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말 즈음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J가 곧 이사 갈 동네라며 내게 열정적 영업을 할 때만 해도 몽촌토성은 내게 생소한 이름이었다.
몽.촌.토.성.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발음해보면 각 음절이 묘한 이질감을 남기는 이 이름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심 속 공간이라기보단 얼핏 고대 유적지 같은 어감을 가지고 있다. 성벽 아래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그런 비장함이 묻어나는 이름 같다. (인접한 또 다른 전철역의 이름은 심지어 ‘한성백제’다. 저 멀리서 황산벌 계백장군의 호령 소리가 들리는 듯, 뭔가 웅장 해지는 이름.)
작년 4월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임시거처로 찾은 근사한 한옥집에 6주 동안 머무는 호사를 누렸다. 근사한 중정이 있는 공간에서 비가 오는 날이면 막걸리에 파전에,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안주 삼아 한량 같이 지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여행자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마음은 한옥 살이 4주 차쯤, 놀러 왔던 친구의 즉흥적인 제안으로 첫 부동산 투어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주민’으로 가는 심정적 한 발을 내디뎠다. 10평 남짓한 오피스텔들을 둘러보며 맞닥뜨린 건 말 그대로 좁아진 현실이었다. 첫 자취를 경험했던 베를린에서 절반 정도 가격에 두배로 넓고 높은 집을, 그것도 시내 한가운데에 얻을 수 있었던 걸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평수를 늘릴 수 없다면 천장이라도 높았으면 덜 답답하겠단 생각에 복층 오피스텔을 알아보기 시작한 무렵 알게 된 게 몽촌토성이란 동네였다. 처음으로 본 오피스텔은 깔끔한 신축건물이었는데 올림픽공원과 저 멀리 이름 모를 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티뷰가 내 맘에 쏙 들었다. 더 볼 것도 없다 싶어 계획보다 비싼 월세에도 불구하고 바로 계약했다. 임시거처를 논외로 치면 한국에서의 첫 번째 거주지가 된 지금의 집. 이사 후 첫 한 달은 인테리어 톤을 원목으로 맞출까 화이트로 할까 같은 문제로 잠을 설치기도 했다. 펜데믹이 예상보다 길어지며 사실상 사무실이 되어버린 지금 와선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나 싶지만.
커다란 모션데스크가 방 한구석을 차지한 이후로 더 이상의 인테리어는 의미가 없어졌고 1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집을 취향 껏 꾸미진 못했지만 내 취향을 드러내는 물건들과 함께 산다. 이를테면 양서만 만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이루어달라는 듯 군데군데 돌탑처럼 쌓여있는 책들,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드라마 관련 굿즈와 좋아하는 브랜드의 향수 같은 것들. 소파 놓을 곳도 마땅치 않아 자는 시간 빼곤 거의 서 있기 때문인지 ‘쉼’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는 공간이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 쌓여 있을 때 느끼는 위안이란 게 있다.
취향과 무관하게 지난 1년의 기록 같은 물건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목디스크로 고생하며 구입한 폼롤러, 마사지건과 요가 메트, 그리고 그간 집에 다녀간 사람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들. 그리고 사방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포스트잇엔 글감이랍시고 휘갈겨둔 생각의 조각들이 어지러이 남아 있다. 뭘 하다 1년이 훅 지나간 걸까, 생각해보면 일하는 시간 제외 집에선 주로 뭔갈 쓰고 있었다. 글을 쓸 때 시간의 감각이 가장 둔해진다는 사실과 이 공간에서 보낸 시간이 실제보다 짧게 느껴진 건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국 집 내 방의 이미지를 ‘책장’을 중심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잇들과 밤늦게 켜진 모니터 스크린이다. 예전 내가 읽지 못한 책에 부채감을 느끼며 살았다면 지금은 쓰지 못해 남겨둔 글감들에 쫓기며 산다.
1년 후에도 나의 집은 ‘뭔갈 쓰고 있던 공간’으로 남았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몇 달 전 올림픽 공원을 산책하다가 몽촌토성의 ‘몽촌’이 ‘꿈마을’이란 걸 알게 된 순간을 기분 좋게 추억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한자로 나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조합 이건만, 선입견이란 게 이래서 무섭다.) 유독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하는 성향이긴 하지만 분명 그날 그 순간은 뭔가 운명적인 구석이 있었다.
읽는 독자에서 쓰는 사람으로 나아가고 싶어 영국을 떠나 서울로 돌아왔다. 정말 그런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이유로, 이 나이에, 거주지를 옮기는 선택을 하는 게 괜찮은 건지, 지금도 가끔 자문한다. 그런 내 마음의 소원을 표현하는 단어로 차마 ‘꿈’ 같은 거창한 단어를 택할 자신이 없었다. 언제나 마음뿐이었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내 하찮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난 뒤늦게 용기를 냈고, 서울까지 왔다. 몽촌토성이 꿈마을이 된 날, 누군가 다정하게 내 등을 떠