은 개인의 외면을 넘어, 사회적 구조를 공고히 만드는 거대한 장벽입니다. 작가는 소설 곳곳에 이 외면의 세계를 상징으로 숨겨놓았습니다.
수녀원의 단단한 문과 자물쇠는 물리적 감금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진실과 양심을 닫아버린 상태를 상징합니다. 펄롱은 이 문 앞에서 끊임없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마주합니다.
문을 열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하지만 닫고 외면하면 평생 그 문을 기억할 것입니다. 펄롱은 용기 있게 문을 열었지만, 닫힌 문은 거대한 시스템이 진실을 은폐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수녀원의 막달렌 세탁소에서 소녀들은 끝없이 빨래를 합니다. 물은 전통적으로 정화와 구원을 상징하지만, 수녀원의 더러운 물은 그 의미를 역설적으로 전복시킵니다.
'깨끗하게 만든다'는 명목 뒤에서 학대와 착취가 자행되는 아이러니. 펄롱은 이 물에서 정화가 아닌 오염을, 구원이 아닌 억압을 봅니다.
"마을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이 문장은 집단적 침묵이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동력임을 보여줍니다.
두려워서, 불편해서, "내 일이 아니니까"라고 외면하는 침묵은 단계를 거쳐 시스템이 됩니다. 보지 않으려 하고, 본 것을 모른 척하고, 다른 사람도 침묵하게 만들고, 결국 집단적 침묵이 "정상"이 됩니다.
침묵을 깨는 것은 거창한 연설이 아닙니다. '괜찮아요?'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침묵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펄롱의 용기와 마을 사람들의 침묵 사이에서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마주합니다. 개인의 선의가 과연 거대한 사회 시스템을 넘어설 수 있을까?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없다』는 이 질문에 대한 냉혹한 경고를 던집니다.
영화는 개인의 생존을 넘어선 사회 구조적 불안정이 어떻게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속에서 윤리적 타락으로 이어지는지 적나라하게 그립니다. 가장의 실직이라는 경제적 문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공모와 합리화.
실직은 내 잘못이 아니고, 사랑하는 가족은 나를 지지한다는 명분 아래 범죄 행위가 정당화되는 모습. 영화가 제시하는 겉으로만 평온한 '해피엔딩'은 그 뒤에 숨겨진 파멸의 그림자 때문에 더욱 지독한 불쾌감을 남깁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펄롱의 선의가 맞서야 할 사회의 단단한 벽이자, 아일린과 미시즈 케호, 마을 사람들이 체념했던 바로 그 '어쩔 수 없음'의 실체입니다. 경제적 두려움, 가족의 안전, 사회적 보복, 교회의 권력. 이 모든 것 앞에서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합니다.
크리스마스 미사에서 모두가 영성체를 받는 동안 혼자 무릎 꿇지 않는 펄롱의 모습. 이것은 소설의 가장 강력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수녀원장이라는 외부의 부패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 부패에 동조하며 '하지 않은 일의 죄'를 지었던 것에 대한 깊은 후회였습니다.
영성체를 거부한 것은 자신이 '속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처절한 자기 비판이었습니다. 그는 신의 용서를 구하는 대신,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무릎 꿇지 않은 이유는 신에게 분노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과 그 앞에서 침묵했던 자신에게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이 강렬한 자책감은 펄롱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외부의 악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대한 정직한 직면이 그를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그의 신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은 차가운 새벽길을 함께 걷는, 맨발의 소녀 옆에 있었습니다.
펄롱의 행동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는 영웅적인 연설을 하지 않았고, 수녀원 시스템을 단숨에 무너뜨리지도 못했습니다. 다른 소녀들을 모두 구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 사람을 구했습니다. 그는 침묵을 깼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갖는 힘은 딱 우리가 주는 만큼"이라는 진실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비극이 수백 년간 반복되는 이유는 모두가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영화『어쩔수없다』의 가장이 파멸로 치닫는 이유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모든 것을 정당화했기 때문입니다.
펄롱은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작지만, 그는 행동했습니다.
그가 마침내 깨달은 것은 이것입니다. "삶에서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개인의 선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선의가 없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펄롱 한 사람이 침묵을 깬다면, 다음은 두 사람, 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악은 거대한 선으로 단번에 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소한 선의 연쇄는 세계를 버티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는 이유입니다.
아일린의 현실주의는 틀리지 않습니다. 미시즈 케호의 경고도 현실적입니다. 『어쩔수없다』가 보여주는 세상의 벽도 실재합니다.
하지만 펄롱의 선택 또한 실재했습니다. 미시즈 윌슨의 은혜도 실재했습니다. 네드의 사랑도 실재했습니다.
세상은 어둡습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석탄은 빛을 냅니다. 작은 불꽃이라도 켜는 사람이 있다면, 어둠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답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펄롱도, 아일린도, 침묵하는 마을 사람도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용기를 내겠지만, 때로는 두려워서 침묵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적어도 그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한, 우리는 펄롱이 될 가능성을 잃지 않습니다.
신이 침묵할 때, 인간이 말해야 합니다. 수녀원장은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가두었고, 펄롱은 인간의 이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신앙이 아니라 양심입니다.
펄롱은 말없이 대답합니다. 그는 새벽의 어둠 속에서 한 소녀의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세상은 아주 조금 더 인간다워졌습니다.
"누군가의 침묵이 누군가의 고통이 될 때,
누군가는 그 침묵을 깨야 한다."
3편에서 개인의 선의가 마주해야 할 침묵의 벽과 '어쩔 수 없음'의 현실을 파헤쳤다면, 이제 대망의 완결편에서는 펄롱의 용기가 던지는 질문을 확장하여 우리의 삶 속에서 '침묵을 깨는 용기'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봅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비극과 대비되는 펄롱의 작은 불꽃, 그리고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을 소개하며 대화의 장을 열겠습니다.
1. 3편을 읽고 '외면과 침묵'의 문제가 가장 크게 와닿았던 부분은 어디였나요?
2. 영화 『어쩔수없다』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속 '어쩔 수 없음'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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