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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h Mar 01. 2022

<멋진 신세계> - 이미 이곳에 도래한   


책 출간후 15년 후인 1947년 다시 쓴 머릿글에서 헉슬리는 본인이 예견한 ‘멋진 신세계'의 실현을 당초 25세기에서 100년후 (즉 2047년)로 수정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집필 당시 그가 체감한 진보의 속도를 15년 사이 인류가 아득히 추월해 버렸단 반증이다. 동시대 인물인 마틴로이드존스 목사의 설교집을 읽어보면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핵시대’에 살고 있단 표현을 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우리가 ‘인공지능의 시대’를 말하며 느끼는 기대감, 불안의 공존과 비슷한 상태라 짐작해본다.


헨리 포드를 건국의 아버지이자 신적인 존재로 등장시킨 것은 책의 주제의식을 분명히 해준다. 멋진 신세계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은 생산과 소비에 증진으로 이어질 때만 유의미한데, 이것은 속도와 편의성, 생산성, 효율의 극대화를 향해 달려가는 테크놀로지의 종착점을 예언하는 듯 하다. 그곳엔 레니나에게 다가가지 못해 전전긍긍하며 버나드가 느낀 불안과 거절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헬름홀츠가 말과 글로 표현하길 원했던 그 무언가에 대한 갈증도 없을 거다. 어떤 의미에서 멋진 신세계는 이미 우리 가운데 도래해 있다.


한병철이 진단한 ‘피로사회’의 일원이 끊임 없이 스스로를 착취하며 탈진의 상태로 돌진한다면 멋진 신세계속 인간은 스스로를 착취할 능력이나 의지 자체가 없다. 스스로 생각할 자유를 박탈당한 그들은 조건유도 된 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다. 그래서 에너지로 넘치고 활기찬 인간들 가운데 홀로 우울한 버나드 마르크스의 얼굴은 역설적으로 어떤 희망을 상징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적절한 우울은 자기 자신을 보게 해주고 자기기만의 위험으로부터 방패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번역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출판사는 원작자 소개보다 번역자 약력에 더 많은 지면을 허락했는데 역자의 번역은 날 납득시키지 못했다. 예를 들어 '헬름홀츠와 버나드의 공통점은 그들이 혼자였다는 것이다 (120) ’에서 ‘individuals’란 단어는 그들이 시스템에 속해 있으면서도 자신을 '하나의 개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작품 주제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단어라고 생각되는데 그걸 ‘혼자’라고 번역해버린 결정에 고개를 절레절레.


극 소수의 소위 ‘비져너리’들에 의해 주도되는 기술의 점진적 개선은 그때그때 놓고 보면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며 무감각하게 수용된다. 허나 그 점들이 이어진 선은 분명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매년 업그레이드되는 아이폰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가 기기 성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이미 멋진 신세계의 주민이다). 


물론, 그 변화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아무것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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